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성 에너지연 원장, R&D 중단 언제든 가능토록 '민간형 의사결정 체계' 도입
[인터뷰]"연구과제 '성공·실패' 단어 없다···'좋은 의사결정'만 남을 것"

SK 기업에서 32년 동안 근무해온 곽병성 에너지연 원장. 지난해 12월 에너지연 수장 바통을 이어받았다.<사진=김요셉 기자>
SK 기업에서 32년 동안 근무해온 곽병성 에너지연 원장. 지난해 12월 에너지연 수장 바통을 이어받았다.<사진=김요셉 기자>
"국가 연구시스템은 1~3년 단위로 의사결정이 이뤄집니다. 불필요한 과제라고 판단돼도 1년을 기다려야 떨쳐낼 수 있죠. 시장가치가 낮고 경중이 낮은 과제를 빠르게 중단시키는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연구과제는 성공·실패가 없고 좋은 의사결정만 남을 뿐입니다."

SK 기업에서 신입사원부터 고문까지 32년 동안 근무해온 곽병성 원장. 기업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그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새로운 변혁을 이끌기 위해 지난해 12월 기관장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에너지연에 '국민을 업고 간다'는 새로운 분위기를 이식하기 위해 ▲연구 효율성 제고 ▲연구 가치 재정립 ▲조직문화 개선 등 3개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곽병성 원장은 "10분 거리인 민간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만큼 출연연도 빠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라며 "출연연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코스트(비용)를 감안한 연구 체계를 설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비용' 감안하는 국가 연구과제로 탁월한 연구 만든다

곽 원장은 "출연연에 '비용'을 감안한 연구 체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곽 원장은 "출연연에 '비용'을 감안한 연구 체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곽 원장이 꺼내든 첫 번째 카드는 '연구 효율성 제고'. 연구과제의 수시 의사결정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1~3년 단위로 의사결정 되는 국가 연구과제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연구 효율성을 추구하려면 비용을 감안한 연구가 돼야한다. 그는 "현재 국가 연구과제 시스템은 1월에 불필요한 과제라고 판단돼도 12월까지 포기할 수 없다"라며 "전혀 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 신속하게 의사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를 언급하며 그는 "예를 들어 10개 과제가 있다면 경중을 따져 불필요한 과제는 실시간으로 떨쳐낸다"라며 "과제를 그만두더라도 패널티를 주지 않고 다른 과제를 탐색하는 시간을 준다"고 설명했다.  
 
곽 원장은 기업 연구과제 의사결정 체계인 '스테이지 게이트'를 에너지연에 도입 중이다. 스테이지 게이트는 수행중인 과제의 진도율과 성과를 수시로 점검하는 개념이다. 정부로부터 수주한 개별과제는 대상이 아니다. 우선 자체 주요 사업 과제를 대상으로 한다. 

그는 "과제를 잘 떨쳐 내려면 '성공·실패' 단어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도전적·창의적 과제를 빠르게 도와주는 것이 좋은 의사결정"이라며 "스스로 불필요한 과제를 포기하는 좋은 의사결정에 높은 평가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곽 원장이 생각하는 R&D는 '진도 추구형'과 '진실 추구형'이 두가지가 있다. 우리의 R&D형태는 진도 추구형 R&D에 가까웠다. 성공·실패 단어 때문에 진도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문화를 탈피해다고 곽 원장은 피력했다. 결국 R&D과제가 성공이냐 실패가 아닌 좋은 의사결정을 했다는 의미가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 "왜 연구하는가?" 결국 '연구가치'를 알아야

"우리는 '왜 연구하는가?'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질문을 먼저 던지고 있다. What→How→Why 질문에서 Why→How→What 순서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곽 원장은 "'왜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곽 원장은 "'왜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곽 원장은 '사람의 뇌'를 예로 들며 연구가치를 설명했다.

그는 "뇌의 중심에는 변연계가 있고 그를 둘러싼 신피질이 있다"라며 "변연계는 감성을 담당하고 신피질은 이성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연구 가치는 변연계에서 시작해 신피질로 가야 하지만, 지금까지 신피질에서 변연계로 가고 있었다"라며 "즉 감성에서 목적·신념이 설득되고 이성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플 아이폰 광고를 예로 들었다. 그는 "애플 아이폰 광고에서 아이폰의 성능을 광고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라며 "결국 본질적인 Why에서 비롯됐다. 국가 연구과제 시스템도 Why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원장은 "'왜 연구해야 하는가?'가 무장돼 있으면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가 나온다"라며 "이것이 조직 효율성이자 연구 가치다. 'Why'를 질문하는 연구원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원장 선임 당시 기술료 100억원 달성 비전을 내건 바 있다. 그는 "에너지연의 연구생산성과 기술료 수입은 아직까지 요원한 수준"이라며 "연구성과의 양적 측면을 고려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연구원 각각의 역량이 아닌 '과제를 돈으로 만드는 역량'이 필요하다"라며 "미국의 대기업인 IBM 코닥 듀폰 등은 연구비만 조원 단위를 쓴다. 1년에 5000억원을 쓰면 5000억원 이상의 연구성과를 낸다. 국가 연구로 돈을 못 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젊은 직원들이 이끈다"···서로 돕는 자생적 조직문화

곽 원장은 '서로 돕는 조직문화' 탈바꿈 경영을 내걸었다. 조직문화 변화의 주체를 30대로 설정했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각 조직을 대표하는 젊은 직원 25여명이 'E-Board' 모임을 구성했다.

그는 "연차가 높은 연구원들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30~40대 연구원 구성원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성원들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정규직 4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이 없어 5개 소그룹으로 나눠 소통하고 있다"라며 "각 그룹에 기업 경영, 연구가치 등을 전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확대간부회의도 소통을 중심으로 개선했다. 그는 "월간 확대간부회의에 참여하는 50명 중 이야기하는 사람은 채 10명도 안됐다"라며 "회의를 이슈 중심으로 바꾸었고 보고서를 낭독하는 체계를 없앴다"고 그간의 변화를 소개했다.

곽 원장은 주간보고·월간보고 보고서도 대폭 축소했다. 기존 주간보고서는 50페이지, 월간보고서는 100페이지 수준에서 부서별 1페이지로 단축시켰다.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줄이고 핵심 현안 중심으로 논의하겠다는 배경이다.

그는 "출연연은 주어진 환경과 틀 안에서만 변화를 해야 하므로 많은 것이 충돌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오롯이 국가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연구원이 되도록 얽혀있는 실마리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라고 특유의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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