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두께 4m, 길이 630m '단군이래 최대 과학시설' 현장

[르포]신동지구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에 가다···부지 29만평 '축구장 130개' 규모
2020년 건물시공 마감···2021년 장치설치 완료 "본격 기초과학 난제 도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대덕테크노밸리에서 세종시 방향, 자동차로 국도를 타고 10분여 달리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10분쯤 이동한뒤 언덕을 넘어서자 허허벌판에 초대형 동산(?) 하나가 우뚝 자리를 잡고 있다.

동산으로 향하는 황톳빛 2차선 도로에는 건설 장비와 차량이 분주하다. 차량을 따라 초대형 동산으로 향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거쳐 건설 현장으로 가는 길만 한참이다. 거칠 것 없는 벌판을 지나는 봄바람은 거셌다.

단군이래 최대 연구시설로 꼽히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입구에서부터 웅장한 기운이 느껴진다. 레미콘 트럭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멘트 반죽을 실어나르고 수십 대의 굴착기와 장비들이 굉음을 울리며 건축 현장을 누비고 있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소전류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 시설의 모습.<사진=IBS 제공>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소전류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 시설의 모습.<사진=IBS 제공>

봄 햇살이 어느 때보다 따뜻했던 금요일 오후. 주말을 앞두고 들뜬 마음이 앞서며 모두들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 할 즈음, 신동지구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은 역동적이다. 주말을 잊은 듯한 모습이다. 현장 작업자들은 하얀 안전모를 눌러쓰고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산 위에서 바라본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사진=박성민 기자>산 위에서 바라본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사진=박성민 기자>

족히 45도가 넘어 보이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인근 뒷산으로 올라가니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나 건설 중인 연구시설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개를 좌우로 90도 이상은 돌려야 전체 현장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은 500여명. 총사업비만 1조 4298억원. 부지는 95만2066㎡로 약 29만평, 전체면적은 12만0114㎡로 약 4만평 수준이다. 축구장 130개 규모와 맞먹는 단일 연구시설로는 국내 역대 최대 규모다.

◆ 가장 큰 곳에서 가장 작은 것을 연구한다 "국내 '기초연구 닻' 오르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가속기터널 벽 두께만 4m가 훌쩍 넘는다.<사진=IBS 제공>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가속기터널 벽 두께만 4m가 훌쩍 넘는다.<사진=IBS 제공>

중이온가속기 건설구축사업단의 조장형 시설건설사업부장의 안내로 건축 현장에 가까이 둘러봤다. 주요 연구시설인 '가속장치' 건축 현장을 찾았다. 콘크리트 바닥 위로 철근들이 솟아있으며 건축 장비들도 분주하게 가동되고 있다.

중이온가속기 주요 연구시설인 가속기터널의 길이는 630m에 달하며 벽 두께만 4.7m다. 가속기터널의 폭과 높이도 각각 7m에 이른다. 방사성 물질이 사용되는 중이온가속기의 안전을 위해 진도 6.9의 지진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가속기터널은 암반 인근에 설치된다. 암반은 내진 대비에 영향을 준다.<사진=박성민 기자>가속기터널은 암반 인근에 설치된다. 암반은 내진 대비에 영향을 준다.<사진=박성민 기자>

중이온가속기는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다. 이곳에는 원소를 이온화시키는 '이온 발생장치', 낮은 에너지의 이온빔을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키는 '가속장치', 가속된 이온빔을 표적에 충돌시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생성된 희귀동위원소를 추출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는 '실험장치' 등의 연구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가속기터널의 폭과 높이는 각각 7m에 이른다.<사진=박성민 기자>가속기터널의 폭과 높이는 각각 7m에 이른다.<사진=박성민 기자>

가속기는 원소의 입자와 이온을 빠른 속도로 가속시키는 장치다. 가속기는 목적과 입자의 종류에 따라 양성자가속기·방사광가속기·중입자가속기·중이온가속기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중이온가속기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기 위한 가속기다.

중이온가속기는 수소·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해 빠르게 가속시킨 뒤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킨다. 충돌 이후에는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하게 된다.

희귀동위원소는 매우 희귀하고 수명이 짧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동위원소다. 우주 진화과정에서 아주 짧은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구상에는 극히 미량만 남아있거나 존재하지 않아 인공적으로 생성·발견해야 한다. 전 세계 과학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희귀동위원소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산 위에서 바라본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사진=박성민 기자>산 위에서 바라본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사진=박성민 기자>

희귀동위원소 생성 방법은 '대전류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ISOL·Isotope Separation On-Line)과 '소전류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IF·In-flight Fragmentation)으로 나뉜다.

대전류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은 가벼운 원소이온을 가속해 무거운 원소표적에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많은 양의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다. 반면 소전류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은 무거운 원소이온을 가속해 가벼운 원소 표적에 충돌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다.

'대전류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인 ISOL 장비가 들어서는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대전류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인 ISOL 장비가 들어서는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세계의 가속기들은 ISOL과 IF 중 한가지 생성방법으로 사용하지만 한국형 중이온가속기는 두가지 방식은 물론 결합 방식까지 적용한 세계 최초의 시설이다.

먼저 ISOL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 뒤 IF로 다시 가속해 더욱 새롭고 희귀한 동위원소 발견 가능성을 높였다. 중이온가속기 연구시설에는 630m 규모의 가속장치를 중심으로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인 ISOL동과 IF동이 구축돼 있다.

조장형 시설건설사업부장은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거나 희귀동위원소가 발견될 때마다 그동안 기초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라며 "기초과학의 한계를 넘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출발은? '은하도시포럼' 이야기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충청권 공약으로 추진돼 2009년 과학벨트 종합계획에 포함됐다. 하지만 입지 선정을 두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일면서 당초에는 올해 완공 계획이었던 사업이 5년이나 미뤄졌다.

우여곡절 많았던 중이온가속기연구시설 건설사업.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뿌리는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前 이사장 등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이 지난 2005년 결성한 '랑콩트르(Rencontre·만남)'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랑콩트르 모임에는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연구할 수 있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는 2006년 4월 당시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은하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9월 랑콩트르 모임은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 포럼'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듬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한나라당은 그해 11월 '은하도시'의 범위에 산업과 교육 등을 추가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란 개념을 만들어 이를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 분야 대표 공약으로 확정했다.

이후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에 과학벨트 TF팀이 꾸려졌고, 2008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들로 구성된 과학벨트 추진지원단이 출범했다.

2009년 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추진지원단이 공청회 등을 거쳐 만든 과학벨트 종합계획을 심의·확정했고, 정부는 과학벨트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과학벨트는 세종시 등 정치·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선 사안과 얽히면서, 사실상 표류하게 되는 등 지역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다가 2011년 거점지구와 기능지구(세종·청주·천안) 등으로 정해졌다.

거점지구는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는 신동지구를 포함해 유성구 둔곡지구, 도룡지구 등 3곳이다. 거점지구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2021년까지 추진되며 총사업비는 5조7044억원이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가 신동지구에 자리잡으며 기초연구에 닻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순찬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단장은 "미지 원소를 찾기 위한 도전이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라며 "새로운 지식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기초과학 연구시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IBS 제공>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IBS 제공>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IBS 제공>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위치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축 현장의 모습.<사진=I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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