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현규 KISTI 정책기획본부장,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은 놀라울 뿐이다. 남북간 평화 체제의 걸림돌이 제거되고 교류나 협력이 본격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는 남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기에 앞서 10년 전 남북 협력은 어떠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과거의 오류를 줄이고 유효한 방향으로 서로가 만족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협력은 사전 준비가 되지 않은 면이 많았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원천적으로 부족해 분석 가능한 데이터를 갖지 못했다. 접촉도 제한적이어서 통합적인 이해가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또한 1990년대 후반의 북한은 경제적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후였다. 때문에 남북 공동의 활동보다는 당장 식량과 에너지 등 현안이 시급해 협력이나 교류라는 이름으로 남한의 지원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에서 일부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교류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통일 준비 과정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제 판문점선언은 그 후속으로 다시 남북간 철도 연결을 위한 조치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ICT 교류도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미처 준비되지 못했던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교류와 협력의 차원을 달리하는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선행해야 할 작업은 북한의 강점을 찾는 것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강력한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추진해 왔다. 남한의 논문 수준이나 양에 비해 턱없이 적고 전반 수준을 논하기조차 어려운 면도 있지만 발사체 기술이나 핵융합, 레이저 기술이나 CNC 선반 등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는 점은 인정받고 있다.

희토류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천연물 등 생물자원도 다양해 이를 활용한 부가 가치를 높이는 공동의 연구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각각 이를 위한 기초조사와 연구개발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또 하나는 인적 자원이다. 북한의 특징적 과학교육은 수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양성된 인력이 정보통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이들을 공동 연구의 장에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기반 시설과 재료 등 연구환경이 미흡한 북한의 연구개발 환경속에서도 그나마 우수한 두뇌를 통해 해온 지금까지의 성과를 확대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우리로서도 상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북한이 주력해온 분야를 유심히 살필 때 강점이 발견될 것이고 이것이 다른 차원의 협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구축·운영)를 통해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 사전 분석한 자료로 북한의 어느 대학, 어느 연구소, 어떤 기업소가 연관성 있는 기술을 가졌는지, 누구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을지, 기술 현황으로 볼 때 가능한 공동 연구의 시나리오는 뭔지 등 알고 준비해야 한다.

단순 지원 구조의 협력에서 탈피해 상생을 이루려면 북한의 어떤 자원을 발굴(소싱)해 무엇을 목적(타켓팅)으로 할 것인지 검토 작업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남북간 공식 창구를 통한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 과거에는 개별적으로 이뤄진 남북협력의 경험들이 집합돼 다음 또는 다른 협력이나 교류를 위한 공동의 지식이 되지 못했다.

접촉 당사자 개인의 경험에 머물게 되었고, 남한 내에서도 공유되지 못하고, 통일부 등에 단순 보고용 문서로만 그쳐 더 이상의 활용 가치가 없어진 경우가 많았다. 몇 년전부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북한연구와 지식공유, 남북협력 추진을 위해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통과협)'를 발족하고 정기적으로 포럼을 열고 활동을 해왔다. 과학자와 기관별로 진행된 경험과 지식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앞으로 평화 체제에 따른 남북 교류협력이 진전될 경우 예전과 같이 각자 알아서 하는 방식이 재현되어서는 안된다. 반복되면 성과를 제대로 만들거나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 또 생길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일부 무분별한 활동을 제어하기도 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을 위해 창구의 일원화 등 정부 당국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

그 조치는 북한과의 공식 창구가 될 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를 지정, 설립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대북 창구가 없어서 중국 등 경로로 이어진 남북협력을 직접 소통하는 창구로서 연락 사무소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평양 지역에 과학기술 특구도 만들고 공동 실험실과 토론의 온·오프라인 공간을 갖춘 시설도 둬 남과 북의 과학기술자들이 만나 토론하고 실험도 공동으로 하는 협력의 구심점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남한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북한의 국가과학원 등 정부 공식 기구와 남북 과학기술 교류 및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등 기초 작업을 선행적으로 할 필요도 있다.

남북 관계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 북한이 과학기술을 특히 강조하고 중시하고 있어 접근점이 용이하다. 군수 기술 관련해 민감한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정치색을 배제한 상태에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다.

이렇게 진행되는 협력은 일방적 지원보다는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일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의 각종 자원들이 남북에 공히 기여하는 협력으로 평화체제의 남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과학기술계의 역할이며 기대되는 점이다.

◆최현규 본부장은

최현규 KISTI 본부장.
최현규 KISTI 본부장.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으며 KISTI 정보서비스실장, 미래정책연구부장, 중소기업정보지원센터장을 지냈다. 올해 3월부터 정책기획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20여년전부터 북한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갖고 네트워크를 구성,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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