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한국 과학계 리더십 긴급점검' 과학정책대화 개최
"이슈제기에만 그쳐서는 안돼···문제해결 의지 없으면 '시녀' 못 벗어나"

대덕넷은 지난 9일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에서 '한국 과학기술계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긴급 과학정책대화를 개최했다.<사진=박성민 기자>
대덕넷은 지난 9일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에서 '한국 과학기술계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긴급 과학정책대화를 개최했다.<사진=박성민 기자>
"과학기술계에 많은 단체가 있지만 서로 인정하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힘을 모아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거나 대표성을 갖고 움직이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분위기다. 합의체 등을 통해 수렴된 의견을 전달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지속돼야 한다."

"연구현장에서는 기존 2차관 제도에서 3차관 제도로의 변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로 관료 개입이 증가한다면 과학계는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과학기술 현장 이해하는 과학자가 선임돼야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과학계 연구기관들의 기관장이 제대로 뽑혀야 한다. 현장 연구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리더가 세워져야 한다. 정부입김이 지배적인 현 기관장 선임이사회 체제를 현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낙하산 인사는 이제 그만하고, 과학계 경영리더십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한국 과학기술계 합리적인 리더십 확보 방안을 위한 다양한 제언들이 쏟아졌다. 과학기술정책대화에 참가한 현장 연구원들은 한국 과학계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진단하며, 과학기술정책 리더십과 경영 리더십 확보를 위한 허심탄회한 의견들을 내놓고 토의했다. 

대덕넷은 9일 오후 2시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 2층 대회의실에서 '한국 과학기술계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긴급 과학정책대화를 개최했다. 이날 정책대화는 별도의 발표자 없이 한국 과학계 리더십 바로 세우기라는 화두를 갖고 현장 참가자들의 대화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연구자 총회 구성과 과학정책 의제시스템 확보 ▲과학계 리더 선임과 현장 연구원 참여 ▲과학기술 거버넌스 역할 재정립과 분권화 등을 주요 이슈로 논의했다.

1. "우리가 주인···연구자 총회 만들자"

이날 가장 주목을 끌었던 의견은 '연구자 총회' 구성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과학에 대해 철학을 가지고 문제를 지속적으로 풀어가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과학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문화와 시스템을 갖고 있다보니 비합리적인 과학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 리더십을 바로 세우려면 현재와 같이 정부 주도 내지는 일방통행 방식이 아닌 과학계 그룹에서 통일된 목소리가 소통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들이 오갔다.

한국 과학계가 과학선진국들의 연구자 총회처럼 제대로 가동되려면 총회·협의체의 운영 연습도 필요하겠지만, 마냥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는 공감을 나눴다.

홍성주 STEPI 박사는 "프라운호퍼의 경우 연구 책임자 총회를 열고 안건이 나오면 이를 이사회에서 논의한다"라며 "연구회 이사회 안건이 정부 의제 뿐만 아니라 현장 의제도 들어갈 수 있다. 연구 책임자급 총회·협의회 구성과 운영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 총회 구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 팀장은 독일 막스플랑크의 과학자 총회 사례를 들며 "막스플랑크에도 정부 조직이 들어와 있다. 연구자 그룹 내부에서만 의사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과학계·정치계·사회계 등이 서로 임무와 역할에 맞춰 적절히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전체 과학계의 일관된 목소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각 연구소 단위부터 소통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지난 2008년부터 1년간 해외 저명 과학자 3명을 초청해 출연연 기관별 자문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의 공통적 지적은 '기관 내부의 소통 미흡'이었다.

석재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은 "우리 과학계 문화는 연구기관 내에서 조차도 협의가 잘 안되는 상황이다"라며 "과학계가 총회·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지속적 목소리와 합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정책의 의제화 관련, 구성모 IBS 선임행정원은 과학정책을 담당하는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같은 국책연구기관에서 과학계 의사결정 과정 관련 문제들을 정리해 의제화하는 기능을 적극 맡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 "리더 제대로 뽑자···서치커미티 가동·현장의견 반영돼야"

참가자들은 과학전담부처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 등 리더 선임 과정에 대해서도 최대한 관료 출신이 배제되고 과학자 출신 리더가 선임돼 현장 중심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기관 경영의 리더십 확보를 위해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제대로 된 인사가 선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무엇보다 기관장 선임 과정에서 '서치커미티' 가동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현장 연구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과학계 기관장 선임은 선출식이 아닌 임명식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적어도 기관장 3배수를 결정할 때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기관장 선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사진을 살펴보면 사실상 정부 측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왔다. 이사회 이사진 선임도 거의 정부 영향력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이사진 선임 또한 기관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바로 정립돼야 합리적인 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다고 강조됐다.

기관경영의 합리적 리더십 확보 차원에서 기관평가의 개혁의견도 제시됐다.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는 "과학계는 '연구 성과'로 기관장을 평가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경영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직원들이 심리상담을 얼마나 받았는지 평가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연구소를 회사 경영하듯 평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설픈 경영으로 과학도 못하고 경영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 거버넌스 중복 방지, 분권화돼야···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 역할 '제대로'

현 한국 과학계 리더십 의사결정 구조를 살펴보면 정부, 정부 부처, 정부사업 관리 운영 기관, 출연연, 대학 등의 관계가 탑다운 방식으로 얽혀있다. 그런 가운데 참석자들은 과학계 정책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는 한편 각 기구별 역할 재정립과 기능 중복 방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리더십을 가진 주체들이 권한은 갖고 책임은 안지려고 하는 관행이 짙다는 점이다. 각종 위원회, 심의회 등의 의사결정권이 복잡하고 현장 목소리가 중간에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정부부처를 비롯해 과학기술자문회의 등 과학기술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각 주체별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그 역할을 지켜야 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게 근본적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현장 연구원들은 각 부처의 역할이 현재는 서로 중복되고 기재부, 미래부 등의 이중 삼중 관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홍성주 박사는 지시와 이행관계로 굳어진 거버넌스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큰 관점에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며 전략예산 배분의 주체와 정부부처, 연구사업 관리주체들 간 중복 기능을 없애는 접근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송재준 팀장은 "R&D예산 비중을 골고루 나눠갖은 정부부처 체제의 우리나라 특성상 중복, 조정기능을 위한 과학기술혁신본부 등의 존속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고 연구개발 예산권, 심의, 조정 및 성과평가를 전담하는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 등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또 기존 국가과학기술심의회와 과학기술전략회의가 폐지되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 자문·조정 기구가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통합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의 올바른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자문회의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역할이 비대해지면 안되며,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오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공감을 이뤘다. 

특히 기존에는 자문위원들이 직접 발표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위원에게 과제를 줘 발표물을 만들고 자신이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자문회의의 기능이 강화되는 만큼 이러한 모습들은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PBS(연구과제수주방식), 정부수탁 R&D 규모 확대 등과 관련된 의사결정도 부처간 갈등으로 이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하다는 의견도 오갔다. 

홍성주 박사는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전략적으로 과학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분야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다보니 미시조정에 그쳐 왔다"면서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는 한편 과학계 전체를 보면서 국가전략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인사들이 자문회의에 진입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재진 부장은 "3차관 체제의 정부주도 R&D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든다"면서 "독일이 경제, 인문사회, 과학기술이 R&D를 함께 수행하는데 비해 과학계는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4차산업혁명 대비한 예산, 인력 등이 현장 중심 의사결정 구조로 재편되는 등 근본으로 돌아가는 리더십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다음은 정책대화 참석자 명단.  
▲석재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전정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홍성주 STEPI ▲이석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최종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현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성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상철 한국한의학연구원 ▲구성모 IBS ▲원세형 님 등을 비롯해 출연연 연구자와 기업 관계자들이 한국 과학계 리더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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