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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통사 지식공유]위대한 사회를 이루는 위대한 개인

글: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자발적 학습 커뮤니티인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가 열립니다. ETRI 연구자들이 일반 국민과 선후배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들을 탐색하고 고민해 주제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새통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전달드리고자 참가자들이 직접 정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며, 이를 대비하는 연구원들의 자세와 각오는 어떠한지 글로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이번 106차 모임은 문화예술과의 만남 두 번째 시간으로 프랑스문화원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대전문화연대를 이끌고 인문운동가 박한표 대표가 '위대한 개인되기를 위한 고전읽기'라는 주제로 위대한 개인이 무엇이고, 왜 필요하고, 또 그런 개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고전읽기를 권해주는 시간이었다. 박 대표는 고전읽기 중에 첫걸음은 세상의 기본원리를 말해주는 '대학'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고전 '대학' 풀이집을 선물로 줬다.
 
박한표 대표는 최근 과학기술계와 대전과 대전의 문화예술계간의 다양한 접목을 시도한다. 그 가운데 솔선수범해서 과학기술 함께 공부하기, 인문공부 함께하기,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새로운 활동공간 마련하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이번과 같이 새통사의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준다. 이런 박 대표의 노력이 과학기술과 인문이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대전이 되고, 독보적인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멋진 밀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개인 되기 첫걸음, '태연자약'한 날 보기
 
박 대표는 왜 위대한 개인이 존재해야 하는 지 설명으로 웅장한 건물을 지탱하는 한 장의 벽돌을 말한다. 한 장 한 장의 단단한 벽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웅장한 건물이 설 수 없듯이, 위대한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위대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가장 평범한 말로 그 필요성을 지적한다.
 
그 단단한 벽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단단한 벽돌과 같은 위대한 개인은 무엇인가? 박 대표는 위대한 개인이란 매순간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관찰하고, 자신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임무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혼과 열을 다해 최선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매일 아침 인생의 초보자가 되고,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자신과의 정직한 대면을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멀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보다도 가족이나 친구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그 어떤 허상을 위해 명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하면서, 자신의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 나를 관조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은 '태연자약'한 나의 진짜 모습을 둘러싸고 있는 에고, 인간의 욕심인 호리피해(好利避害)에 매몰된 오래되고 보잘 것 없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런 나와 결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마치 매일 아침 처음으로 인생을 맞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심연에 들어가면, 나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고, 그 속에는 '인의예지신'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인의예지신'이라는 프로그램은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 Operating System이 있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남을 가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사랑의 마음이고, 의(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잘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정의의 마음이다. 예(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으로 예의을 의미하고, 지(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으로 지혜를 말함이고, 신(信)은 신의지심 (信義之心)으로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는 마음으로 성실을 말함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진짜 모습에는 사랑, 정의, 예의, 지혜, 성실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인간의 내면에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자리하고, 이것 때문에 사회를 이루어 단단한 벽돌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최진석 교수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란 책에서 '어떠한 자극에도 자신만의 흐름이나 결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태연자약'한 나를 찾으라는 말과 맥이 같다. 태연자약한 나를 찾으면 남들과 경쟁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을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와 똑같은 남을 볼 수 있게 되고,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남과 함께 할 수 있게 되고, 남과 함께 조율하며 그 뭔가를 이룰 수 있게 되는 힘이 위대한 개인의 본연의 힘이다.
 
위대한 개인되기 두 번째 걸음, '대학' 읽기
 
박 대표는 위대한 개인되기 훈련의 두 번째 걸음으로 위대한 고전인 사서삼경 중에서 '대학' 읽기를 권한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物有本末 事有始終 知所先後 則近道矣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 在格物 物格而後知止
知止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박 대표의 대학 해석은 남다름이 읽힌다. 대학의 3강령 8조목의 해석이 특이하다. 통상적으로, 대학의 3강령을 밝히는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대학이라 하는 것은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明明德),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親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新民),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止於至善)이라는 3강령이다.
 
3강령을 이루는 방법론으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8조목을 말한다.
 
박 대표는 "大學之道는 在明明하며 德은 在新하며 民은 在止於至善이다"라고 풀이한다. 다시 말해 대학의 도(道)는 본래 밝은 본성을 다시 밝히는 데 있고, 덕(德)은 날로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사람(民)은 최고의 선(至善)에 머물러야 한다" 세상을 도와 덕과 사람의 3가지 축으로 풀고 각각 그것의 임무를 말한다. 세상은 도와 덕과 사람이라는 세 가지 기본 축이 있다.
 
밝은 본성을 밝히고, 날로 새롭게 하고, 최고의 선에 머물러라. 세상은 하늘의 春夏秋冬이라는 길과 땅의 水火木金土의 길과 사람의 仁義禮智信의 길이 있다. 이것이 세상의 기본 법칙인 도(道)가 말하는 것이고, 그 기본법칙을 노력해서 유지함으로써 사람이 최고의 선에 머물 수 있음이라는 법칙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본성을 밝히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바로 사람이 할 수 있는 8조목만을 이야기 하는데, 박 대표는 원문에 있는 본성을 밝히는 지(止, 멈추고)-정(定, 정하여)-정(靜, 고요한 상태로 있으면)–안(安, 편안해진 상태에서)-려(慮, 염려를 하면)–득(得, 답을 얻는다)의 과정도 풀어준다. 그러면서 심연을 쫓는 자세의 필요성을 함께 설명한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본성이 찾아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을 통해 본 4차 산업혁명
 
음미해보면 과학하는 마음과 연구하는 마음도 모두 마찬 가지가 아닌가 싶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답의 근원을 찾는 것이 본성을 밝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이다. 출연연이 국가사회의 문제를 찾고 또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함이 새삼스럽게 강조되고 있는 시절에, 대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본성을 찾으려는 노력 없는 Project Base System은 4차 산업혁명으로 혁신적인 성장을 이루려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소명에 비추어 볼 때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슈밥 박사가 역설하는 다중이해관계자 이론 Multistakeholder Theory는 모든 이해당사자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새통사에서는 슈밥 박사의 이런 관점을 비물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무한성장 가능성을 전제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을 할 필요성이 없는 '평형성장'의 가능성을 논의한 바 있다. 좀 더 넓게, 좀 더 깊게,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빨리 알아서, 좀 더 빨리 해법을 제시하는 길은 '지-정-정-안-려-득'의 과정이 필수다.
 
세상에 평행성장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道를 바탕으로 그 길을 德으로 닦아서 최고의 선에 머물게 하는 것은 Top-down이 아니라 bottom-up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대학이 말해준다. 작금에 논의되고 있는 출연연의 역할론이나 출연연에 대한 운영방식에 대한 논의 중심에 있는 분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대학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길은 무엇인가?
 
네트워킹 시간에 동양사상의 난해함과 그 실천방법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고전을 통한 위대한 개인되기가 쉬운 길인가, 특히, 청소년들에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나아가서 우리나라에 통용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동양의 사상은 깊은 통찰력의 축적된 산물이나, 동양의 사회문명사에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적 축적이 부족하다. 반면에 서양은 호혜적 이타주이가 작동하는 사회적 축적의 유산이 현재에도 존재하여, 동양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호혜적 이타주의 사회가 지속가능한지를 알고 있다.
 
가장 큰 차이가 교육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교육은 박 대표가 지적한대로 "What do you want?"를 묻는다. 동양은 道를 이야기 한다. 세상의 이치를 말한다. 그들은 한계성을 뚫을 수 있는 욕구를 묻는 반면, 우리는 사람이 노닐 수 있는 틀을 먼저 말한다. 공자가 아무리 "도가 사람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를 넓히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
 
이미 시작부터 한계처럼 보이는 틀을 말해 버렸기에. 프랑스 시민혁명의 3대 정신인 'bon goût-tolérance-solidarité'는 천지인이 아니라 '인지천'을 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도 (bon goût),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tolérance), 호혜적 이타주의 세상 (solidarité)이 실현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이를 위하여 공동체는 반드시 교육, 의료, 주거에 대한 문제로 위대한 개인되기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작동된다.
 
반면에 동양은 세상이 호혜적 이타주의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늘이 내린 진짜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서양은 현재의 세상이 그들의 수련방식이 믿는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고, 동양은 동양적 수련방식의 끝에 대한 보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동양 고전읽기를 통한 위대한 개인되기의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이런 차이에서 우리나라가 십 수년째 정체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자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도를 넓히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란 'Want'를 가질 수 있을 때, 도를 넓힐 수 있는 존재이다. 원하는 것이 없는 인간들이 어떻게 세상을 확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십 수년동안 남의 나라를 벤치마킹하며 열심히 남을 뒤따라 왔을 뿐이다. 한번도 시장을 선점 한 적이 없다. 우리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보다는 항상 남들이 가고 있는 뒤꿈치가 목표였기에, 항상 가격과 성능의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경제활동을 해왔기에 재투자 여력이 없다. 이익이 많지 않기에 자본 세력들은 미리 안정적 위치를 점하고 싶어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더 많이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작동할리 만무하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새통사에서는 일찍이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를 '인간 욕구의 즉시적 실현'이라고 정의해 본적이 있다. 더 넓게 이해하고 Volume, 더 깊이 이해하고 Variety, 더 정확하게 이해해서 Veracity, 보다 빠르게 알아차려서 Velocity, 즉시 욕구를 충족시키는 Virtuality 꿈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져 있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의 작동원리가 5V 속에 담겨져 있다. 이를 실현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규제 타령이나 하고 있고, 개인정보보호법 타령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규제해소나 개인정보보호 완화가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초적인 Wants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에서 요원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들 Wants 속에서 호혜적 이타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大學之道를 다시 해석하고 싶다. 인간이 최고의 선에 이르게 하는 것은 각자가 새로운 것을 원하고 닦아서 밝아지게 하는 길을 배우는 것이 곧 大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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