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고지자기학·지구동력학 전문가로 우뚝
"남북 공동연구 통해 백두산 화산 분화 해결책 찾아야"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유럽 여러나라의 하늘이 검게 뒤덮이고 일주일 가까이 항공기 결항이 속출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일본 지질학자들이 훗카이도와 아오모리현 일대에 쌓여 있는 3~5cm 두께의 화산재가 백두산에서 날라온 것임을 확인했던 연구 성과가 다시 부각됐다.

활화산 백두산 폭발은 남한에 1m 이상 화산재가 쌓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미쳤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은 백두산 분화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백두산 분화의 위력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백두산에 주목하며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10여년 이상을 임시직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민족과 사회를 위한다는 목표를 갖고 백두산 관련 연구를 수행해 왔다. 판구조, 백두산 연구 분야를 개척하며 국내 유일무이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를 만나 지질학자가 된 배경부터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태평양판 등 경계상 백두산은 동북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태평양판 등 경계상 백두산은 동북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문과생으로 시작···10여년 임시직 거쳐 고지자기학, 지구동력학 전문가로

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는 고지자기학과 지구동력 한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다. 이 분야 연구는 판이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 분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사진=강민구 기자>
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사진=강민구 기자>
이 분야 전공자는 지질자원연에서도 그가 유일하다. 전공 자체가 삶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 박사는 관련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고등학생 당시 문과생이었던 그는 부친의 권유로 대학 본고사에서는 연세대 지질학과를 지원해 입학했다. 석사를 마친 후 그는 일반 회사 생활을 수년간 했다. 좋은 회사였지만 마음 한켠의 허전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학업과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그는 당시 식사와 연구만을 반복하며 '연구벌레'로 연구에 몰입했다. 

그는 일요일 제외하고는 적어도 16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특히 실험실을 계속 점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주 주야를 바꾸면서도 연구를 수행했다.

학업 막바지에는 지도 교수가 오히려 휴식을 권할 정도였다. 10년 후 그는 당시 실험실을 찾아 그가 책상 한켠에 작성해뒀던 '공부하지 않으면 먹는 것도 없다'라는 카드를 보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박사는 당시 있었던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한번은 그의 실험실 옆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밤을 수시로 샜던 그는 아침 6시경 밖에 소리가 들리자 졸린 눈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에 자욱한 연기와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경비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자료, 시료 등이 실험실에 있어 이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경비원을 도와 불을 끄기 시작했다. 가스, 화학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실험실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약 1시간에 걸친 화재 진압 노력이 효과를 봤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안정적인 연구자리를 찾지 못했다. 10여년 동안 포스닥, 시간강사 등으로 자리 이동이 심했다. 하지만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한때 그는 이 분야를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 박사는 지질자원연에서 임시직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 다행히 당시 연령 제한이 풀리면서 지원이 가능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면이 많았다"면서 "주변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저 역시 인생이 모험이자 도전이었다"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하거나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 부족한 것을 보완하다보면 언젠가 그 활동이 좋아지고 자연스러워질 때가 온다"고 덧붙였다.

◆백두산 파괴력 높아 동북아 전체 영향 가능···"우리 후손 위한 문제"

이 박사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주제는 백두산이다. 그가 백두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화산암 선구자'로 꼽히는 故 원종관 강원대 교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백두산·한라산 연구회'에 소속되어 백두산 현지를 찾았다. 그는 보름 동안 장춘지질대(現 길림대) 연구진들과 교류 프로그램, 시료 채취 등을 함께 하며 백두산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백두산 심부에서 리히터 규모 7.3의 심발지진(深發地震)이 발생한 직후부터 2005년까지 화산지진, 천지가 수 cm 부풀어오르는 등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천지 아래 심도 약 3~5km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백두산 주변에서 8000여회 지속됐다.

이 박사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당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 일본 측과 접촉했다. 2006년 일본화산학회 등을 통해 교류가 추진되었으나 이듬해 북한에서 1차 핵실험을 추진하면서 유야무야됐다. 

이후 북한은 남한과의 공동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했다. 북한은 2007년 11월, 2011년 3월, 2015년 11월 3차례에 걸쳐 남한에 백두산 남북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정권 교체, 북한 핵실험 등으로 실질적 연구활동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3차례에 걸친 접촉 과정에서 백두산 마그마 과학시추 연구 추진 필요성과 국제연구그룹 결성 등이 합의됐다.

​또 북한은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과 미국의 학자들과 협력해 6기의 광대역지진계를 활용해 천지 아래 마그마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에 대한 지각구조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남한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윤수 박사팀이 백두산 일대 암석을 분석하고 있다.<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이윤수 박사팀이 백두산 일대 암석을 분석하고 있다.<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국제적으로도 백두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백두산은 기존 화산과 다른 새로운 유형으로 구분된다. 학술적인 가치가 높아 국제적으로 유명한 화산 연구 대가들도 이 박사에게 백두산 연구를 함께 하자고 제의를 해오곤 한다.

AAAS(미국과학진흥협회)와 국제대륙과학시추프로그램(ICDP)와 같은 국제기구와 백두산전문가그룹 등도 협력체계를 구축해 백두산 마그마 과학시추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백두산 연구에 대한 중국 연구진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백두산 연구를 추진하면서 학계에 다수의 논문이 쏟아졌고, 이미 백두산보다 장백산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중국은 1999년 장백산화산관측센터를 설립하고, 천지주변에 11개의 지진관측소, 16기의 GPS Site 등 천지 주변에 장비를 설치해 화산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이 박사는 백두산 연구를 위해 기관에서 3년 정도의 지원을 받아 13개 기관 30여명의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관련 연구를 추진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컸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의 설득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 연구진에게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국내 연구진은 CNSF(중국자연과학기금) 담당 국장, 원사 등을 직접 찾아 국제공동연구이 필요하는 설득작업을 진행했다.

이 박사는 ICDP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동연구와 함께 판구조 특성상 백두산 연구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구과학 현상을 대비하는데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일본이 2011년 발생한 도후쿠 대지진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남해(Nankai) 지진이다. 이 일대에서는 300년마다 거대 지진이 발생해 왔다. 지난 1707년 호에이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2000년대에 지진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위치상 오사카, 요코하마, 고베, 도쿄 등 주요 도심을 일순간에 파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본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일본은 7km의 시추를 거의 완료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곳의 응력을 측정해 변화를 탐지할 수 있다.

이 박사는 판구조론적 특성상 전진부터 본진까지 응력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 중국 송랴오 분지(부여 분지), 일본 남해, 한국 백두산 등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점에서 백두산 연구 등을 함께 하며 추후 발생할 재해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국내 연구진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백두산에서 암석시료를 확보했다. 이후 중국에서 관련 연구를 경계하면서 더이상의 시료 확보는 쉽지 않다. 

현재 국내 화산 연구에 대한 관심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울릉도와 제주도 등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울릉도는 백두산과 함께 고온의 마그마가 있는 활화산이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다. 지질자원연 연구진도 이러한 점에서 울릉도에서 선제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백두산에 도입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박사는 화산지질조사, 마그마 지구물리화학 탐사, 과학시추, 초소형 관측장비 설계, 마그마 모니터링-모델링 등 단계별로 백두산 연구에 접근해야 하며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도 적극 활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또 백두산 연구가 극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주기술이나 플라즈마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소기술처럼 산업기술 발전을 이끄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산 분화 예측을 위해서는 극한 환경 속에서 땅속 여러 신호들을 분석하고 해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공학자들이 필요하며, 복잡한 환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기술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이 박사는 "앞으로 마그마 환경에서 신소재, 신호를 위한 위성통신 등의 기술 발전이 함께 이뤄져야하며, 많은 제품들이 개선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돼야 한다"면서 "공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화산은 지진연구보다 더 어렵다"면서 "지진이 물성, 응력 연구라면 화산은 열, 진동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며, 예상치 못했던 부분들이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백두산 연구가 우리 동포, 더 나아가 인류와 우리 후손을 위한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국민적 관심과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박사는 "백두산이 폭발하면 환경을 복구하기 어렵고, 우리에게도 피해가 클 것"이라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함으로써 향후 발생할 재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생존이자 후손들을 위한 문제"라고 말했다.

백두산 현장을 찾은 연구자들의 단체 사진.<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백두산 현장을 찾은 연구자들의 단체 사진.<사진=이윤수 지질자원연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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