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네 '철옹성' 깨자는 주체적 목소리 "특구 혜택 지역에 나눠야"
22일 매봉산 지역 지키기 대안토론회···'한 평 사기 운동' 구성원 '연대'

과학동네 허파로 불리는 매봉산 등의 부지를 지키기 위해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한 평사기 운동 등으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사진=대덕넷>
과학동네 허파로 불리는 매봉산 등의 부지를 지키기 위해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한 평사기 운동 등으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사진=대덕넷>
"우리의 지역 생태계를 살리는데 왜 국가의 자금이 쓰여야 하는가?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우리의 힘으로 보존하자. 그동안 대덕연구단지는 국가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다. 혜택을 지역에 나눠야 할 때다."

"과학동네는 45년 클러스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공동체를 만들어 힘을 모아야 한다. 수려한 경관에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방관할 수 없다.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한 평 사기 운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매봉산 지역을 지키기 위해 과학동네 구성원들이 제시한 대안이다.

이들은 지역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 대덕연구단지 최적의 중심지였던 대덕과학문화센터가 1993년 건립된 뒤 2003년 목원대에 매각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지역 생태계가 훼손되는 과정을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에 불과했다면 이번 매봉산 이슈에 대하는 태도는 180도 다르다. 스스로 '해결사'가 돼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과학동네 허파로 불리는 매봉산 등의 부지에 아파트 건설 바람이 부는 가운데 바람직한 대덕특구 환경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시민과 연구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덕특구 내의 커뮤니티 그룹인 벽돌한장과 대덕몽, 과실연, 대덕밸리라디오 등은 22일 오후 6시 30분 UST 사이언스홀에서 '대덕특구의 허파, 매봉산 지역환경과 공공가치 살리기' 주제로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원탁토론회는 모든 참가자가 토론회에 직접 동참해 의견을 개진하는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됐다. 출연연에서 38년째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박사는 연구단지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공공 예산 대덕특구로 쏠리면서 실제 소외받는 계층이 혜택을 못 본 경우도 있다. 정부의 자금이 꼭 연구단지로 와야 하는지 의문이다"라며 "우리 지역을 살리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지역을 살려주기를 기다리지 말자"고 말했다.

도룡동 현대아파트 주민이자 출연연 구성원인 서지미 에너지연 박사는 "연구단지가 45년 된 클러스터지만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진단하며 "대덕특구 연구자만 수천명이 넘어간다. 한 가족이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여도 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대덕특구 45년 축적의 역량 보답···구성원 결국 '연대' 긴요"

대덕특구 내의 커뮤니티 그룹들은 지난 22일 UST에서 '대덕특구의 허파, 매봉산 지역환경과 공공가치 살리기' 주제로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박성민 기자>
대덕특구 내의 커뮤니티 그룹들은 지난 22일 UST에서 '대덕특구의 허파, 매봉산 지역환경과 공공가치 살리기' 주제로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박성민 기자>

1974년 첫 삽을 뜬 대덕연구단지는 2005년 특구로 지정됐다. 특구를 관리하는 행정 기관이었던 대덕관리사무소가 사라지고 특구진흥재단이 탄생했다.

당시 과기부는 지역에 관한 이슈를 특구진흥재단이 맡도록 했다. 하지만 특구진흥재단은 연구소기업 지원에 집중하며 지금까지 대덕의 공간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더이상 정부에게 역할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연대해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생태계를 만들어가자고 목소리 내고 있다.

원탁토론회에 참여한 고영주 화학연 박사는 "대덕특구는 5년 후면 50주년을 맞는다"라며 "50주년의 비전을 구상하고 공간 활용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민참여 형식으로 만들자"고 언급했다.

그는 "국가가 대덕특구에 투자한 만큼 국가와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라며 "45년 동안의 축적된 기술과 역량을 보답해야 한다. 대덕특구가 철옹성이라는 인식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구 구성원 '연대'의 필요성에 일반 주민들도 공감했다. 한 참가자는 "대덕의 구성원들은 연구도 잘 하고 똑똑하지만, 정치력이 없는 점이 아쉽다"라며 "연구자와 시민, 연구단지가 연대해 지방선거 시장 후보자들에게 공약을 제안해야 한다. 외로운 섬에 있지 말고 공생하는 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문성호 월평공원대책위 위원장은 "대안이라는 것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며 "연구자나 지역민이 소매 걷고 거리에 나서지 않으면 매봉산 지킬 수 없다. 언제라도 머리에 띠 두르고 투쟁할 수 있는 연대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학생이 바라본 대덕특구 생태계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방용환 KAIST 박사과정생은 "대덕특구가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지만 KAIST를 비롯해 출연연,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은 부족하다"라며 "예로 알파고의 아버지 하사비스가 KAIST에 방문했을 때 행사장에 모였던 사람은 100여명이 전부였다. 소통이 부족했던 결과"라고 언급했다.

정흥채 벽돌한장 이사는 "프랑스 도시는 지역 공동체들이 아름다운 동네를 가꾸어 나간다"라며 "대덕특구 생태계를 위해 연구자들이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공동체라면 과학자들이 목소리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참가자는 18년 전 특구단지를 회상했다. 문홍규 천문연 박사는 "2000년대 초반 외국인 노학자를 모셨다. 수려한 경관에 감동한 그는 매일 화암고개를 걸어 다니며 출퇴근 했다"라며 "지역의 자연 생태계가 훌륭한 자산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피력했다.

◆ "기술에 머물러있는 대덕···'글로벌 포인트' 비전"

원탁토론회에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가 '도룡동 지역의 바람직한 공간 재구성'의 주제로 발제했다. 기술에만 머물러있는 대덕을 스타트업 단지로 활용해 글로벌 포인트로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용관 대표는 "공동관리아파트를 스타트업 단지로 활용한다면 '글로벌 포인트'로 만들 수 있다"라며 "현재 대덕이 가진 자산에 비해 활용이 떨어지고 있다. 대덕의 가치를 부각시킨다면 국내외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다. 자금 조달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외 스타트업 단지 활용 사례를 언급했다. 중국 심천의 경우 1979년 경제 특별구역으로 선언한 이후 스타트업 육성 생태계가 초고속으로 발달했다. 현재는 1인당 GDP가 2만4336달러 수준이고 도시 평균연령은 29세에 불과하다.

국내 수도권 스타트업 단지 활용 사례도 언급했다. 현대아산나눔재단이 역삼동에 '마루180' 스타트업 단지를 만들었고, 네이버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D2'를 설립했다. 이뿐만 아니라 D캠프, 헤이그라운드 등의 혁신 창업 공간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서도 스타트업 단지를 위해 수백억씩 투자하고 있다"라며 "대덕의 우수한 기술·인적 인프라를 활용해 대기업을 대덕으로 충분히 유치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대표는 "대덕에 200여개의 스타트업과 1000~1500명의 젊은 인력을 유치한다면 공간 활용 구상은 쉽게 해결될 것"이라며 "스타트업이 필요한 디자인 하우스, 법률, 은행, 투자사 등도 함께 들어온다. 선순환 구조가 된다면 글로벌 포인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원탁토론회에서 도룡동 지역 도시재생 방안 발표뿐만 아니라 난개발의 문제점부터 유사 지역 지키기 사례 등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경만 ETRI 부장이 '매봉산 아파트개발 계획의 문제점'의 주제로 발표하고 정은희 월평공원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월평공원 유사 대응 사례'의 주제로 강단에 올랐다. 이어 양흥모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난개발 우려에 대한 대안'을 발표했다.

원탁토론회에서 아파트 개발을 찬성하는 입장의 참가자도 의견을 냈다. 추상적인 대안보다는 확실한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손기화 도룡동 현대아파트 주민은 "2020년 일몰제 해제 이후 난개발 보다, 20% 부지에 아파트가 건립되고 아파트 수익금으로 80%의 공원을 보호하는 것이 맞다"라며 "80%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매봉산은 더욱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아파트 건립 찬성 의견에 정기현 대전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매봉산 부지 매입비는 340억원 수준"이라며 "중종부지와 국·공유지 제외하면 사유지는 42%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320억원에서 42%인 약 140억원 정도면 매입할 수 있다"라며 "대전시 녹지기금만 159억원이다. 대전시 차원에서 매입이 가능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연구기관들이 일부 부담해서 같이 매입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섭 대전광역시의회 의원은 "원탁토론회는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라며 "아파트 개발 반대·찬성 의견뿐만 아니라 여러 시각에서의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의견이 집결되면 집행력 있게 실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원탁토론회가 끝난 이후에도 참가자들은 자리에 남아 구체적 행동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덕특구 구성원들은 지역 생태계 이슈를 주도적으로 폴어가기 위해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40분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에서 '카페토론'을 열고 있다. 오는 28일에도 카페토론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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