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 책임연구원(yjpark87@kims.re.kr)

외눈박이 퀴클로페스 3형제는 제우스에게 벼락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림포스의 12주신(主神) 중 가장 위대한 제우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상징이 된다.

한편 인간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일컬어지던 아킬레우스는 천재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제작해 준 갑옷으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나약한 인간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제우스의 '벼락'과 아킬레우스의 '갑옷' 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는 '테일러메이드 제품'인 반면 후자는 '기성복'이라는 점에 있다.

퀴클로페스 3형제는 자신들을 무한지옥에서 해방시켜준 보답으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마케이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늘의 신 제우스에게 맞춤형으로 벼락을 제작해 공급했다. 그렇다면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기성복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얘기일까?

그의 모친 테티스 여신은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킬레우스를 출산하는데 그녀가 신도 아닌 일개 인간과 결혼을 하게 된 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길한 신탁을 두려워한 제우스의 강압 때문이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다른 신들이 선물을 준비해 그녀를 위로했는데 어떠한 창과 화살도 막아낼 수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갑옷도 그 중 하나였다. 여기서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로부터 갑옷을 선물 받은 것은 그녀가 아들을 스틱스 강에 목욕시킨 시점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즉 생명체를 스틱스 강물에 담그면 불사의 몸이 되기 때문에 갑옷 같은 무장은 필요치 않으며 단지 강물에 닿지 않은 발뒤꿈치(아킬레스근)만 방어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테티스가 그녀의 아기를 스틱스 강에 목욕시킨 이후에 헤파이스토스가 나타나 선물을 제안했다면 식스 팩의 근사한 갑옷보다는 발뒤꿈치 보호대 정도면 충분하다고 요청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는 주로 돌멩이를 도구로 사용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우리는 그 옛날의 돌멩이를 진화시킨 신소재 세라믹을 개발함으로써 정보화 시대를 열어젖혔다.

컴퓨터, 네트워크, 센서와 통신 등 오늘날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방대하면서도 찰나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정보의 생성과 흐름은 오로지 세라믹 소재와 부품의 혁신에 의존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돌멩이를 진화시킨 게 세라믹이라고 했는데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특정한 필요 기능을 맞춤형으로 부여한 돌멩이가 바로 세라믹이다.

예를 들면, 도핑을 통해 전기의 방향과 자기적 특성, 내부 결함 등을 제어해 투명하거나 색을 띠게도 만들고, 나노 사이즈의 기공을 형성시켜 운동장 면적 수십 배의 비표면적을 활용하고, 열전달을 강화해 방열을 하고 반대로 열전달을 억제해 단열도 하고, 전기저항을 제로로 만들어 초전도 기능을 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용한 기능성을 부여한 맞춤형 돌멩이인 세라믹을 개발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부품의 80% 이상이 세라믹이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세라믹 재질의 센서가 사람의 인지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에 운행이 가능하다. 

요즘은 맞춤복이 아주 드물고 기성복이 대세인 시대이다. 남성용 바지의 경우 허리 사이즈가 인치별로 출시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맞춤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더 작고 접을 수도 있는 획기적인 성능의 첨단 가제트를 지속적으로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목적에 맞는 특정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맞춤형 신소재 세라믹의 개발이 필수불가결이다.
 

◆박영조 재료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박영조 책임연구원.<사진=재료연구소 제공>
박영조 책임연구원.<사진=재료연구소 제공>

박영조 책임연구원은 1994년 서울공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무기재료공학 석사 학위, 일본 동경대에서 재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에서 박사후과정 수료 후 2003년 재료연구소에 입소해 현재까지 엔지니어링세라믹 분야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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