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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통사 지식공유]생존, 살아남기

글 정리 :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자발적 학습 커뮤니티인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가 열립니다. ETRI 연구자들이 일반 국민과 선후배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들을 탐색하고 고민해 주제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새통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전달드리고자 참가자들이 직접 정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며, 이를 대비하는 연구원들의 자세와 각오는 어떠한지 글로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이번 96차 모임은 차세대 영상 기술과 씨름하며 살고 있는 정재숙 박사(ETRI)의 <생존, 살아남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고 고민했던 문제들을 풀어놓고 생각을 나눴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통해 나와 환경알기, 생존전략, 주고받음, 매력’이라는 주제에서 생존전략을 세우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아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주고받음과 매력이 갖는 전략적 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 인류 공통의 고민 : 삶

누구에게나 말이 필요없는 고민의 대상이 삶이다.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동서고금과 남녀노소를 막론한 인류 공통의 고민이다.

새통사에서도 그동안 이런 공통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영혼과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보고, 과학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방면을 생각하며, ETRI가 마련하는 인문학 강좌와도 시간을 같이 해왔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가 불안하다. 인류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방법을 찾아냈을까? 그 불안감의 출발은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다는 그 자체를 벗어나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오래 살아남고 더 잘 살 수 있으며 더 멋지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미래를 고민한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역사를 공부하고 자연을 공부하고 우주를 공부하고 사람을 공부한다. 조금이라도 미리 알면 그 불안감이 덜어지려나 하는 마음이다.

미래를 예측해보기 위해서 토정비결을 본다. 또 공부에 취미가 특출한 사람들은 지식모델을 통하여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의 방법론을 빌어 미래를 예측해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본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이나 친지들의 삶을 통해서 말해주듯이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사는 방법은 다 다른다. 어떤 사람은 멋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하찮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고 어떤 사람은 손가락질 받고 살거나 무시당하며 산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가?

◆ 살아가기 I : 축적으로 발견하는 이타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이타적인 삶이 생존에 유리한가라는 질문이다.

도킨스 박사는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지켜내기 위한 방향으로 산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는 마치 밭과 논을 갈 뿐 그 밭 속에서 어떤 작물이 성장하느냐는 그것을 결정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메시지에 따라 삶을 살고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 간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세상을 가장 보편적으로 설명하는 지식모형의 경쟁이다. 이런 지식모형들 중에서 실험으로 증명된 모형이 있다면 그것을 우린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인류사는 말해준다. 우리 주변에는 이기적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많이 있다. 가치나 도덕, 윤리 등의 개념이 항상 이기적인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 우리 몸도 그렇게 움직인다.

외부 자극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저것이 무엇인가, 저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라는 생각의 시간을 갖는다.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탐색한다. 그런 저장된 경험과 기억들이 자극에 대한 반응을 결정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우리의 기억은 머리 속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로 이어져내려온 우리 몸 전체가 기억을 한다.

최근 축적의 중요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간다. 축적은 단순히 쌓여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지혜로 동작한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 않아도 될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음으로서 우리 미래를 보다 안전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나름의 가족문화를 가지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가문을 접할 수 있다. 왜 우리는 그러한 집안을 가문이라는 단어를 붙여주는 것일까. 왜 우리 집안은 우리 스스로도 가문이라고 하지 않고 남들도 가문이라고 불러주지 않을까.

바로 축적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가족의 역사를 통해서 개인이 아닌 가문이라는 틀 내지는 시스템을 통하여 지혜를 축적하고 전승한다. 그런 가문은 한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 동안의 수 세대에 걸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한다. 당연히 남들과 다른 삶의 패턴과 문화가 존재한다.

그런 문화와 패턴 속에도 이기적인 것도 존재할 것이고 이타적인 것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경험적으로 가치, 도덕, 윤리, 성실, 자존, 존경 등 인류사를 통하여 오랜시간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우리의 생존에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공부를 하고 그 책들 속에 묻혀 있는 글자들 속에서 깨달음을 구하고자 노력한다.

수많은 인문학이 모두 그러한 관점에서 유용한 인류의 역사서요 지혜서다. 굳이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할 수 없다면 최소한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생명 공간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닮으려는 기계, 기계를 이용하는 인간, 인간이 만든 생각하는 기계들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 보자. 인공지능이 인류가 남긴 모든 지식을 공부하고 어떤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지에 대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거친다면 인간 집단과 로봇집단의 생존력이 누가 더 강할까? 지금의 삶이 곤궁하고 지난하다면,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당위성을 이런 상상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는 <위대한 시선의 사유>에서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린 모두 합심하여 성공적인 '건국의 계단'을 잘 올라섰고, 또 '산업화의 계단'도 잘 올라서서 1인당 GNP가 1953년 62불이던 나라를 29,144불인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우린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진화의 계단'을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린 아직 선진화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축적이 모자란 탓일까, 아니면 축적 속의 지혜를 발견하지 못한 탓일까. 우리 모두가 가슴에 품고 고민해봐야 할 화두다.

◆ 살아가기 II : 주고 받기

패턴 안에 패턴이 있는 것을 Self-Similarity, 즉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하나의 집안은 그 사회와 닮았고 그 사회는 그가 속한 국가와 닮은 꼴을 하고 있는 것도 자기유사성이다. 한 톨의 먼지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 불교의 말처럼 분자 속에도 작은 우주와 같다는 말도 결국 자기유사성이라는 기본적인 법칙을 말함이다.

세상의 모든 곳에 자기유사성이 존재한다. 주가지수 일간차트는 주간차트와 닮았고 주간차트는 월간차트와 닮았고 또 연간차트와도 닮았다. 자기 유사성은 번개 속에서도 식물의 잎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손과 발에도 몸이 있다고 한다. 커다란 패턴과 원리가 사회와 문화 물질 등의 모든 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자기 유사성의 원리가 우리 삶의 곳곳에 존재한다면 복잡한 전체의 문제를 단순한 기본구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이 최근에 일고 있는 Design Thinking과 맥을 같이 한다. 작은 발상들이 모이면 결국 사회의 모습이 국가의 모습, 세상의 모습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Bottom-up의 design thinking이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나의 작은 가슴 설레임이 작은 소모임의 가슴 설레임으로, 그것이 조직의 가슴 설레임으로 또 그것이 국가와 세계의 가슴설레임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정 박사의 토크를 들으면서 ETRI에서 AOC (Autonomous Open Community) 활동을 실천하고 계신 많은 동료들이 이런 심오한 자연의 섭리를 이미 깨닫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정 박사는 또 하나의 기본구조를 Scale-free network으로 설명했다. 자연 속 또는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에는 필히 Scale-free network로 이루어진다. 척도가 없다는 말은 정형화된 틀이 없다는 것이다. Stereo-type이, 대표값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작위적인 것과는 구분되면서 무작위적인 것보다는 훨씬 생존성이 높은 네트워크다. 쇼셜네트워크 등의 협력네트워크에서부터 단백질 합성구조에 이르기 까지 scale-free network 구조다. 정규분포나 어떤 확률적 분포처럼 특징질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관계 네트워크에 대한 물리적 법칙을 제4차산업의 본질편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으며 프랑스의 디지털공화법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물리학의 보즈-아인스타인 응축이론을 참고하면, 어떤 대상들이 가져야 할 힘이 일정 수준이하면 쏠림현상이 일어나서 덩어리로 변하고, 윌슨의 그룹-재정규화이론을 참고하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scale-free한 구조를 취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 개개인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 했었다.

정 박사님은 Scale-free network에서 Hub들의 존재에 대해서 주목했다. 허브들은 주고 받음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너무 강하게 끌어 당기면 그냥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릴 것이고 너무 느슨하면 연결이 끊어져 버릴 것이다. 강한 주고 받음이 존재하면 강한 허브가 되고 약한 주고 받음이 있으면 약한 허브가 된다. 주고 받음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통사에 모여서 서로의 생각과 정 나누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무위자연의 행위다. AOC를 하면서 서로 나눔의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곧 생존전략이다.

◆ 살아가기 III : 생태친화적인 삶

잘사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젠 살아 남는 것을 뛰어넘어 더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 하듯이 우린 생존은 제어가능한 범위에 들어와 있는 문제다. 생존이 제어 가능한 범위 내의 문제라면, 불멸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서 우린 더 멋진 삶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승부욕보다는 성취욕이다. 무엇이 되기를 목표하는 1등주의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취욕이 강한 사람은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림이 없다. 승부욕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만 남긴다. 승부욕은 남과의 싸움이지만 성취욕은 나와 함께하는 등산이다. 등산은 호기심의 발로이다. 호기심은 끈기와 친구가 되어 한걸음 한걸음 산 정상의 숨겨진 비경에 다가갈 뿐이다. 그것은 나의 자각이요 나의 의지다.

시작은 서두르지 않고 살피는 것이다. 나의 자각은 나의 감각에 안경을 끼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의 감각에 들어오는 모든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내 속에 있는 기억과 경험들과 만나게 하고 그 느낌을 또 새로운 기억으로 담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저것과 요것은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이것은 어떻게 이것이 되게 하는지, 저것은 또 무엇이 저것을 되게 하는지,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저것은 이것과 의미의 차이는 무엇인지. 서두르며 간과하지 않고 차분하게 감각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을 때, 새로움을 취할 수 있고 새로운 느낌을 취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곧 공부다. 공부는 시나브로 시선의 높이를 끌어올린다. 시선의 높이 속에 하늘의 무늬가 열리고 땅의 무늬가 그려지고 사람의 무늬가 보인다. 그런 시선의 높이로부터 함께 하는 생태계가 보인다.

우린 동양의 축적을 잃어 버렸다. 지금은 서양이 Norm이라고 말한다. 세상살이의 많은 부분에서 기준이 서양이 정하는 대로다. 그러나 동양의 모든 것은 물질을 이미 초월한 상태요, 기능을 이미 초월한 상태다. 하나같이 기본 지식모델 하나를 가지고 주변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담을 수 있는 것이 동양의 문화수준이다. 서양의 것보다 훨신 높은 시선에서 나오는 사유의 결과다. 서양의 것보다 훨씬 생태친화적이다.

현대에서 야기되는 거의 모든 것이 서양의 수준 낮은 물질문명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린 동양의 그런 생태친화적 문화의 높은 경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알지 못한다. 수입한 문화와 매 한가지다. 수입을 한 것이기에 환경이 바뀔 때 함께 변화를 시켜야 하는지를 모른다. 서양의 문화가 과거 동양의 생태친화적인 모습을 쫓아가고 있음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 서양은 자기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고 있기에 그들이 가는 길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우린 그 발자취를 잃어버렸기에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따라 갈수가 없다. 발자취를 알기에 지식모델을 알 수 있고 지식모델을 알 수 있기에 플랫폼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단계를 뛰어넘어 있지만 어떻게 그것에 이르렀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기에 그들의 플랫폼 앞에 속수무책이다.

다시 한번 Scale-free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쏠림이 없는 세상, 넘치는 개성만이 가장 생태친화적이다. 개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항상 생존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하다. 인간 세상은 피라미드지만, 자연은 Scale-free network다.

◆ 살아가기 IV :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새통사에서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소개해 주고, 잘 사는법 시리즈를 준비해 주는 '대전문화연대 박한표 대표'의 살아가기 법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박 대표의 페북 타임라인으로부터 오늘은 우선 프롤로그만 옮겨본다.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프롤로그) 행복은 어떤 감정이다. 행복한 마음의 상태는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외부의 환경이 나의 행복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생각'의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도구를 잘 사용하려는 수련도 필요하다.

육체의 훈련처럼, 정신도 훈련을 해야 생각의 근육이 붙어 높은 단계에 오를 수 있다. 이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은 삶을 영위하면서 '해야 할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를 찾을 수 있다. 그 임무를 하지 않는 것이 '죄'란다.

나의 고유한 임무는 무엇인가? 외부에서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 마치 일본 신화에 나오는 잉어 코이처럼 세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더라도,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이어가다 보면, 나만의 열정을 찾을 수 있다.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는 달리기와 묵상의 도구로 열정을 찾았단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면서 육체의 한계를 확장하고, 묵상을 통해 정신의 한계를 고양시켰단다. 나는? 걷기와 고독하게 혼자 있는 시간으로 내 열정을 찾아보자. 그 열정을 정열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정열'의 사전적 의미는 '가슴 속에 맹렬하게 일어나는 적극적인 감정'이다.

위에서 말한 그 열정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를 가져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열정은 타인을 향한 부러움이나 흉내 내기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과 열등감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정을 통해 스스로를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임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정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열정은 무언가를 열렬하게 하려는 사랑의 마음이다. 영어로는 '패션(Passsion)'이다. 이 Passion은 고대 그리스어 '파세인(Pathein)'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세인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고,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현실을 십자가를 짊어지듯 나의 어깨 위에 매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열정은 십자가이다. 그래서 대문자로 Passion하면, 그것은 '예수의 수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패션이나 파세인 모두 기본적인 의미는 고통이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곳으로 진입하는 여정이 쉽기만 하겠는가? 그냥 주어지겠는가? 열정에는 위험한 모험과 용기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열정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얽매고 있는 수많은 구태의연함과 과거로부터 과감하게 결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가지고 나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배철현 교수의 <심연>과 함께 나의 마음 깊은 곳으로 향하는 정신적 여정을 하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나를 넘어선 나'를 발견하고 싶다. 배교수는 그 '나를 넘어선 나'를 '위대한 개인'이라 표현했다. 나도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를 '위대한 개인'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들고, 위대한 사회가 위대한 국가를 만든다"

나로부터의 혁명이 시작이다. '위대한 개인'이란 자신을 깊이 관찰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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