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향년 84세···서울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초대 한국표준연구소장으로 재직한 김재관 박사가 25일 별세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초대 한국표준연구소장으로 재직한 김재관 박사가 25일 별세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초대 한국표준연구소장(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 재직했던 김재관 박사가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故 김재관 박사는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표준연구소 초대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의 기틀이 되는 국가측정표준을 확립했다.

헌법 제127조 제2항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1999년 국가표준기본법이 제정됐다. 국가표준기본법 제정에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라는 조항을 1980년 개정된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을 추진했던 김 박사의 공로가 지대했다.

한국표준연구소를 설립을 맡은 뒤 초대소장까지 역임한 그는 국가표준제도에 관한 국제적 전문가였다. 김 박사는 헌법 조항에서 선언한 내용을 실행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국가표준기본법의 제정을 10년 넘게 언급해 왔다.

◆ "독일 봉급보다 적었지만, 국가재건 위해 귀국"

김 박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 KIST가 설립된다는 이야기를 동료에게 전해 들었다. 그는 독일 제철회사 연구원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독일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동료들과 함께 포항종합제철 계획을 짜고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그는 상공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중공업 차관보를 역임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1975년 12월 24일부터 1890년 7월 22일까지 초대 표준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연구부지 선정을 시작으로 연구원과 첨단 기자재 확충 등 운영계획을 수립했다.

표준연구소가 설립될 당시 한국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때 필요했던 것이 '표준'이었다. 연구를 하고, 기계를 만들고, 수출·수입하는데 자료와 데이터 등 표준이 필요했다. 

김 박사는 표준연구 전문가를 모으기 위해 각국을 수소문해 온도, 길이, 전파 등 다양한 분야의 측정 전문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초반에 기계와 선박을 측정하는 일을 많이 했지만, 새로운 표준 분야를 다루는 사람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일을 하러 외국에서 온 사람들 중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도중에 관두는 사람들도 있어 인원 확충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연구원들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줬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살아생전 "전쟁 후 자본도, 지금처럼 기업도 없던 시절 우리는 참 어려웠다. 전쟁으로 없어진 것들을 복구하는게 전부였고 이를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다"라며 "그러면서 전문연구소가 생겨났고 독일에서 일하고 있던 나도 그 소식을 들었다. 독일 봉급보다 적었지만 국가재건을 위해 귀국했다"고 소회한 바 있다.

유족은 부인 양혜숙(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씨와 자녀 선영(인천 가톨릭대 교수)·선우(KAIST 대우교수)·원준(KAIST 교수) 씨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안석동 선영이다.(02-207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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