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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말하는 '비효율 과학행정' 6가지

가이드라인·매뉴얼화 따른 규제 등 연구현장 옥죄기 '점입가경'
연구자들, 앞에선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일단 자료부터 요구하는식 변화돼야"
과학기술계를 옥죄는 비효율 과학행정으로 현장 연구자들의 속앓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정부와 연구현장간 신뢰 프로세스가 깨진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구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 제고를 위해 네가티브 규제와 간섭 배제를 국정운영의 중심에 뒀지만, 정작 연구현장은 상위 부처 관료들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과 매뉴얼화에 따른 규제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봇물을 이룬다.

연구현장 과학기술자들이 속앓이를 하며 과학기술 행정의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종합해 보면 ▲매뉴얼과 가이드라인 봇물 ▲연구과제에 대한 과도한 중간 간섭 ▲잦은 감사와 중구난방 자료 요청 ▲연구기자재 구입 및 관리 행정 ▲포럼행사 행정부담 ▲국제협력 업무 부담 등 어디에도 연구현장의 편의와 자율성을 고려한 행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들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본지가 보도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정부출연금 월별 지급절차안' 추진 사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감당해 온 행정 비효율을 더욱 가중하는 꼴이라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은다. 

① 일단 매뉴얼 만들어 규제···자료 요청부터 하고보자 식

"관료들마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매몰되며 너도나도 매뉴얼과 규제안을 양산 중이다. 연구현장은 매뉴얼 지침이 내려오면 지켜야 하는 규제들이 늘면서 숨이 막힌다."

정부로부터의 각종 매뉴얼과 가이드라인 지침 하달은 과학기술계 뿐만이 아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연구하고 유연한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되지만, 연구현장은 여전히 규제와 가이드라인에 더딘 걸음이다. 연구소 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규제를 소화하느라 행정부담이 크다. 감사와 규제, 가이드라인 하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미래부에서 출연연의 출연금 관리를 월별로 하겠다는 지침도 그 연장선상이다. 출연연은 미래부의 규제안으로 매월 출연금 신청시 전월 사용내역과 산출근거를 포함한 당월 출연금 지급요청서를 A4용지에 작성해 미래부에 공문 보고해야 한다. 매월 자료 마련을 위해 발생되는 행정 비효율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부분이다.<기사 하단 관련기사 참조>

② 연구과제에 대한 과도한 중간 간섭

국가R&D연구과제도 행정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제 관리를 맡은 부처의 중간 자료 요청이 잇따른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3년 단위의 과제일 경우 1년에 한 번 연구평가를 받는 것은 기본이라고 치지만, 중간중간 성과가 얼마나 나왔냐고 묻는 자료 요청은 별도로 해야 한다. 

출연연의 한 과학자는 "과제 보고서는 그나마 단순화 됐지만 중간중간 그것도 갑자기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연구가 맥이 끊긴다"면서 "행정직도 연구소 내 행정이 아니라 미래부나 상위 기관의 자료 준비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상위 부처에서 연구계획서를 만들어 내달라고 하면 하룻만에라도 만들어 내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한다"면서 "그러다보면 내부 연구자간 충분간 협의 없이 겉으로 보여주기식 문서를 제출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③ 잦은 감사와 중구난방 자료 요청

감사때마다 과도한 자료 요청도 이미 오래된 문제다. 관련 부처부터 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와 국회 등 중구난방 자료 요청이 연구현장의 행정업무 마비를 불러오기도 한다.

가령 최근 비정규직 현황 조사 사례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출연연마다 자료요청으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회의원들이 제각각 자료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미래부, 기재부 등 상위 부처마다 관련 자료를 특성있게 요구해 연구현장의 행정부담이 최고조에 달했다.

출연연 한 연구자는 "지금은 자료를 USB에 담아 보내니 그나마 다행인데 그 양이 1톤 트럭을 채우고도 남는 규모일 때도 있다. 그 자료를 다 보기는 하는지 국회의원 검증도 필요하다"고 되물었다.

출연연 관계자는 "자료를 요청하는데 항목이 조금씩 달라 같은 자료를 쓸수 없다. 요청하는 의원들마다 다른 기준을 요구하기도한다"면서 "출연연 통계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통계시스템과 출연연 홈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단 자료부터 요청하고 본다. 다 보는지는 알수 없다"고 말했다.

④~⑥ 행사 떠넘기기, 연구자 해외 협력도 정부부처 몫으로

각종 포럼과 컨퍼런스 등 행사들도 현장의 행정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정부가 진행해야 하는 행사를 기획부터 주관, 후속조치까지 고스란히 연구소가 감당해야 한다. 상위 부처와 기관마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치중하면서 개최하는 행사에 출연연이 동원된다. 

물론 운영 주최는 상위 부처의 이름이다. 출연연마다 말못할 속앓이인 셈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요청하는게 아니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떠 넘긴다. 부담이 크다"면서 "상위 부처에 잘못보이면 당장 예산이 좌지우지될 수 있어 그냥 참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 했다.

연구장비 구입도 이전에 비해 번거로워졌다. 정부 방침에 따라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에서 연구장비를 일괄 관리하면서 고가의 장비 구입시 준비 서류와 기간이 길어졌다. 장비 중복 구입은 막았지만 개별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장비 구입 때마다 심의를 거치는 등 행정 부담이 적지 않다. 

해외 협력도 연구자에게 떠 넘기는 사례도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업무 이외에 국가간 연구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부 관료의 업무까지 하고 돌아오면 이후 성과는 정부의 성과로 둔갑된다. 해외와 협력 논의가 이뤄질 경우 정부 차원에서 후속조치도 이어지는 사례도 드물다.

과학기술계 한 정책 전문가는 "여전히 우리는 과학기술자를 정부부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과학기술, 출연연에 대한 철학이 없는 관료의 행정중심 문화가 짙어지면서 규제만 많아지고 비효율이 커지고 있다. 근본적 대책과 실현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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