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간다⑦] 2017 페임랩코리아 대상 목정완 KAIST 생명과학과 학생
올해 대학로 소극장과 클럽에서 대중 강연 5회 예정

목정완 학생이 기숙사에서 부화시킨 수컷 병아리 비와이(BY). 병아리를 어깨에 얹고 캠퍼스를 활보하기도 했다. 비와이는 이제 닭이 됐다. <사진=목정완 제공>
목정완 학생이 기숙사에서 부화시킨 수컷 병아리 비와이(BY). 병아리를 어깨에 얹고 캠퍼스를 활보하기도 했다. 비와이는 이제 닭이 됐다. <사진=목정완 제공>
"삐약!" 실험실에서 밤을 새고 돌아온 어느 날 새벽, 침대 머리맡에서 소리가 났다. 유정란 8개 중 하나의 알에서 난 소리였다. 알 껍질에 구멍이 여러개 뚫리더니 뚜껑을 열고 병아리가 나왔다. 지난 3주 동안 노트북 어댑터를 아이스박스에 넣고 쉬지 않고 컴퓨터 게임을 실행시켜 온도를 37도로 유지하자, 정말로 유정란이 부화했다. 감격스러운 와중에도 손이랑 얼굴을 보여주며 병아리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8개의 알 중 깨어난 병아리는 한 마리. 목 꺾기를 잘해서 힙합 가수의 이름을 따 비와이(BY)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KAIST 생명과학과 대학원에서 6년째 발생유전학을 연구하는 목정완 학생의 이야기다. 이제 그를 소개하는 명칭이 하나 더 붙었다. 과학커뮤니케이터. 그는 지난 5월 12일 열린 2017 페임랩코리아(FameLab Korea)에서 유정란 부화 경험과 생명의 신비함에 대해 발표해 대상을 받았다.

페임랩은 과학분야 종사자가 과학, 수학, 공학을 주제로 자신의 생각·경험 등을 3분 동안 대중과 소통하는 국제 행사다. 한국에서 열리는 페임랩코리아는 올해가 4회째이며, 국제 대회는 10회째다.  (※페임랩은 영국문화원이 주관, 페임랩코리아는 영국문화원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주관한다.)
 
대상을 수상한 목정완 학생은 한국 대표로 지난 6월 6일부터 11일까지 영국의 작은 도시 첼튼엄에서 열린 최종 페임랩에 참가했다. 최종 대회에서 수상은 놓쳤지만, 정완 학생은 미래창조과학부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위촉돼 앞으로 다양한 과학 대중화 활동에 참여한다. 영국에서 돌아온 목정완 학생을 만나 영국 페임랩 대회 현장과 과학커뮤니케이터 활동 계획을 들어봤다.

(왼쪽부터)각각 영국과 한국에서 목정완 학생이 발표하는 모습. 영어로 발표하기 위해 수 백 번의 연습을 했다. 그의 지도 교수는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모든 발표를 영어로 하도록 권유하기 때문에 목정완 학생은 이미 영어 발표에 훈련돼 있었다. <사진=목정완 제공>
(왼쪽부터)각각 영국과 한국에서 목정완 학생이 발표하는 모습. 영어로 발표하기 위해 수 백 번의 연습을 했다. 그의 지도 교수는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모든 발표를 영어로 하도록 권유하기 때문에 목정완 학생은 이미 영어 발표에 훈련돼 있었다. <사진=목정완 제공>
◆ 과학이 문화가 된 영국···남녀노소 즐기는 페임랩
 
영국에서 열린 준결승전(semi final) 두 번째 세션 첫 선수로 출전한 목정완 학생은 어깨에 작은 병아리 인형을 얹고 나왔다. 주어진 3분 동안 그가 발표한 주제는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킨 경험이었다.

정완 학생은 "생명체가 태어날 때 모든 것은 하나의 세포로 시작되고 생명이 완성되기까지 치밀하고 원대한 계획이 세포에 숨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작은 수정란 한 개의 세포로부터 시작돼 치밀한 계획을 통해 생겨난 걸작임을 전했다.
 
정완 학생에 따르면 31개 국가의 발표자들은 연기, 춤, 노래, 랩 등 개성 있는 방식으로 발표했다. 이들의 발표에는 퍼포먼스와 유머가 많았다. 정완 학생은 "발표자의 성향에 맞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방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발표장의 특징은 대중들이 크게 더 자주 웃는다는 것이었다. 정완 학생은 "지역 주민들 특히 노인들이 페임랩에 많이 와서 박수치고 웃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영화 티켓을 사듯 만 원짜리 과학 문화 티켓을 사서 행사장에서 강연을 듣고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정완 학생은 "영국은 과학을 문화로 생각한다"며 "이들은 과학이 내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연결된 질문을 하고 과학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필요한 것을 찾으려 한다"고 그가 느낀 영국 문화를 설명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답게 각 국에서 온 발표자들은 대중과 소통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매주 돌아가면서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3분 영상을 올려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정완 학생은 "정말로 과학을 좋아하는 것이란 이렇게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 대체되지 않고 쌓여가는 순수과학의 매력
 
정완 학생이 달걀을 부화시키고 발생유전학을 공부하게 된 데는 자연과 가깝게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과 여러 동물을 키웠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매우 컸다. 정완 학생은 그의 할아버지가 앵무새 알을 부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이 때의 경험이 나에게 용기를 줬고 결국 지금 나를 과학커뮤니케이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작은 경험이 쌓여 지금 그는 순수과학인 발생유전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됐다. 그는 현재 초파리를 이용해 발생유전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한다. 사람 유전자에 있지만 아직까지 연구된 적 없는 유전자를 탐구한다. '발생유전학'이라는 학문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완 학생은 "발생유전학이 엄마 자궁에서 커가는 태아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탐구하는, 우리와 가까이 있는 학문"이라며 "페임랩을 통해 그 놀라운 과정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순수과학인 발생유전학의 매력에 대해 묻자 그는 "기술은 진보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대체되지 않고 벽돌처럼 쌓이는 것"이라고 답했다. 수십 년 전에 쓰인 기초과학의 연구 방법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쓰이고 있다. 그는 "순수과학은 이름처럼 순수함이 필요한 학문이고 순수과학자는 자연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정완 학생은 병아리가 탄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촬영했다. 노트북 어댑터 온도를 정확히 37도로 맞추기 위해 여러 개의 게임을 실행시켜보는 나름의 실험과정을 거쳤다. <사진=목정완 제공>
정완 학생은 병아리가 탄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촬영했다. 노트북 어댑터 온도를 정확히 37도로 맞추기 위해 여러 개의 게임을 실행시켜보는 나름의 실험과정을 거쳤다. <사진=목정완 제공>
 
◆ 사람들은 진정 무엇이 필요할까?···소통에서 답을 얻다
 
"좋은 과학자는 만 명을 먹여 살리지만 한 명의 과학커뮤니케이터는 100명의 과학자를 길러낸다."
 
정완 학생은 과학커뮤니케이터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과학을 연구하는 것만큼 앞으로 과학을 할 사람을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과학커뮤니케이터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그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대중과 과학자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 사람들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완 학생은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가져올 영향을 생각하고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과학자들이 소통하는 것이 대중에게 주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정완 학생은 "과학자가 의무감에서 일방적으로 대중에 다가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문했다. 그가 소통을 하는 이유는 첫째 즐거워서, 둘째 아이디어와 동기부여를 얻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생에게 강의를 했던 어느 날 "선생님은 초파리가 왜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어른은 생각하지 못했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 하나로 자신의 연구에 애정이 커지고 자부심을 갖게 된 경험이었다. 그는 과학 소통이 결국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것임을 설명했다.
 
정식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기 전부터 그는 여러 학교에 강연을 하러 다니곤 했다. 2008년 KAIST에 입학하며 과학고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낸 것이 계기였다. 그는 "내가 과학고 출신의 선배를 만나서 과학고에 입학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생물학을 전해준다면 또 다른 과학자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연 활동 계기를 밝혔다.
 

목정완 학생은 예전부터 특이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이번 병아리 부화 사건에도 ‘너라면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생명을 사랑하는 그는 ‘따뜻하고 유쾌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사진=한효정 기자>
목정완 학생은 예전부터 특이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이번 병아리 부화 사건에도 ‘너라면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생명을 사랑하는 그는 ‘따뜻하고 유쾌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사진=한효정 기자>
◆ 넘치게 많아진 소통 기회, 본업인 연구와 조화롭게
 
올해 페임랩 대회는 끝났지만 그의 활동은 이제 시작이다. 자칭 'Famelaber(페임래버)'인 페임랩코리아 1기에서 4기 구성원들과 함께 올해 5번의 대중 공연을 할 계획이다. 다섯 번 중 네 번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예술가·배우들과 함께 과학 연극을, 나머지 한 번은 클럽에서 힙합이 들어간 과학 공연을 준비 중이다. 첫 공연은 7월 22일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페임랩코리아를 주관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다.
 
"과학이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걸어 나올 것이고 과학 문화를 만들어 참여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과학 연극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페임래버들이 준비하는 활동은 버스킹과 과학 마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SNL(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등 딱 봐도 신나는 것들이다. 정완 학생은 이런 활동들은 현재 수도권에서만 진행되지만, 수요가 늘면 자연히 지방에서도 진행될 것이라 내다봤다.
 
정완 학생은 "이제 커뮤니케이터 활동 기회가 넘치게 많아졌다"며 "본업인 연구와 조화롭게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로 그가 KAIST에 들어온 지 10년이 됐다. 석박사 통합과정 6년차이니 졸업할 날이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꼭 해보길 조언했다.
 
"제가 닭이 좋아서 시작한 달걀 부화가 페임랩코리아 우승과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결과를 가져왔듯이, 꿈이랑 직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결국엔 징검다리가 되어 우리가 그 꿈으로 걸어가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당당하고 멋있게 해봐요!"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