글: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자발적 학습 커뮤니티인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가 열립니다. ETRI 연구자들이 일반 국민과 선후배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들을 탐색하고 고민해 주제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새통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전달드리고자 참가자들이 직접 정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며, 이를 대비하는 연구원들의 자세와 각오는 어떠한지 글로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이번 129차 새통사 모임에는 이충일 LI Networks  대표님과 문성준 대전맹학교 선생님, 송비정 선생님을 모시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기술과 평등의 진정한 의미, 사회통합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생각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이 대표님은 연결을 통한 세상의 혁신을 지향하는 LI Networks라는 회사의 이름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분이다. 문 선생님은 12살 때부터 시작된 망막 분리로 시각을 잃고도 IT를 통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변화시켜 온 혁명가이다.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비장애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또, 전문가라고 자만해 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을 놓치며 살고 있다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만들어 준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성숙한 사회야말로 각자의 개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여유가 존재할 때 모든 개인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이 무시되지 않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다가오는 초연결의 세상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줘야만 하는 롱테일 사회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세상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롱테일 사회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기업들의 성숙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파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의 포용이 기업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주요사항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노약자를 포함하는 사회적 약자의 비율이 인구의 23%에 육박하는 것만 보더라도, 지구촌이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의 경고만 보더라도, 더 이상 사회적 약자를 산 넘어 불구경하듯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산업자본이 국내의 작은 시장을 두고 과감한 투자를 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공공자본이 싹을 틔우고 산업자본을 끌어들이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요구된다.

1. 눈높이의 차이 : 필요 vs 공급

세상의 언어는 육체적 언어, 이미지적 언어, 구술적 언어, 문자적 언어, 문화적 언어,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 언어까지 있다는 것을 말이나 머리로는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그러나 정작 '촉각으로 느끼는 구조물적 언어'의 존재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 아둔함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외의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함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비장애인들이 만들어놓은 개념 언어는 그냥 외국어와 같은 것임을 우리 사고의 틀 속에 간직해야 한다. 그것 또한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 때, 디자인을 할 때, 남들이 고려하지 못한 조건을 알고 있는 것은 경쟁력의 차이를 드러낼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님은 '필요'의 눈높이와 '공급'의 눈높이 차이에 관해서 설명해주신다. 그중에서도, 인구 5500만 명 가운데 3500만 명이 전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탄자니아에서 보급용 태양광발전기의 개발과 보급을 하는 최홍규 박사와 시각장애인이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니스 홍 UCLA 교수의 이야기는 필요와 공급 간의 눈높이 차이에 살아있는 실질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최 박사는 자신이 보유한 태양광기술을 아주 간단하고 쉽게 초기제품을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하루 생활비가 1달러인 사람들에게 10달러라는 가격으로 공급한다고 한다. 10일을 굶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기에 고장이 나도 버리지 않고 고칠 것이라는 생각에서란다. 어쨌든 보급한 발전기가 고장이 쉽게 났다고 했다. 특별한 놀이가 없는 환경이라 사람들이 발전기를 가지고 놀면서 쉽게 고장을 내버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장이 안 나게 잘 다루라고 말을 했단다. 스위치를 너무 자주 켰다 껐다 하지마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잘 둬라, 태양광 판넬을 만지지 말라는 등등. 이런 말을 하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고려하여 스위치가 잘 돌아가지 않게 뻑뻑하게 만들었다. 또, 태양광 판넬 앞에 잘 녹지 않으면서도 태양광을 잘 투과하는 비닐 종류를 찾아 덧대고 걸어둘 수 있는 줄을 달았단다.

이는 아주 간단한 사례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와 고려했을 때의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800만 가구가 전기의 혜택을 볼 수 없는 나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적정기술은 현지인이 만들 수 있고 고칠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격은 닭 한 마리 가격이어야 한다."

데니 홍 교수의 사례는 우리 IT인들에게 너무 가슴에 와 꽂힌다. 랩에서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DARPA Challenge에 나가서 시상하고 나니 미국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우리가 운전할 수 있는 차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한다. 분명 '우리도 운전할 수 있는 차'를 요청했지만, 홍 교수는 '시각장애인을 실어 나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라고 생각했단다.

시각장애인들은 그냥 실려서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운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공급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눈높이 차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만들 수밖에 없다. 홍 교수팀도 수많은 첨단 보조 장치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각장애인이 뒷자리에 앉아서 지시하는 것 이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비시각적 인터페이스 AirPix는 그런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운전자가 볼 수 있는 전방을 격자 구멍 판넬에 도로와 장애물 등을 바람세기로 표현하여 손바닥으로 확인하고 시각장애인이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고안해 냈다. 대성공이었다. 홍 교수는 그 차를 운전하고 들어오는 시각장애인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로봇을 만드는 일에 더욱 매진하자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이 대표님께서 소개하는 따뜻한 기술의 다양한 사례를 동영상을 통해서 함께 느껴보시길 권유하고 싶다. 그 시간의 끝에 비장애인의 지각장애를 아마도 깨닫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나도 아내를 위하여 쓰레기를 버려주고 싶다"

문 선생님께서 직접 하신 말이다. IT 기술을 모두 종합하면 아파트에 사는 나도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제 손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 오신다.

ETRI에는 사실 시작 장애인을 위한 초정밀 내비게이션 요소기술이 모두 다 갖춰져 있다. 기술의 정밀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골도 전화기 기술, 실내 정밀 측위 기술, 실내 정밀 GPS기술, 내비게이션기술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완성된 솔루션기술로 접근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 또한 PBS제도의 병폐다. 완성된 솔루션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성립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단위기술이 널려있어도 할 수 없다. 범법행위이기 때문에 목적 이외의 활동을 할 수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기술개발에 대한 적정 예산 규모의 측정도 어렵게 하는 이유다. 출연연들이 직접 실용단계까지 연구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실용화는 민간의 역할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실용연구를 직접 하기 어렵다. 기업들과 공동연구를 하지만, 과감한 귀추적 접근(adductive approach)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공공영역의 연구는 프로젝트 기반이 아니라 조직이 책임지고 풀어내야 할 미션 기반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 MSDOS의 음성합성기라는 시각장애인 인터페이스를 장착한 XT로 컴퓨터를 익히고, 도트프린터를 활용하여 세상과 대화를 하고, PC통신을 만나 사이버 세상과 만나 시샵까지 했던 다양하고 왕성한 커뮤니티 활동과 텍스트 기반의 전자도서 읽기 등이 가능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아무런 차별이나 장벽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사회의 통합'을 느끼는 시기였다.

1995년에 출시된 Windows는 또다시 인터넷세상마저도 암흑 세상을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GUI에 대한 시각장애인용 인터페이스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Windows 98, Windows XP가 나오면서 Screen Reader가 출시되었고, 2000년에는 점자정보단말기(점자 인터페이스를 가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다시 한번 통합의 시대를 맛보게 되었다.

문 선생님은 2003년에 대전맹학교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web bbs와 소리도서관(누리샘)을 만들고 멀티미디어 기반의 다양한 학습 자료도 개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문 선생님은 NEIS 시스템의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여 학생의 학습생활활동 기록을 남겨야 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담임선생님들의 역할 수행에 도움을 준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그런 꾸준한 노력으로 2008년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되는 결실을 맞이하여 웹 접근성이나 모바일 접근성에 대한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비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동일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역할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iPhone의 매력을 보고 새로운 ‘사회의 통합’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장애인 모드와 비장애인 모드의 설정변경만으로 모바일접근성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으셨을까 짐작이 간다. Software의 이 엄청난 역할을 보고도 Hardware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산업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 선생님은 장애인에 대한 불쌍한 시선이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승리자라는 시선을 거두어달라고 부탁한다. 남성 중심사회에서의 여자는 죄가 아니며,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사람이 죄가 될 수 없듯이, 장애인들도 자신의 선택으로 장애를 갖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가능해지면, 자연스럽게 신체 특징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기회의 균등보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쪽 팔을 잃은 사람에게 자전거를 어떻게 잘 탈 수 있게 해줄까 고민하기보다는 한쪽 팔로 탈 수 있는 자전거 공급을, 다리가 하나뿐인 사람이 탈 수 있는 자전거 공급을 해주는 눈높이가 필요하다. 그렇게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법률적 법 등에 바탕을 두는 진정한 포용임을 말씀해 주신다.

아직도 응용 SW는 웹 접근성이나 모바일접근성을 강제하는 법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위한 노력을 외면하는 기업이 존재한다. 공공시설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 또한 부족하다. 장애인도 세상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수많은 디지털 가전제품에도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다. 심지어 비싸게 구입한 새 아파트 출입문이 터치패드라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웃픈 현실이 우리들 곁에 즐비하다. 약품 설명서를 읽을 길이 없어서 시각장애인들은 속수무책이다.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특히 IT인들은 그 새로운 공간 만들기의 주역들이 아닌가. IT들이 그런 ‘사회적 통합’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주면 좋지 않겠는가. 당신들은 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쓰레기를 버려주고 싶다는 저의 소망을 들어주실 수 있지 않은가라는 문 선생님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문 선생님의 다양한 활동과 사유를 공유하고 싶다면, 다음 블로그에 가보시길 권하고 싶다.

3. 세상은 우리에게 조리사가 아닌 셰프가 되어주길 원한다

요즘 '김비서가 왜이래?'의 주인공 박서준이 등장하는 모 카드사의 광고가 IT인들을 자극한다. "Digital은 복잡해, 어려워, 모르겠어, 좀 쉬워지면 안 돼? Digital은 쉬워야 한다"라고.

광고를 보면서, 왜 요즘 IT와 ETRI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동안 IT는 IT산업에만 사용되고 IT인들만 알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IoT, Cloud, BigData, Mobile,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달로, IT는 단순히 보고, 즐기고, 활용하면 되었던 정보, 통신, 방송에서 국민의 모든 생활 그리고 산업의 구조 깊숙이 침투해 한 몸이 되는 Digital로의 변신이 필요한 시기임을 느낀다.

그동안 모르고 살아도 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알아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IT는 그러한 Digital로의 변신에 소홀했다. 그것이 전 국민과 비IT계로부터 원성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Digital이 쉬워야 한다!'는 광고 메시지는 IT인들에게 매일 똑같은 음식만 만들어 내는 조리사 역할이 아닌 국민들의 바뀐 입맛을 만족시켜 줄 아는 셰프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보, 통신, 방신, 부품’이라는 기술이 ‘IoT, Cloud, BigData, Mobile,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패션을 채택했는데, 이젠 이 패션도 진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위기술이 아니라 User Experience를 고민의 대상으로 삼아 달라는 것이다.

User Experience를 위한 IT의 노력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생명현상에서 수천, 수만 단계의 보이지 않는 생화학 연쇄반응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을 어찌 그 연쇄반응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생명체들이 지금의 완성된 모습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해결해야 할 수많은 분야가 모두 제각각의 눈높이에 있음을 박서준이 말하는 Digital Easy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지난한 사이클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제대로 된 project management를 할 수 없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굳이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무방하다. 그 과정 속에서 A-to-Z의 사이클을 적어도 3번 정도 경험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다. 그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는가. 그 경험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실제 사이클을 밝아 본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장인의 길은 멀다. 전문가의 길은 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가오는 세상은 소품종 대량생산체계가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요구한다. 유한한 자원으로 어떻게 다품종 소량생산체계를 효율적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또 남는다. 축적의 문제다. 축적만이 가성비가 높은 다품종 소량생산시대를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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