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 2일 '남북 과학기술 협력 관련 긴급 좌담회' 개최
전문가들, 서로 배려·인내하며 '긴호흡' 전략적 접근 필요성 강조

긴급 좌담회 참석자들은 왼쪽부터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본부장 ▲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백서인 STEPI 부연구위원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 등이다.(이상 이름순).<사진=대덕넷>
긴급 좌담회 참석자들은 왼쪽부터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본부장 ▲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백서인 STEPI 부연구위원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 등이다.(이상 이름순).<사진=대덕넷>
"남북 과기 협력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자가 전문가로서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야 하며, 북한의 특성도 잘 알아야 한다. 생태계 보전과 같은 전 인류 보편적 가치부터 협력하며 'Korean Risk(한반도 위험)'가 아닌 'Korean Premium(한반도 장점)'을 살려야 한다."(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겸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부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현재 평화 분위기는 북한 체제 유지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체제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태세가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언론의 여론몰이와 감정에 치우쳐 현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새터민 출신 공대생)

지난 달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하면서 비핵화, 남북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대덕넷은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지난 2일 '남북과학기술 교류 협력 관련 긴급 좌담회'를 열고, 전문가들을 통해 과학기술계의 남북교류현황과 앞으로의 역할 등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좌담회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남북한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나친 기대감이나 속도전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남북한 과학기술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특성을 배워야 하며, 연구측면에서 서로가 절실히 원하고, 함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부분부터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겸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통과협) 부회장 ▲백서인 STEPI 부연구위원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이상 이름순)이 패널로 참석하고, 새터민 출신 공대생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북한 연구 맥 끊겨···"전략적 접근 통해 새판 짜야"

"정치적 상황 등으로 연구가 지속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네트워크나 인프라조차 다 무너진 상태다."

과학기술계 남북협력과 연구는 정치 상황 등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준혁 한의학연 센터장은 "원내에서 남북한 협력연구가 10여년간 단절되었으며, 연구 특성상 이를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다"면서 "현실적으로는 연구 인력, 인프라 등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도 "그동안 국내 현안이 많아 남북협력 연구는 후순위로 밀렸던 것이 현실"이라면서 "정치 국면이 전환된 만큼 이제는 출연연이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이 제3국을 통한 협력연구 등을 수행하며 남북 과기 협력의 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이하 통과협)'를 구성해 각각 확보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연구를 지속하기도 했다.

통과협은 지난 2015년 출연연 연구자 중심으로 남북 과학기술협력 외형을 넓히자는 취지로 시작돼 이듬해 공식 발족했다. 협의회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포럼이나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실질적인 정보교류와 남북 협력 연구 기틀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이 협의체는 배타적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전파자(Seed)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조직됐다"면서 "지난해 정책연구과제를 통해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고, 함께 포럼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등 실무 연구자들의 정보교류와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도 "연구회 차원에서 남북 과학기술협력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이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각 출연연에 남북협력 전문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 네트워크 등 협력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정부부처 등에서도 남북과학기술협력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복철 본부장은 "정부에서도 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남북 과학기술협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동해, 서해, DMZ 벨트를 아우르는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다음 달 중으로 공식 발표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정부 차원의 거대 계획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출연연서도 이에 맞춰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치 등을 떠나서라도 북한과의 과학기술협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개별 연구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네트워크 등을 공유해 협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백서인 STEPI 부연구위원은 "과학기술협력은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열악하지만 리빙랩이나 규제 프리존 등으로써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호용 박사도 "전반적으로 19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의 경제수준이나 과학기술이 남한보다 앞서 있었지만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라면서 "북한의 과학기술은 주로 중화학공업, 군사기술 등 생존과 관련된 분야가 발전한 반면 남한은 실생활 응용기술, 산업 기술 등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으로 좋은 효과를 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은 무부분별하고 성급한 연구, 준비되지 않은 연구는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혁 센터장은 "기존에 연구 주제별 협력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보다 실질적인 의제 도출이나 연구 인프라 확보는 쉽지 않았다"라면서 "남북 관계가 유동적이고, 각 연구자별로 연구단계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북한과의 협력 연구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기초부터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서인 부연구위원은 "현재 남북관계 변화 국면에는 미국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으며, 앞으로도 이 부분을 고려해 남북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특히 남북관계는 베트남 사례와도 유사하니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 당시 전략적으로 움직였던 일본의 움직임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대덕넷은 지난 2일 '남북 과학기술 협력 관련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사진=대덕넷>
대덕넷은 지난 2일 '남북 과학기술 협력 관련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사진=대덕넷>
◆현장 전문가 육성도 필요···"경험, 네트워크, 자료 등 공유하고 소통해야"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과학기술협력에 앞서 북한 특성을 이해하고, 전문가들이 서로 축적한 경험, 네트워크, 자료 등을 공유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순석 부장은 "남북 관계는 앞으로도 단절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특히 국내 과학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과학계가 질문 주고 받기 등을 통해 애로점을 모아 정리해도 전략적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급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기존 ODA(공적개발원조) 등 일반적인 국제협력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며, 협력 기반에 상호 신뢰와 현장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호용 박사는 "북한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협력의 기본"이라면서 "기술 격차, 정보 격차 등 여러 제약조건이 있는 가운데 북한의 실정, 용어, 수준 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순석 부장도 "북한을 대할 때에는 '졸부'처럼 행동하면 안된다"라면서 "북한과 남한의 강점을 융합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전략적 차원에서 협력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피력했다.

북한 관련 전문가 육성도 남북 과학기술협력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백서인 부연구위원은 "북한도 사회구조 측면에서 계층 갈등 등 유사한 측면이 많다"면서 "연구에 앞서 우리 스스로 독자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부연구위원은 "북한 연구가 중요한 가운데 신진 연구자 육성도 필요하다"라면서 "정책전문기관 등에서도 연구과제, 네트워크 등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신진 연구자들이 원로 연구자들을 통해 배우고, 이들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남북과학기술협력의 다각적·신중한 접근과 현장 이해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이준혁 센터장은 "과학기술계가 다른 분야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며, 다각도로 접근하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석 부장은 "디지털 문명이 압도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과학기술계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면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호용 박사는 "상호이익을 넘어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창출되고, 한반도 프리미엄이 글로벌 단계에서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정치 상황에 따라 남북협력이 좋거나 나쁠 때도 있겠지만 연구자들이 내공을 쌓으면서 전문가 집단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북한 문제는 국내법, 미국법, 안보리제재. 경제제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전략적 사고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전주기적 단계서 R&D 투자 선순환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정부, 연구자 등 다각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좌담회에 게스트로 함께 한 새터민 출신 공대생은 "독일과 달리 남북문제는 분단국가와 정전국가라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동일하게 접근하면 안된다"라면서 "북한 체제상 남한과 미국이 주적으로 주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경제협력 등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양 주민 입장에서 개성공단, 평양과학기술대 등 남북 협력 소식을 전혀 몰랐을 정도로 북한 사회는 폐쇄적"이라면서 "남북이 생각하는 부분에 괴리감이 존재할 수 있다. 경제 협력 이전에 해외 투자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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