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이면 진짜 살 만 하겠다"···서울 젊은 부부가 투닥투닥 고쳐만든 '구례옥잠'
글 ·그림 ·사진 : 강선희 anger15@nate.com


구례읍내에 있는 한옥집 게스트하우스 - 구례옥잠
구례읍내에 있는 한옥집 게스트하우스 - 구례옥잠
꿈꾸는 여행가 강선희 작가는 도서 '청춘, 카미노에서 꽃피다'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여행에서 느끼는 자신만의 삶과 길을 기록하는 강선희 작가의 [써니의 느린여행]이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겨운 풍경과 함께, 바쁜 일상 속 힐링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7년 전 피렌체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땐 서울여자 특유의 세련미가 흘렀다. 그런데 이제는 영락없는 구례댁이 되었다. 앞머리를 핀으로 찔러 꽂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배실배실 웃으며 역으로 마중나온 모습이 시골소녀처럼 풋풋해서 절로 미소가 나온다.

2년 전, 평생을 동고동락할 짝꿍을 찾고 둘 다 연고도 없는 구례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뭔가 쌩뚱맞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사람들은 다 은연 중에 제 갈 길이 어딘지, 아는가 싶다.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 하자마자 한 번 다녀갔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계절에 다시 오니 마당 한 구석에 빨갛게 열매를 맺은 석류나무가 다시 한 번 나를 반긴다. 구례댁도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빨간 석류나무를 보고 한 번에 반했다던데, 나무 한 그루가 제 값을 톡톡히 한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낡은 한옥을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가 투닥투닥 고쳐 게스트하우스로 숨을 불어넣은 게 바로 이 '구례옥잠'이다. 주인내외의 소박함과 함께, 집 안 곳곳에 묻어나는 손님을 위한 배려가 한 눈에 보인다. 직접 만든 테이블이며 태피스트리 등, 자급자족하는 모습은 닮고 싶을 정도다.
 
'이런 집이면 진짜 살 만 하겠다.'
 

구례오일장 풍경 – 매 3일,8일
구례오일장 풍경 – 매 3일,8일
당에서 소곤대는 두 여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당이 있는 이 집이, 나는 참 좋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빌라로 이사를 갔는데, 그 전에는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있고 네 집이 촘촘이 모여 사는 곳에 살았었다. 엄마도 옆집 아줌마도 마당 한 켠의 장독에서 고추장을 퍼다 먹었고, 다른 한 귀퉁이에는 개를 키웠다.

낮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팽이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저녁에는 이웃집과 고기도 구워 먹던 그런 곳. 마당은 재밌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런 집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다는 것이 더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대목을 앞두고 선 오일장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하나 얻어먹은 대추 알이 어찌나 실하고 잘 익었는지, 남김없이 갉아먹고 달랑 남은 씨를 보며 이걸 한 번 심어볼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약초를 파는 상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구석구석 다 돌아보고 시장을 빠져 나오는 내 손에는 발목양말 두 켤레가 들려 있었다. 여름은 다 지나갔거늘, 그 복작거리는 시장 틈에 끼어 나도 일조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다음날 오후에는 대전에서 친구가 내려왔다. 특별한 계획 없이 '구례'라는 조용한 동네에 와서 한량처럼 쉬다 가는 게 목적이었던 우리는 구례읍에서 멀지 않은 사성암에 들렀다가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한옥 찻집 '무우루'에서 차 한잔을 했다.

아찔한 암벽 위에 지어진 암자에 올라서니 저 멀리 구불구불 흘러가는 섬진강이 한 눈에 보인다.

이런 높은 곳에,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절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는데, 지리산의 정기를 받으며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 수양이 잘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상암에 올라서서.
서상암에 올라서서.
다음에 오면 화엄사에 가봐야겠다. 이 조그만 동네는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주변에 관광지가 은근히 많다. 지리산 아랫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노고단에 오르거나 둘레길로 걷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산수유마을이나 사찰 구경 등 보는 즐거움도 있다. 나는 느리고 게으른 여행자이니 한꺼번에 다 하지 않고 조금씩 야금야금 둘러 볼 생각이다. 
 

구례옥잠만의 감성만점 서비스- 마당영화제
구례옥잠만의 감성만점 서비스- 마당영화제
구례옥잠에서는 오후 8시가 되면 마당영화제가 시작된다. 친구와 나는 맥주 두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화분 옆에서 자고 있던 어린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내 엄지발가락에 장난을 친다. 까닥까닥 응해주니 재미있는지, 한참을 그러고 논다. 오늘의 영화는 한석규와 심은하가 나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다.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 90년대의 풍경이 참 정겹다. 살랑이는 바람에 취하는지 맥주에 취하는지 모른 채 가을밤이 익어간다. 초승달이 어느샌가 산 너머로 사라졌다.
 

서시천 코스모스밭에서
서시천 코스모스밭에서
다음 날, 올라가는 길에 들렀다 가 보라며 구례댁이 두 곳을 알려주었다. 서시천 근처에 코스모스꽃이 만개했다길래 먼저 가 보았다. 제주도의 유채꽃밭과 스페인에서 해바라기꽃밭은 본 적 있는데, 이런 코스모스꽃밭은 또 처음 보는 것이었다. 길가에 올망졸망 피어있는 것만 보았지, 이렇게 코스모스를 무더기로 보니 생소하기도 하고 또 화사하기도 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어느 아저씨도 '코스모스도 향이 나네' 라며 뒷짐을 지고 꽃길을 유유히 걷는다. 무리를 지어온 아주머니들도, 나와 친구도 양 손을 턱 밑에 포개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꽃이 더 아름다운지 내가 더 아름다운지 씨름이라도 하는 것 같다. 꽃밭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소녀가 된다.
 

멋진 뷰를 가진 이름 없는 휴게소에 앉아
멋진 뷰를 가진 이름 없는 휴게소에 앉아
두 번째로 알려준 곳은 간판도 없는 어느 휴게소였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쪽으로 25분 정도 쭉 가다 보면 나오는데, 여기 재첩국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우리는 재첩국수와 재첩비빔국수를 시켜 나눠 먹었다. 후루룩 후루룩···. 국물이 아주 깔끔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자니 친구가 말하길, '취향저격'이라고.

가을바람이 한 번 일렁이니 평상 위로 누렇게 변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 평상 위에서 몇 시간이고 누워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릇을 비웠으니 길을 재촉한다. 돌아가야 또 떠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강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간다.

재첩국수 7,000원 재첩비빔국수 8,000원
재첩국수 7,000원 재첩비빔국수 8,000원
 
▲구례옥잠(http://www.guryeokjam.com/) : 전남 구례군 구례읍 상설시장길 17-10
                      
▲무우루 찻집 :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연길 6 , Tel. 061 – 782 – 7179 (월요일 휴무)
▲재첩국수 먹은 곳 :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1062 (도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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