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9돌 대가들의 고언 "지식생산"

최진석 건명원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 박문호 박사 등 모여 학습 모임
기존 방법으로는 희망 없어···지식인이 새판 짜는데 앞장설 것 강조
"우리는 그동안 지식을 수입하고 소비하는데 익숙하다. 이제는 지식인들이 지식 생산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지방에서 일어나서 확산돼야 한다."(최진석 건명원장)

"요시다쇼인이 송하촌숙(松下村熟)에서 제자 90여명을 양성해서 메이지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성균관을 비롯해 송하촌숙보다 좋은 교육기관이 많았음에도 나라를 잃게 됐다. 그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김태유 서울대 교수)

"자연에는 무한대에 가까운 담론의 영역이 있다. 하지만 이 분야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학습을 못한다. 자연과학 확산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돼야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박문호 박사)

철학, 공학, 자연과학 등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대가들의 고언이다. 지난 1일 3·1절 99돌을 맞아 대가들이 함께 학습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지식 소비국'에서 '지식 생산자'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대가들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은 정점을 찍었으며, 국가가 상승과 후퇴의 경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현 국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지식인들이 앞장서 '새말, 새몸짓'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건명원장은 "지식을 습득하는 일과 달리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누구나 못한다"면서 "모든 새로운 것은 변방에서 시작된다. 지식인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새말 새몸짓'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가들이 3·1절 99돌을 맞아 학습모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대덕넷>대가들이 3·1절 99돌을 맞아 학습모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대덕넷>

3·1절 99돌을 맞아 진행된 학습모임 참가자. 박문호 박사(왼쪽에서 2번째), 최진석 건명원장(왼쪽에서 4번째), 김태유 서울대 교수(맨 오른쪽).<사진=강민구 기자>3·1절 99돌을 맞아 진행된 학습모임 참가자. 박문호 박사(왼쪽에서 2번째), 최진석 건명원장(왼쪽에서 4번째), 김태유 서울대 교수(맨 오른쪽).<사진=강민구 기자>

아래는 담론 내용 전문.
 
최진석 건명원장: 3·1절을 맞아 '듣고 보다' 영상을 공개했다.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탁월하다는 것은 앞선다, 가장 높다, 전략적이다, 판을 짠다 등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탁월하지 않은 사람은 판단을 한다. 반면 탁월한 사람은 보고 듣는다. 보고 듣는다는 것은 인간 모든 활동의 가장 원초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판단한다는 데 있다. 기존 지식을 재활용하거나 기존 세계관을 반복하는 일들을 한다. 새 세상 여는 일, 판짜는 일, 지식을 생산하는 일에는 어둡다. 

판단하지 않고 보고 듣는 사람만이 새 세상을 열거나 지식을 새로 생산할 수 있다. 가령 연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누구나 이것을 본다고 생각하면 시선이 오다가 연필이라고 판단하고 되돌아간다. 대상을 전인격적 또는 진실한 접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장치들을 활용해 이 연필을 미리 판단한다.

즉 상태를 존재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욕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존재와 소유가 달라진다. 자신에게 이미 있는 관념을 갖고 자신의 뜻이나 틀대로 지배하려고 한다. 우리가 판단하는 장치이자 소유하는 장치이다. 이것 그대로에서 출발해 소유적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유적 상태에서 본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이 연필까지 오다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선이 연필로 와서 붙는 것을 의미한다. 붙는 것만으로도 인간으로서 높은 차원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붙어있는 시선을 머물게 하는 것이 '관찰(觀察)'이다. 시선이 머물면서 세세하고 깊게 볼 수 있다. 모든 학문, 시적 승화의 기본 조건은 이처럼 관찰에서 시작한다.

관찰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 듣고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듣고 보면서 관찰이 시작된다. 관찰은 붙었다가 떼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집요함도 있어야 한다.

집요한 관찰을 하면 기존에 봤던 것이 다르게 보인다. 즉 새로움이 보인다. 다르게 보면 나도 달라진다. 물질이 허물어지고 나 자신도 허물어진다. 정체성이 서로 깨지면서 새로운 영토가 확장된다. 듣고 보고 관찰하면서 새로운 영토가 확장될 수 있다.

인간에게 새로운 영토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배자다. 새로운 영토가 전개되는 과정이 시적 승화이며, 그 결과를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을 가장 높은 단계로 보는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다.

현재 고민하는 것은 지성적인 높이나 경험을 다루는 태도. 삶에 접근하는 양식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 상승이나 후퇴 시작의 경계에 있다고 본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이미 후퇴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지식인이라고 하면 비판적 지식인의 형상을 생각한다. 반면 중국은 지식인을 우환의식을 가진자라고 본다. 즉 걱정하는 사람이다.

남들보다 빨리 듣고 보고,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지식이 인간 세계와 관련해 나타나는 사람을 리더라고 한다. 리더는 보통 사람보다 가장 늦게 웃고 먼저 우는 사람이다.

요즘 걱정 많은 지식인의 형상으로 정점을 찍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문명은 크게 세개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층은 구체적 물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물건이 생성, 유통되는 길이 중간층(제도, 시스템)이다. 이곳은 반구체적이고 반추상적이다. 나머지 한 층은 완전히 추상적인 철학, 아젠다, 비전으로 되어 있다.

시선이 물건에만 머물면 후진국이다. 제도나 시스템 있으로 발전해야 중진국이다. 여기서 아젠다, 생각, 철학이 있으면 선진국이 된다.

가령 음악과 비유하면 구체적 물건 있는 단계가 피아니스트이다. 음악체계, 시스템을 다룰 때 뮤지션이며, 생각이나 철학 등을 다루면 아티스트라고 한다.

지성적 활동 측면에서 보면 물건을 다룰 때가 지식이다. 그 다음이 지혜이다. 현재 일을 어떻게 더 낫게 처리하는가를 고민한다. 지혜의 상위층은 모략으로 아젠다, 비전, 꿈을 논한다.

지혜는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예측하는 것이다. 가령 점심 먹고 난 이후를 예측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이 예측 내용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모략이다.

우리나라는 모략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데 미국인은 이를 PLOT(구성), DESIGN(설계)라며 이를 중시한다. 

지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다음 것을 추측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목표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를 갖고 어떠한 판을 펼치고, 무엇을 할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모략, 설계의 단계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중간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이나 지적 해석 능력이 중간단계만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모략, 디자인 단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 설계하고 직접 판을 짜본 경험이 우리에게 없었다. 

어떻게 우리의 시선이나 활동성을 무엇을 하는 단계로 끌고 가는가가 지금 지식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썼다. 요즘 모략가로서 같이 할 수 있는 분이 누군가인가를 찾는 것이 관심사다. 

최진석 건명원장: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어야 한다. 모든 학문은 이름이 명사인데 철학만 동명사이다. 'Philosophia'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철학적 활동을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적 활동의 결과를 배우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적 활동을 제대로 하기위해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선진국 단계에서는 과학적 사고가 핵심이다. 한국은 아직 과학적 사고가 일반화된 나라가 아니다. 과학이 지적 축적을 넘어 사회 운동으로 확장돼야 한다. 

오충근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고신대 음대 교수를 하다가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최진석 원장과 3년전 연락해서 만났다. 강연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저서를 읽고 꼭 한 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면서 콘서트를 열자고 생각했다. 함께 나눈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음악가, 관객들도 최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봤다.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노자와 베토벤' 콘서트를 기획했다. 이 콘서트는 음악이 철학의 높이로 올라가야 예술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음악의 감동을 받아야 활동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취지다.

철학자 대표로 노자, 음악가 대표로 베토벤을 활용해 공연한지 3년째다. 고주망태에는 고독, 술, 망각, 태도가 담겨있다. 강연이 길면 관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연주도 함께 한다. 관객들이 몰입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최진석 건명원장: 모든 새로운 것은 변방에서 시작된다. 중심은 주변을 지키고, 변방은 항상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인들이 변방적 사고를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변방으로 모는 힘이 약하고 중심을 지키고 편입되는데 익숙하다. 스스로를 변방인으로 내몰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어떠한 지식도 새로워질 수 있다. 인류사는 주변이 중심을 정복하는 역사이자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역사다.

정복이 필요할 때 중심이나 주류가 정신을 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복이 필요할 때는 소수와 주변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오 감독과 약속한 것도 88고속도로 이남에서 하자는 것이다. 

혁신 운동으로서 기대가 되는 곳이 대전, 부산, 광주 세 곳이다. 부산은 지역중에서 경제력과 문화력이 세다. 대전은 과학이 가장 전면에 나선 유일한 도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면 과학적 사고가 핵심이 된다. 대전에는 과학적사고를 운동으로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있다. 그 다음이 광주이다. 지금 정치를 새로운 정치모델로 변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인의 활동을 살펴 보면 일본이나 중국에는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덤비는 지식인들이 많다. 부자들도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자금을 지원한다. 따라서 일본이나 중국은 문화나 학술에 민간 자본 유입이 많다.

앞서 있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각성이 항상되어 있다. 그 뜻을 펼치면서 사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 우리는 지식인이 분석, 비평하는데 힘을 쏟는다. 

비평, 분석은 정확하게 알게 해주지만 그 상황을 변화하거나 개선시키는데 기능을 못한다. 지식인은 시대의 병 고치려는 사람이자 시대가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은 항상 나한테 필요한 것부터 찾는다. 나한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고 지식인은 당장 나한테 필요한 것보다 시대가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알아주고,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 지식인의 형상이라고 믿는다.  

아쉽게도 우리는 병을 치료하고, 고쳐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이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그 결과만 수용해서 습득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지식인들은 병을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성을 훈련받지 못했다.

이들은 오로지 분석, 비판, 평가하는데만 정력을 쓴다. 내가 무엇을 하고 모략해야 하는지를 훈련받지 못했다. 역사가 정치적이고 가치적인 진보는 있어보이지만 가치와 정치성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구조, 비전, 변화 등은 해내지 못했다. 새로운 것을 도모하는 일이 일본, 중국에서 일어나는 반면 우리는 안된다. 

중국에는 노신, 진덕수, 모택동 등이 있다.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 있다. 요시다 쇼인이 일본에 없었으면 지금 일본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답보상태에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요시다 쇼인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 역사가 막부에서 근대로 넘어가야 하는 필연적 조짐 있음에도 막부는 권한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은 자신이 사무라이임에도 이를 부정했다. 사무라이 계급이 '자기부정'을 통해 시대변화를 만들었다.

한국의 386,586 세대는 과거로 게속 회귀한다. 자기부정이 없다. 시대적 역할을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이 없다. 자신이 하던 말만 계속한다.

'새말, 새몸짓'이라는 주제를 만든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모든 문법, 언어, 주장 등이 이미 낡은 것이라는 것이다. 새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기존에 하던 말만 되풀이한다. 사용하던 문법을 계속 재사용하는 형국을 새로운 판으로 갖고 가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강연을 하면 꼭 요시다 쇼인 이야기를 한다. '자기부정'이라는 표현이 공감이 됐다. 3·1절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복수는 극복이고 자기 회복의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책 속 표현에 공감이 간다. 우리 미래, 인류 문명사적 표현이 들어가 있다. 이 부분을 국민들이 공부해야 한다. 철학을 잘 모르고 공학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 책을 보면 생각이 똑같다. 요시다 쇼인이 옛날 것을 다 부정했다.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기계함군대 만들었다. 백정, 농민이 군대에 들어가 있다. 그 군대를 갖고 막부를 격파한다. 자기부정이라고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다.

최진석 건명원장: 요시다 쇼인이 송하촌숙을 만들어서 3년 운영한다. 총리 4명 등을 포함해 90여명의 인재를 배출한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처음에 출발한 것이다. 이 일이 현재 일본을 만든 출발점이다. 우리도 여기서 힘을 얻어 건명원 만들어 보자 생각했다.

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누구나 하는데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누구나 못한다. 의미있는 일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습득하는 목적도 생산이 목적이 돼야 한다. 그런데 습득만 하다가 생산은 시도도 안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철학을 철학답게 하는 일이다. 지식을 지식답게 다루고, 삶을 삶답게 꾸리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삶을 품격있고, 높은 차원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요시다 쇼인이 제자 90여명을 양성했지만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반은 죽고, 반이 남아 유신을 완성한다. 당시 조선도 교육은 많이 했다. 성균관을 비롯해 향교, 서원 등을 포함하면 800여개의 교육기관을 통해 교육을 철저히 했다. 모두 당시 송하촌숙보다 시설이 좋았지만 조선이 식민지가 됐다. 그 이유를 내내 생각했다.

당시 조선의 서원, 향교 등에서는 사서오경을 외우기만 했다. 사유하지 못했다. 중국에 방문했을 때 한 중국인이 일본에서 나온 유학담론은 있는데 왜 조선에서 나온 유학담론 없는지 되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주자의 해석에 대해 조금만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사문난적이라고 해서 유학계에서 파문을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학설이 나올 수 없었다. 좋은 학설이 나오려면 조금 틀린 학설도 나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조상은 사유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진석 건명원장: 요시다 쇼인이 일본에서는 학문의 신이다. 요시다 쇼인의 모습을 보면 칼을 차고 책을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학문의 신이 없다. 세종대왕, 이황 등의 모습을 보면 책만 보고 있다. 서양의 지혜의 신인 미네르바도 갑옷을 입고 있다.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교수들도 오면 세종대왕 이야기를 하면서 왜 칼이 없냐고 반문한다. 

우리는 학문을 글공부로만 제한한다. 학문이 현실을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자체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을 현실 세계 안에서 생산한 경험이 없고 만들어진 지식을 수용만 해봤다. 글로만 존재해도 지식이 지식으로의 역할을 다 한것으로 생각한다.

윤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윤리를 생산해 본 경험이 없다. 윤리 기준이 모두 수입되었으며, 이 윤리에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따라서 세계를 진위선악으로 판단하게 되고, 모든 문제를 분류하며 시작하게 됐다.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풍조 중 하나가 전쟁을 윤리적 악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윤리적 악이기 때문에 하면 안되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 일본, 중국인들과 이야기 하면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법, 전쟁을 다루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해 질문하다. 우리는 최고 지성인부터 전쟁을 악이라고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 후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계에 대처하는 능력이 결여되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현재 우리가 진정한 우리가 맞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우리가 주자학에 잠시 현혹되어 본체가 아닌 잘못된 이데올로기로 덮여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성리학이 500년동안 깊숙히 뿌리내렸다.

송은 사실 중국 역사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금나라 등에 조공을 바쳤다. 이곳서 태어난 것이 주자학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양명학 등으로 버린 학문인데 그게 우리에게는 완전히 주입됐다. 그게 우리 민족적 암흑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진짜 우리는 다른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최진석 건명원장: 다른데 있어야 하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야 한다. 송나라가 중국에서 제일 약했고, 영토도 좁았다. 당나라가 지방분권으로 망한다. 당 말기에 중앙 통제력이 약화됐다. 한유라는 철학자가 나타나서 한족으로 뭉쳐야겠다 해서 도통설을 제기한다. 유학으로 다시 뭉치자 이야기했다. 중화민족의 전통 사상을 유학으로 하자며 모였다. 주자학은 중국에서는 짧은 기간이었다.  

고려와 당이 망한 것도 구도는 비슷하다. 조선은 송이 당을 극복한 것처럼 유학을 받아들여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문제는 중국은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현실적 토양에서 직접 생산하는 반면 우리는 생산과정 없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입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국가들의 특징은 이를 얼마나 잘 지켜내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지식 수입업자들은 그것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있는 것을 지키며 일생을 보낸다.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 전인 200년 동안 이러한 모습이 계속됐다. 중국은 왕조가 교체되면서 이데올로기도 계속 바뀐 반면 조선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직후에서야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의 정기가 끝났다고 본다. 임진왜란을 당한 것이 치욕이 아니라 이를 당하고도 복수전을 기획도 안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사람에게 복수라는 것이 사라졌다. 민족이 한번 해야할 일을 안하게 되면 다시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임진왜란은 크게 부끄럽지 않다. 당시 일본이 인구, 쌀생산량, 조정 수입량 등 많았다. 일본은 전쟁도 많이 치뤄서 역전의 용사도 많았다. 반면 우리는 이전까지 전쟁이 없었다.

가슴 아픈 것은 임진왜란후 공신록에서 의병도 제외되고, 환관 등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빛을 볼수록 선조가 정치력을 잃는다. 선조는 '정치 10단'으로 정치적 입지 확충에 주력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민생을 희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선조다. 국가를 폐허로 만들고도 대왕 칭호를 받고 나라 권위를 유지했다. 정치적 댓가가 백성에게 피와 땀, 고통으로 다가왔다. 선조의 정치가 무너지기 때문에 복수를 생각할 수 없었다. 

최진석 건명원장: 임진왜란 때 복수하지 않고 모사꾼들만 앉아서 현실만 안정시킨 일들이 그때부터 이어져온 것 같다. 임진왜란보다 더 치욕적인 것은 일제 35년이다. 이를 겪고 나서도 극복하거나 복수하려는 모습이 없고 증오, 한탄만 했다. 일종의 습관이 됐다. 이를 어떻게 해서든 바꿔야한다. 삶을 보는 시선이 탁월하고, 과학적, 철학적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새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더 큰 치욕을 겪게 될 수도 있다.

박문호 박사: 인류는 2가지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언어를 쓰는 언어와 일반 철학·예술에서 사용하는 언어 2종류로 구분된다. 과학적 언어는 국경이나 민족이 없다. 기본적으로 자연 자체를 본다.

반면 나머지 담론은 인간에 관한 언어다. 철학, 예술이 인간의 언어다. 여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어떠한 담론은 적용 자체가 안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과학운동을 시작했다.

별과 별 사이에 침묵하는 절대 공간에 대해 문학적, 예술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역사, 철학, 문학 등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많이 할수 있다. 문사철이 다루는 영역은 실제적이다. 인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우주 전체는 인간과 관련된 문제는 극히 일부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쪽 분야에서 지식 생산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문학, 사학, 철학을 끝까지 하면 인간의 창의성, 감성은 증가할 수 있다. 지혜는 얻을 수 있지만 블랙홀, 4차원세계, 입자물리학 등의 세계를 접근하기는 어렵다. 역사와 문학은 인간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알고 모르고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자연과학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과학에는 무한대에 가까운 담론의 영역이 있는데 이쪽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들어가지를 못한다. 익숙한 부분만 찾는다. 인류는 남/여로도 구분할 수 있지만 일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인류사적으로 큰 사건이다. 언어에 의해 세계가 형성되는데 우리 사회는 담론 구조가 한쪽에 치우쳐있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공학과 경제학을 모두 다루고 있다. 경제학은 인간에 기반하고 공학은 자연에 기반했다. 뉴턴은 자신이 투자한 자금을 모두 잃었다. 천체는 계산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자연과학보다 사회과학이 훨씬 더 심오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경제학 학습을 마무리하며 느낀 것은 자연과학에는 정답이 있지만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사회과학은 오류로 빠질 수 있다. 앞으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도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서 사회를 정답으로 끌고 가야 한다.

박문호 박사: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을 점수로 평가하면 70점~80점 정도라고 본다. '천상열차분야지도'도 나왔지만 현대 우주론과 연결이 안되고 과거를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다. 중국의 장이모 감독과 대비됐다. 중국은 맥락 연결이 훌륭했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가 추상적 사고, 창의성에서도 중국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과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잊지 않고 과거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다. 차라리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아예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최진석 건명원장: 우리가 그동안 지식생산의 위치에 한 번도 서보지 못했다면 이제는 한 번 서봐야 할 때가 됐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실함과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지식인이 가장 근본적인 지적활동으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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