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연·지질자원연 등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선진국 겉핥기식 VS 편견 없이 인재 선별 가능
"연구개발 최적인물 선발에 맞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꾸준히 개선해야"

"지금의 블라인드 채용은 가이드라인을 주기보다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대부분이다. 심층면접을 보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으므로 직무의 연결성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난 상반기 연구자 면접 진행 L박사)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써내는 변별력 없는 입사서류가 대부분인 채용시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많은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도입한지 얼마 안 된 만큼 진짜 출연연이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틀을 꾸준히 개선해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실제 면접관으로 활동한 K박사)
 
"행정직 직원을 뽑을 때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학교나 지역을 보고 뽑던 관행에서 능력 중심으로 선별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기회균등적인 측면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면접을 진행한 출연연 관계자)
 
문재인 대통령이 올 하반기 공공부문 채용에 블라인드 채용제를 시행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입사지원서에 인적사항을 삭제하고 면접에서도 실력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출연연도 해당 조치에 블라인드 채용도입을 준비 중이다.
 
일부 출연연은 작년부터 블라인드 채용도입을 검토, 올 하반기 채용에서 실제로 시행한 바 있다. 본지 확인 결과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기관은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이다. KIST는 행정직만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이다. 이 기관들은 NCS(국가직무능력표준)혹은 미래창조과학부와 고용노동부가가 지난해 권고한 블라인드채용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해당 기관은 1차 서류전형부터 응시자가 이력서에 사진, 학교, 성별 등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단, 과학기술종사자의 특성상 자기소개서에 자신이 어떤 공부를 했는지, 경력 등은 쓸 수 있다. 채용방식을 바꾸면서 면접 횟수도 늘렸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응시자는 대부분 3차의 면접을 거치는데 ▲전공을 발표하는 면접 ▲문제해결능력을 보기위한 집단면접 ▲개별 면접 순으로 진행된다.
 
출연연 인사 관계자는 "응시자들을 판단할 기준이 많지 않아 면접의 횟수를 늘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블라인드 면접 찬반···"선진국 겉핥기식" VS "편견 없이 인재 선별 가능"
 
일부 출연연이 블라인드 채용을 적극 도입한 것은 올 하반기부터다. 실제 블라인드를 통해 채용된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일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 실제 블라인드 면접을 담당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은 개편된 채용방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면접관들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첫 시행한 만큼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A 면접관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백그라운드는 어떤지 등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직무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데 학력 기준이 많이 가려지다 보니 제약이 따른다"며 "자소서와 발표평가, 면접에 많이 의존하다보니 때에 따라 실력보다는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상황대처를 잘 하는 사람을 뽑게 되는 단점이 있다. 면접을 더 많이 늘리는 방향으로 개선 중이지만 여전히 한계가 존재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선진국이 시행하는 블라인드 채용 겉핥기식'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미국의 취업시장에 뛰어든 경험이 있는 P연구자에 따르면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는 미국은 짧게는 1일, 길게는 3일 동안 응시자를 출근을 시키며 인터뷰를 한다. 같이 밥을 먹거나 대화를 오랫동안 하면서 우리 회사와 팀과 함께 일해도 괜찮은 사람인지, 성품은 어떠한지, 업무능력은 어떠한지 판단한다. 반면 우리는 3차 면접을 진행하더라도 그 시간이 매우 짧다.
 
P 연구자는 "우리나라는 면접시간이 길어야 30분도 채 안 된다"며 "조직에서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잘난척하는 것이 아닌, 조직에 융화되는 사람인데 이런 면접은 임기응변 능력만 뛰어난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높아 실효성이 있는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자 출신 면접관도 "지금의 블라인드 채용은 가이드라인을 주기보다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대부분"이라며 "어떻게 직무연계성을 볼 것인지 알려주는 곳도 없고 자료 작성도 부실해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올봄 실제 연구원 채용 면접을 진행한 K 박사는 "일단 채용자 입장에서 크게 좋아진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백그라운드를 잘 알지 못하니 최종 학위만 잘 딴 건지 실제 본인이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없어 불편했다"면서도 "그러나 서류전형을 보면 이력서가 다 비슷하지 않나. 그 속에서 진짜 우리가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블라인드 채용의 단점을 개선한다면 좋은 채용구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직은 블라인드 채용이 가능하나 연구직 채용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출연연의 인사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행정직의 경우는 스펙이나 학력보다 능력중심으로 채용할 수 있어 좋다는데 공감하지만 박사급 연구원들을 블라인드 채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면서 "또 대표논문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충 어느 학교의 누구와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진짜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행정직원을 뽑는데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출연연 연구직 채용의 요점은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최적인 인물이냐는 것"이라며 "그것이 과연 블라인드 채용을 가지고 판단 가능할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부가 시행 중인 '여성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 등 제도와의 불균형 해소측면에서 더 고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는 과학기술분야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매년 신규로 채용하는 인력 중 여성과학기술인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다. 여성 신규 채용비율 30% 이상을 정책 목표로 제시해 시행하고 있다.
 
S 연구원의 인사 관계자는 "출연연의 채용에서 여성과학자들을 우대하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다보면 그 권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지 않는가"라며 "무엇을 우선시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준이 서로 다르니 애매한 부분이 있는 만큼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회균등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면접을 진행했던 B 연구소 관계자는 "너무 콘텐츠가 없어서 뭘 보고 판단해야 할지 고민됐지만 이전 면접이 학교나 지역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능력중심으로 변화하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면접에 참관했다는 한 과학자는 "면접과 자기소개서를 통해 어떤 공부를 해왔고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는지 등 본인의 연구 실적이 나오는 만큼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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