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기술비평
공저: 이영준·임태훈·홍성욱, 출판: 반비

◆알파고 쇼크에서 과학기술 교육까지 생존과 존엄을 위한 기술 리터러시

공저: 이영준·임태훈·홍성욱, 출판: 반비.<사진=YES24 제공>
공저: 이영준·임태훈·홍성욱, 출판: 반비.<사진=YES24 제공>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만큼 기술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인은 나의 일과 생활에 핵심적인 기기들의 작동 원리조차 모른다.

테크놀로지는 일반인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을 컨트롤할 지식조차 갖지 못한 채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러 있다.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변화하는 테크놀로지 환경과 함께 살아가려면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 리터러시'는 필수다.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어떻게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바라보고 호기심을 기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기술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자율성과 통제력을 확보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방법을 이끌어주는 훌륭한 가이드가 돼준다.

이 책은 기술과 사회, 기술과 정치, 기술과 인간 존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굉장히 드문 책이기도 하다. 테크놀로지에 관한 말은 넘쳐나지만 대부분 신기술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을 셈하거나 첨단기술의 발전에 경도되어 하루빨리 뒤쫓을 것을 종용하는 목소리에 치우쳐 있다.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경영학이나 미래학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 이상의 시각에서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세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어떤 미래를 지지할 것인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논한다.

알파고 쇼크로부터 빅데이터의 효용과 위험, 제조업의 붕괴, 노동 환경의 변화, 한국 ICT 담론의 문제, 저성장 시대의 기술 혁신, 과학기술 교육의 나아갈 방향까지 최신의 기술 이슈를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짚어나간다.

우버와 에어비엔비의 사업 모델을 응용하면 삶 전체를 ATM 기기처럼 운영할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원하는 시간 동안 내 부엌을 식당처럼 운영한다거나, 비경제활동이었던 습관적인 동네 산책을 누군가에게 데이트 서비스로 제공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이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할까? 가계 부채가 가중되고 고용 안정성이 악화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에 더욱 목매달 수밖에 없다. (35~36)

이 지난한 과제를 푸는 데 인간과 컴퓨터가 협업할 수 있는 까닭은 '문학'이라는 말뭉치(corpus)가 연구 자원이자 매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문학 텍스트를 인간과 컴퓨터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가공하는 일이란 까다로운 과제다. 연구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교육 시스템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수행하려면 전통적 문학 연구자가 배우지 않았던 C++ 언어, 파이선(Python) 등의 코딩어를 익혀야 하고, 대형 컴퓨팅 그리드에서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는 MPI(Message Passing Interface) 기술도 훈련해야 한다. 스탠퍼드 문학 연구소에서도 구성원들의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디지털 인문학이 건실한 성과를 내기 위한 선결 과제도 기초 연구 역량 강화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84~85)

디지털 리터러시의 기획 역시 환전될 수 있는 앎의 부가가치를 좇는 일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삶의 관계를 숙고하는 질문들로 리셋(reset)할 수 있다. 이때 무지는 앎만큼이나 값진 성취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기 위한 적극적인 질문과 사유 없이는 무지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질문하지 않는 자동화된 지식이다. (94)

수술실은 극단적인 배제의 공간이다. 거기는 해로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다. 물론 사람도 의사, 간호사, 환자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아마도 근대가 만들어놓은 배제의 시스템이 가장 과학적으로 작용하는 곳이 수술실일 것이다. 엄격한 배제로 인해 수술실에는 경건한 분위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수술하는 장면은 흡사 절의 가장 깊숙한 곳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를 꺼내오듯이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127)

사람들은 기계로 만든 음식을 원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엄마가 감으로 밥을 한다면 패스트푸드는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다. 재료의 성분과 양은 철저히 계산돼 나오고, 그것을 담는 손의 동작도 철저히 훈련된 것이다. 채소는 정확한 양을 넣을 수 있는 손 모양으로 집어서 놓고, 소스와 드레싱도 정확한 양을 짜 넣는다.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패티와 번을 굽는 시간과 온도는 철저히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된다. 저녁을 차렸다가 식구들이 안 들어오면 식어빠진 음식을 데우고 또 데우는 집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217)

기존의 창의성 교육에서는 교사 등에 의해서 하향식(top down)으로 탐구 주제가 정해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청소년 적정기술 프로젝트에서는 청소년들이 주위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 등을 통해서 타인과 공감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문제를 도출하게 된다. 도출된 문제는 '관점서술문(point of view statement)'을 통해서 표현된다. "○○는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와 같은 형태의 문장이다. 관점서술문은 공감과 이해를 표현하고, 뻔하지 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분명하고 간결하며, 다음 디자인 작업에 대한 방향성을 제공해야 한다. (329)

사회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있으면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맥락이 바뀌더라도 그 사람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틀 안에서 메이커 교육, 3D프린팅 교육, 코딩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코딩을 하고 3D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고 아두이노를 사용한다고 문제해결 능력을 갖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시스템적 사고 없이 하드 스킬만 습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349)

지금 대세라고 해서 인공지능이니, 코드니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너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니?" "공기가 맑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그래? 그러면 뭐부터 공부해야 될까?" 생물이나 지구과학 같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배울 수 있겠죠.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내가 살고 싶은 사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같은 목표와 대상이 분명해졌을 때, 그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수단들을 강구할 수 있게 됩니다. (350)

캘리포니아발 ICT 담론을 한국 사회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발 ICT 담론은 조증을 앓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문제가 많은데도 즐거워 죽겠다는 식이죠. 돈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 돈이 과연 어떻게 흘러들어 오고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깊이 사고하고 있지 않습니다. 1, 2년 정도 화제를 이끌었던 기업들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망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스타트업 기업 중 주목받는 기업조차 고용 수준을 보면 100명이 안 돼요. (354)

기계에 견줘 인간의 존엄이 너무 바닥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공포에 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죽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겠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테크놀로지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이래로 사람들은 언제나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려보십시오. 더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우리는 길에서 자동차를 피해 다니죠. 기술에 의한 엄청난 소외 현상인데 우리에게는 체화되어 있습니다. (372)

◆ 기술만능주의와 기술혐오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제공하는 인문학, 예술, 공학의 탁월한 크로스오버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의 세 저자들은 넓은 스펙트럼에서 기술을 다각도로 조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들이다. 인문학, 예술, 공학이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테크놀로지의 잠재력을 고민하고 연구해온 대표적인 전문가들인 덕분이다.

사진비평가이자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이영준은 최초로 '기계비평'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기계의 속내를 직접 체험하고 꼼꼼하게 기록함으로써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온 기술의 이면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도록 이끌어준다.

인문학자이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로서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복합을 교육하는 임태훈은 인문적인 비판의 시선으로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를 날카롭게 바라보도록 질문을 던진다.

국내 적정기술 연구를 최전선에서 이끌어온 적정기술연구소장이자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홍성욱은 공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적인 테크놀로지를 위한 문제 해결 방식과 사회적 디자인을 제안한다.

세 저자의 탁월한 크로스오버는 어느 한쪽의 관점으로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무비판적인 기술만능주의와 막연한 기술혐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통섭을 보여준다.

싸이의 4분 13초짜리 노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만 26억 번 조회됐다. 누적 시간은 2만 년을 넘어섰다. 누군가 홀로 이 노래만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4대 문명의 태동과 예수와 부처, 마르크스, 이명박과 박근혜의 탄생을 지나 지금에서야 겨우 끝났을 지구사적 과업이 되었을 것이다. 숟가락 하나로 산을 강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지만, 말춤이나 광고를 쳐다보는 일에는 순순히 투항한다. (57)

게임 중독자는 게임 밖의 게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현실 세계에서 겹겹으로 수행해야 하는 게임의 룰(노동자 되기, 국민 되기, 납세자 되기 등) 중에서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들은 게임 세계의 룰을 한층 더 강박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 세계의 규칙에도 능숙해지지 못하면 게임 세계에서조차 낙오된다. 모든 책임은 게임 바깥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쏠린다. 이들의 진짜 문제점은 뇌에 이상이 생겼다거나 생활 습관이 나쁜 것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숭앙하는 체제 순응자와 게임 중독자는 쌍생아처럼 닮았다. (79)

혼화지, 여과지, 응집침전지 등의 연못들이 개방되고 노출돼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오존접촉지는 완전히 폐쇄돼 있어서 볼 수가 없다. 이제 연못은 눈으로 볼 수 없도록 탱크에 싸여 완전히 비밀의 장소가 된다. 이곳의 오존 발생 장치나 오존 투입 장치는 앞서의 시설들과는 안전 기준도, 설계 방식도, 이미지도 완전히 다르다. 앞서 본 연못들이 20세기에 만들어진 시설들인 데 반해 고도정수처리장은 21세기의 시설다운 특징과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소위 말하는 '기계의 포스'가 아주 강한 곳이다. 수돗물을 만드는 곳이라기보다는 핵발전소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대단히 정밀하고 철저하게 설계되고 시공된 느낌이 든다. (168~169)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온갖 양분을 빨아들이고 수직으로 서서 햇빛을 받으며 온갖 작용을 해내는 나무처럼, 빌딩도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땅속에서부터 다양한 양분들을 받아들인다. 나무둥치 안에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빌딩도 그 둥치 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다. 나무가 거대하고 활발한 신진대사의 체계이듯 빌딩도 에너지와 정보와 사람과 물자, 공기, 공기에 실린 냄새까지도 활발하게 신진대사를 일으키는 체계다. (174)

MIT와 스탠퍼드에서는 '코드 포에트리(code poetry)'라는 교육을 합니다. 코드어로 시를 쓰는 거죠. 코드 자체를 읽으면 센스 있게 코드를 활용해서 시를 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코드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보면 영상이 나온다거나 소리가 나오는 거죠. 여러 가지 기술적인 가능성들, 해석의 가능성들을 여러 층위에 집어넣는 겁니다. MIT에서 벌써 10년 정도 꾸준히 커리큘럼에 넣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당장 기업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 사회 같으면 "그럴 시간에 C++이나 자바라도 하나 더 가르쳐."라고 할 텐데, 정규 강좌로 계속 가르친다는 거죠. 그런 게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353)

사회적 혁신이나 국제개발 쪽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만, 대부분 인문계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런 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공학 지식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작은 스케일로라도 문제를 풀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공계생들은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갭이 있습니다. (357)

미국 캘리포니아발 메이커 문화에 들뜰 게 아니라 우리에게 원래 있었던, 동네마다 있었던 메이커들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이 사라짐으로써 잃은 역량이 무엇일까, 그러한 결핍과 상실의 시간들을 되짚어봄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65)

<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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