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 표준연 박사 "아보가드로 프로젝트 참여 못한 건 아쉽지만...뚝심연구로 기초연구 계속해야"
표준 연구하는 과학자의 최종목표? "더 정확하고, 더욱 변하지 않는 새로운 표준을 찾아서"

사랑을 시작한 커플이 영원한 사랑을 꿈꾸듯, 과학자들은 '변하지 않을 기준'에 대해 갈망한다. 인류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 체계 안에서 변하지 않을 기준을 삼고 싶다는 과학자들의 바람은 2018년 국제단위 재정의로 이어졌다.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mole, 단위표기 mol)은 그동안 '탄소 12g 속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로 정의됐다. 하지만 2018년 몰의 기준도 탄소-12가 아니라 정확하게 정의된 아보가드로 수 (NA)= 6.022 140 76 × 1023 mol−1 으로 재정의된다. 이제 '몰'을 떠올릴 때, 탄소에 대한 정의는 잊어도 된다.

1 mol의 탄소 -12에서 탄소원자 개수를 세어보면 일정한 수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아보가드로 수라 한다. 하지만 현재 아보가드로 수는 측정방법에 따라 다른 값과 측정불확도를 가진다는 한계가 있다. 또 몰은 탄소 질량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단위. 질량 정의가 바뀌게 되니 자연히 몰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과학계에서 물리학 기본상수를 이용해 단위를 재정의하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 아보가드로 프로젝트 주도하는 독일

'아보가드로 프로젝트(Avogadro Project)'는 독일을 주축으로 시작됐다. 이경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박상열) 박사에 의하면 실리콘으로 완벽한 공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원자 수를 세어 이를 몰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배경이다.

실리콘은 반도체 연구 발달로, 순수하고 큰 결정을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실리콘 공 안의 실리콘 단위격자 부피와 몰질량(molar mass)을 측정해, 실리콘 원자의 수로부터 아보가드로 상수를 결정한다.

블록 1 mol의 수가 아보가드로 상수가 된다.<디자인=남선>
블록 1 mol의 수가 아보가드로 상수가 된다.<디자인=남선>
먼저 똑같은 블록으로 만들어진 정육면체 상자의 부피와 질량을 측정한다. 그리고 단위블록의 부피를 구해 상자의 부피를 나눠주면 상자를 구성하는 블록의 수를 구할 수 있다. 또 단위블록 1 몰의 질량, 즉 몰질량을 측정해서 상자의 질량을 나눠주면 블록의 몰 수를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구한 블록의 수를 몰 수로 나눠주면 블록  1 mol의 수, 즉 아보가드로 상수가 나온다.

그 결과 아보가드로상수(NA)= 6.022 140 76 × 1023 mol−1 가 잠정 결정됐다. 새로운 몰의 정의는 2018년 국제도량형위원회(CIPM)의 승인을 얻어, 전세계에 적용되게 된다.

현재 아보가드로 상수 결정에 사용된 실리콘 결정은 5개다. 이 박사에 따르면  2개의 실리콘-28 농축 결정과 이로부터 만들어진 3개의 실리콘 공. 그리고 추가적으로 1개의 실리콘 공이 가공 중이다. 이 박사는 "이외에 4개의 실리콘 결정이 제조 중이고, 각 결정마다 2개의 실리콘 구를 가공해서 연구와 SI 단위의 구현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석 박사는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와 직접 연관돼있지는 않지만, 당시 표준연은 실리콘 공 안의 동위원소 비율이 균질한지 등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표준연은 국제 표준기관들과의 비교결과, 상대불확도 5×10-9이하로 일치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짧은 연구기간에도 10년 이상 관련 연구를 진행한 다른 국제 기관들과 동등한 결과를 얻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국제공동연구팀 '아보가드로 상수'로 1 mol 재정의···

이경석 박사는 "단위가 재정의 된다 할지라도 일선 연구에는 아무 영향이 없을지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몰 단위 기준을 정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강조했다.<사진=표준연 제공>
이경석 박사는 "단위가 재정의 된다 할지라도 일선 연구에는 아무 영향이 없을지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몰 단위 기준을 정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강조했다.<사진=표준연 제공>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독일을 주축으로 일본, 중국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이끌고 있다. 실리콘 공에 대한  화학적 순도 분석, 표면분석, 질량과 부피 측정, 단위격자 상수 측정, 실리콘 몰 질량 측정에 이르기까지 물리와 화학 등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한국의 표준기관인 표준연은 지원이 미뤄지며 국제공동연구팀에 포함되지 못했다.

독일은 국가측정표준기관 PTB가 주도한다. 독일은 아보가드로 수를 가장 정확한 수준으로 밝혀냈다. 이후 2004년 International Avogadro Coordination (IAC) 설립과 동시에 아보가드로 프로젝트 핵심국가로서 관련 연구를 이끌었다. 

일본은 독일 다음으로 아보가드로 프로젝트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일본은 IAC 초기부터 그 중요성을 인식했다"며 "독일 PTB와 협력해 새로운 실리콘 공에  참여분야의 측정불확도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현황을 전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의 측정표준기관으로서, 표준연은 단위 재정의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한켠으론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독일이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었던 것에는 기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 독일 국가표준기관(PTB)은 기관 차원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독려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독일이 아보가드로 상수의 결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분야를 꿰뚫고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그는 "몰 단위로 측정소급성을 연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고순도 물질과 표준용액 인증표준물질들에 대해서 몰질량를 결정해주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증표준물질에서 측정대상의 인증값을 몰단위로 주게되면 인증값을 사용하는 시험 분석기관들은 몰 단위로 측정소급성을 갖게 된다. 이 박사는 "우리 분석화학표준센터 무기분석분야에서 5년이상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몰의 재정의는 일부 화학 및 생물학 영역에서 불명확성을 제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연구와 우리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이 박사는 "다만, 우리 몸 속에 있는 수 만 개의 아주 작은 단백질을 표현하거나, 대기 속 미세먼지 농도를 표기하고자 할때 보다 명확한 수치를 매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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