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AMP 14기 50명, 사이고 다카모리에 헌정된 가고시마 방문
'일기일회' 정신 곳곳에 스며…일본 역사 알아야하는 이유
NHK 2018년 1년 역사 드라마 주인공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지목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KCAMP 참석자들.<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KCAMP 참석자들.<사진=길애경 기자>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천왕체계가 완성되고 서양과 교류를 통해 과학과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의 중심에는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등 사무라이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인의 정신적 기저에는 사무라이 정신이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내년은 메이지유신 150주년입니다. 일본의 국영방송 NHK는 매년 메이지유신 주역 중 한명을 주인공으로 1년분량의 역사드라마를 제작합니다. 이는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작용된다고 합니다. 내년 주인공이 사이고 다카모리입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한일합병, 위안부 문제 등 우리에게 아픈 역사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나라의 과학과 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중요 기술, 소재 등 여전히 일본에 의지하고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이번 현장 답사 동행 취재는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1편은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 사이고 다카모리, 2편은 사무라이 속 엇갈린 조선인 운명 3편 참가자들의 소감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인천공항을 출발한 가고시마행 비행기. 창 너머로 녹색 풍경이 선명하게 들어올 무렵, 거대한 인물상에 시선이 고정된다.

단을 높게 올려 세운 동상은 큰 키에 둥근 얼굴, 짙고 각진눈썹, 부리부리한 눈, 앙다문 입술, 거의 맨머리 정도로 짧은 머리스타일이 한눈에도 인상 강한 사무라이다. 동상은 크기 10.5m, 무게 30톤으로 강인한 모습과 함께 거대함이 느껴진다.

반팔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세상을 내려다 보는 듯한 인물상의 주인공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정한론(조선을 치는)을 주장해 우리나라와는 악연의 인물이지만 그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1등 공신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최고의 위치에서 순간 전부 내려 놓는 선택을 한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그의 결정으로 메이지유신이 안정 궤도에 오르며 일본의 막부와 왕정의 혼란도 마침표를 찍는다. 지금의 일본을 세우는 근간이 만들어진 것.

그런 이유로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 그를 일본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하고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태어나고 묻힌 가고시마 곳곳에는 그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숨쉰다. 일본의 국영방송 NHK는 내년 방영할 대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사이고 다카모리를 지목했다. 내년은 메이지유신 150주년으로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짐작 해 볼 수 있다.

그 현장을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벤처 CEO와 임원, 고위 공직자, 금융인, 변호사 등 전문인으로 구성된 KAIST 컨버전스 최고경영자과정(이하KCAMP) 14기가 찾았다. 한 학기 과정 중 주요일정으로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의 저자 이광훈 교수와 '메이지유신 역사 문화 탐방'시간을 가졌다.

김영환 책임 교수는 "대부분의 최고경영자과정들이 관광과 골프로 해외연수를 채우고 있지만, KCAMP는 해외연수를 일본 역사탐방으로 구성했다. 우리는 일본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탐방 취지를 설명했다.

4월 21일부터 3일간 여전히 일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 '가고시마'를 찾아 메이지유신 기념관, 심수관 도요, 도고 시게노리 기념관, 가미카제 특공대 기념관 등을 둘러봤다.

KCAMP 참가자들은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와 연계되는 현장에 때때로 안타까운 긴 한숨을 토해냈다. 혹자는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150년 넘게 일본인들의 자긍심으로 살아 숨쉬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리더십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고 다카모리 공원에서 이광훈 교수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 공원에서 이광훈 교수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사진=길애경 기자>
◆ 메이지유신 주역 무더기 배출한 '가고시마' 이유는?

가고시마는 일본 국토의 남서쪽 규슈 남부에 있는 현이다. 605개의 섬으로 구성돼 전체 면적은 9188.10 km² 인구는 164만명 규모다. 또 최근 분출된 활화산 사쿠라지마 섬과 2700여개의 온천이 있을 정도로 온천의 고장이기도 하다.

주요 산업은 축산업과 농업이다. 주요 작물은 고구마와 차를 꼽을 수 있다. 흑돼지가 유명할 정도로 양돈 농가가 많다. 일정동안 이동하면서 만나는 풍경의 대부분도 초록 물결의 차 밭과 고구마를 이용한 막걸리와 소주, 흑돼지 음식, 기념품(사이고 다카모리를 넣은)이다.

얼핏보면 조용한 농축산업의 고장이지만 우리의 산업에도 가고시마 기술이 깊숙히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막걸리 회사 중 3개사를 빼고 모두 일본에서 생산한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국내 유명 소주 회사도 이곳에서 나온 누룩을 납품받고 있다. 국내에서 전통주로 알려진 분야도 일본 기술의 영향을 받는 셈이다. 

맨 처음 도착한 가고시마의 사이고 공원과 메이지유신 기념관. 가는 길목의 가고시마 중앙역 광장에는 유신지사 군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메이지시대 사쓰마 인맥의 주역들이 다수 배출됐다.

이광훈 교수에 의하면 한일합병의 단초가 된 정한론의 주인공 사이고 다카모리,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大山巖) 원수, 러일전쟁 승패의 결정적 분기점이 된 동해 해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의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태어났다.

또 사이고 다카모리의 친동생으로 메이지 신정부의 최장수 해군 대신을 지낸 사이고 쓰구미치(西郷従道) 등 일본 해군의 기초를 닦은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이 마을에서 자랐다.

특히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의 선봉에 섰던 해군 소장 아리마 마사후미(有馬正文)도 이 마을 출신. 그는 제독의 신분 대신 특공대로 출격해 전사, 살신성인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된다. 신정부의 초석을 다진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가지야 마을 건너편 동네에서 태어났다.

일본 국회에서 막부말기부터 종전까지 일본을 일으킨 위대한 인물 650명의 출신지를 뽑아본 결과 도쿄에 이어 가고시마가 2위를 차지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가장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어떻게 이처럼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었을까. 이광훈 교수는 가고시마의 검법과 사무라이 정신을 들었다.

가고시마의 검법은 방어없이 공격만 하는 방식이다. 이 검법은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사무라이 정신으로 이어졌고, 이 지역 출신들은 단 한번의 기회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일본의 상업에도 그대로 접목, 일본을 서비스 으뜸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광훈 교수는 "당시 일본에서는 마을 교육이 이뤄졌는데 가고시마는 사무라이 기질이 강한 곳이었다. 특히 가고시마의 검법은 가장 단순무식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면서 "이런 검법 정신이 사무라이 정신으로, 일기일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NHK 방송이 1964년부터 매년 1년 역사드라마를 만드는데 3분의 1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이다. 내년에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인공인데 그만큼 의미를 크게 둔 것"이라면서 "이 지역의 번이었던 사쓰마 번의 민요에서 일본 국가가, 배에 꽂았던 깃발이 일본 국기가 됐다.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이 어느 지역보다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리더십

참가자들이 사이고 다카모리가 묻힌 난슈묘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참가자들이 사이고 다카모리가 묻힌 난슈묘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는 1827년 가난한 사무라이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남3녀의 대가족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와 같이 메이지 유신을 이끌며, 신정부의 초석을 다진 오쿠보 도시미치는 건너편 동네에 살았다.

오쿠보는 사이고 다카모리보다 더 가난해 끼니를 거를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그는 다카모리 집에 와서 밥상에 그냥 앉았다. 다카모리의 형제들은 군말없이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 그의 밥그릇에 넣었다. 둘은 절친이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다른 길을 걷는다. 메이지유신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사무라이 집단이다. 사무라이로서 기득권도 월급도 사라지며 700만명의 사무라이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메이지유신의 1등 공신으로 최고 위치에 올랐던 둘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의견이 대립한다. 오쿠보는 우정보다 국가를 우선하며 사무라이들을 밟고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카모리는 그의 좌우명 '경천애인(敬天愛人)'를 따랐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며 사무라이들에게 길을 만들어주기위해 정한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오쿠보는 정한론을 반대했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주장은 신정부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카모리는 정한론이 좌절되자 자신의 지위와 부귀를 모두 내려 놓고 고향 가고시마로 내려온다. 부하들 역시 앞뒤 보지않고 그를 따른다. 사쓰마 사무라이들은 미련 두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 2000여명과 거병을 일으킨 다카모리는 반란군으로 진압되며 자결을 선택했다.

1877년 일어난 세이난 전쟁이다. 이는 10만명의 병력이 동원되고 2만명이 사망한 일본  최대의 내전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신정부가 비로소 왕정중심으로 안정되게 된 것이다.

이광훈 교수는 "메이지유신 이후 사무라이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정국이 안정되지 않자 다카모리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봤고 유달리 사무라이 정신이 강한 사쓰마 사무라이들에게 명분있게 죽을 수 있는 자리를 준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리더십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면서 "1892년 다카모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진퇴가 분명한 다카모리의 리더십에서 일본인들은 그들 정신의 원류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의 발상지를 의미하는 '유신 후루사토관'을 세워 메이지유신의 전개과정과 사무라이 정신 교육 자료를 전시하며 그를 기념하고 있다"면서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 개국을 당한 조선이 조금만 제대로 일본을 알고 정신을 차렸다면 일본의 혼란기에 국력을 비축할 수 있었는데 무관심으로 기회를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가고시마에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추모하기 위해 탄생 100주년인 1977년에 세워진 현창관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사이고 다카모리의 좌우명 경천애인이 쓰여진 큰 액자와 그의 초상화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옆 난슈묘지에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세이난전쟁에 참전했던 사쓰마 사무라이 2000여명의 묘지가 있다. 질 것을 뻔히 아는 전쟁이었지만 사무라이들은 14세 소년부터 자원입대해 미련없이 목숨을 던졌다.

그들을 추모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매일같이 이어진다. KCAMP 참가자들이 방문한 날에도 누군가 다녀갔는지 다카모리의 묘비 앞에 꽃과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 교수는 "난슈묘지의 묘비명을 보면 30세 이전에 모두 사망한다. 의리와 명예를 중시하고 미련을 두지않는 이들의 정서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라면서 "목숨도 명예도 돈에도 욕심이 없는 사람을 다루기가 가장 힘들다. 하지만 이런 힘든 자들이 모든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며 국가의 대업을 이룬다. 일본에는 이런 정신이 지금도 이어진다. 일본의 정신적 기저다. 우리가 일본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수가 진행된 KAIST 컨버전스 AMP과정(KCAMP)은 융합형 리더 양성을 지향하는 KAIST의 최고경영자과정으로 현재 9월에 시작되는 15기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저자 이광훈,  '칼에 지다' 저자 아사다 지로

*2편은 한국인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전범 25인 중 한명이 된 도고 시게노리(박무덕)와 심수관요, 참가자들의 소감이 이어집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묘역. 매일같이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 묘역. 매일같이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의 초상화와 좌우명 경천애인이 적힌 액자.<사진=길애경 기자>
사이고 다카모리의 초상화와 좌우명 경천애인이 적힌 액자.<사진=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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