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그 곳에 가볼래요?
글 ·그림 ·사진 : 강선희 anger15@nate.com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다. 수면가스라도 마신 듯, 졸음이 쏟아졌다. 내 눈꺼풀은 이다지도 천근만근인데 옆에서 미동도 없이 운전을 하는 친구녀석이 흡사 로봇같다. 지난 번, 남해에서 만났던 친구 성민이다. "그럼 그 날 왜목항에서 모이자"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니.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면서도 마주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비몽사몽한 것이 꿈인가?
 

왜목항의 풍경
왜목항의 풍경

"미안, 십분만~"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왜목항이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빼곡했다. 평일 내내 비가 오다가 주말에 쨍,하고 해가 뜨니 다들 똑같은 마음으로 '이때다!' 싶었나 보다. 성민이와 나는 채비를 챙겨서 배를 타고 좌대로 들어갔다. 4월 말인데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수면 위로 부서져 반사되는 햇빛은 아름다웠지만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맡는 바다냄새가 반갑다.
 

성민이가 낚시대를 정비해서 세워두는 동안 나는 잠에 취해 어슬렁어슬렁댔다. 그러다 옆 마루에 앉은 아저씨들이 삼겹살을 굽는 냄새에 돌연 잠이 번쩍 깼다. 우두머리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고기를 능숙하게 구우며 말씀하셨다.
 

"이리와서 한 점 해요~. 여기 누가 낚시하러 오나, 바람 쐬고 놀러 오는거지."

"아, 그런가요? 바다 한 가운데서 구워먹는 고기라니, 그거 별미겠는데요!"
 

넉살 좋게 한 자리 꿰차고 앉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인천에서 내려왔다는 특전사출신 아저씨들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다가 왜 때문인지 '여자 강호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걸쳐놓은 낚시대가 파르르 떨면 물고기가 미끼를 물은 거라는데, 우리들 낚시대는 어쩐 일인지 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저- 구석에 자리를 잡은, 한 아저씨의 낚시대는 유난히 입질이 좋아 보였다. 누군가 "낚았다!"라고 소리치면 그 쪽으로 모든 시선이 쏠렸는데, 이번에 그 아저씨가 잡아 올린 건 장어였다!

뱀처럼 미끄덩한 게 정신없이 꿈틀대는 모습에 1차로 비주얼 쇼크를, "이거 집에 가져가기도 뭐한데 궈 드실라우~?" 하시더니 바닥에 냅다 패대기치는 아저씨의 모습에 2차로 컬쳐 쇼크를 받았다.

뭔가 잔인하면서도 생생하다. 거기 서서 주둥이를 뻐끔대는 장어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건 나 뿐이었다.   

싱싱한 장어가 불판 위로 올라오면서, 낚시고수 아저씨도 합석했다.
 

"낚시 바늘에 이매~난 밧줄이 걸린거여~. 겁나게 무거운디, 우리가 버린거니께 건져야지 싶어서 감아 올렸더니 거기에 아, 주먹만한 소라 네 개가 붙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이 맴을 잘 써야 하는 거예요. 안 그랍니까? 그럼 결국엔 다 복이 오잖소."
 

제일 어르신인 낚시고수 아저씨의 말씀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별안간 또, 아저씨의 낚시대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뭔가 낚였다! 이번엔, 낙지였다. 아저씨는 망설임 없는 손길로 낙지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호탕하게 말했다. "마 이것도 궈 드소!"

한 번 씻어 그대로 불판 위에 올렸더니 뜨거워서 그 긴 다리를 배배 꼬고 난리가 났다. 내 낚시대는 꿩 궈 먹은 소식인데 오늘 자리를 잘 잡아서 아주 계탔다, 싶다!
 

싱싱한 산낙지, 자급자족의 선상낚시
싱싱한 산낙지, 자급자족의 선상낚시

선상에서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폐쇄적인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평화로워 보이는 건, 맑은 하늘 아래 저 탁 트인 수평선 때문일까. 순식간에 해무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몽롱한 분위기 속에 우리 모두 신선이 되었다.
 

"혹시 숟가락 남는 거 있어요?"

우리테이블 옆으로 물 끓이는 공간이 작게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숟가락을 찾고 있는 듯 했다. 꼼꼼하게 챙기고 두 번 세 번 체크해서 여행길에 올라도, 이상하게 꼭 하나는 까먹게 된다.

"커피나 한 잔 했으면 좋겠구만… 커피가 없네."

아낌없이 고기를 구워 내주시던 특전사 아저씨는 믹스커피를 깜박한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우리 비닐봉지에 놀고 있는 일회용숟가락 3개 중 2개를 들고 아주머니 테이블로 갔다.
 

"저, 아까 숟가락 찾으시길래… 여분이 많진 않지만 요거라도 드릴까요?"

"어머나, 이게 어디야! 아이구,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근데 혹시 믹스커피 남는 거 있으세요? 저는 그걸 깜박했지 뭐예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내 손에 3개나 들려주셨다.

"숟가락 2개에 커피 3개니 제가 남는 장사를 했네요?" 했더니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그리고는 커피를 타서,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신 특전사 아저씨들께 갖다 드렸다. "아이구, 이걸 어디서 구해왔어? 잘 마실게요~"하시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선상 위의 모든 사람들이 호의적이다. 젊은 남자들은 베테랑 낚시꾼들에게 회 뜨는 방법을 배웠다. 첫 칼질은 서툴어도 저들이 또 나중에 친구에게, 후배에게 혹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늘 배운 칼질을 전수해 주겠지.

슈퍼 따위 없는 배 위에서 서로 나눠 쓰고, 나눠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웃었다. 파도처럼 잔잔하게 퍼지는 바다 위 여행의 즐거움. 그래, 그 곳엔 따뜻한 정이 있었다.

서해바다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왜목항에서의 일출
서해바다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왜목항에서의 일출

당진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없어서 펜션을 이용해야 한다. 해변을 따라 많은 펜션들이 줄지어 있고, 해변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샤워시설은 여름에만 오픈한다.

 

왜목펜션빌 : 충남 당진시 석문면 석문해안로 33-6
                       041-353-0418
                       독채 형식의 펜션, 주말 기준 2인 커플룸 100,000
 
병기호 좌대낚시 : 충남 당진시 석문면 왜목길 33
                     010-9157-7778/ 010-4627-1474
                     이용요금 : 중학생 이상 1인 기준 평일,주말 3만원
                                        초등학생 1만원, 미취학 아동 무료
                     이용시간 : 4월~9월 : 오전 6:30 ~ 오후 4:00
                                        그 외 : 오전 8:00 ~ 오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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