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출연연, 해외 공동채용 설명회 공무원 갑질발언 논란
"기관 피해 이유로 참다보면 과학계 부정적 영향" 반응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 공무원, 정부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유수 이공계생들에게 한국 국격의 밑바닥을 보인 듯해 얼굴을 못들겠다. 이런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지 더 이상 두고 보면 안된다."

국내 한 공무원이 해외 우수인재 채용 설명회장에서 "공무원이 되면 산하기관도 꼼짝 못한다"는 발언이 연구현장에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나온 반응들이다. 

연구현장에서는 이번 상황에 대해 관료중심의 행정이 관행처럼 이어져 온 폐해로 한국 정부와 과학계의 현주소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연구현장에서도 더이상 두고 보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22일 미국 UC 버클리 대학에서 열린 해외 공동채용 설명회 자리에서 인사혁신처 소속의 한 사무관이 한 말에서 시작됐다.

당시 인사혁신처의 한 사무관은 학생들이 참여한 설명회에서 "공무원이 되면 힘이 생긴다. 출연연 등 소관기관 사람들도 나이어린 사무관 말에 꼼짝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가 출연연과 함께하는 해외 공동채용 설명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정부출연기관이 5년 전부터 네트워크를 통해 마련한 자리에 숟가락만 얹은 격으로 올해 처음 참여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하 연구회)와 소관 정부출연기관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의 주요 대학에서 우수한 동포 자녀 선발을 위한 '해외 공동채용 설명회'를 갖고 있다.

해외 공동 인재채용 설명회는 출연연 개별로 진행할 경우 비용 등 어려움이 있어 연구회를 중심으로 출연연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현지 학생들에게도 호응이 높다. 

행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공을 들여왔다. 해외 유수 대학의 학생회에서 적극 나서서 참여할 정도로 기반이 다져졌다"면서 "그런 자리에 인사혁신처가 처음 참여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참여 학생들 대부분 이공계 전공자들이다보니 공무원 쪽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인사혁신처 설명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출연연 부스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설명회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며 어이없어 했다.

현재 해당 사무관은 감사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 연구인재 선발 자리에 공무원 입지 과시?

"문제는 현장에 있던 출연연과 연구회 관계자 누구도 입을 다물었다는 데 있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만 있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이 더 격앙됐었다고 한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점점 출연연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참석한 학생들은 그동안 출연연에서 진행 해온 로드쇼에 익숙하다. 상황을 모르고 준비해온 인사혁신처 자리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던게 당연했다. 그런데 해당 관료가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인력 동원을 요청한 것인데 나름 과시하고 싶었나 보다. 참여한 학생들은 엘리트들인데 관료는 전혀 엘리트가 아니었다."

정부 관료의 출연연에 대한 막말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연구개발 과제와 관련된 공무원들의 연구현장 흔들기는 예산 배분과 평가 등 행정이 관료 중심으로 지속되면서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당시 행사를 기획했던 분들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씁쓸해 하고 있다. 조직에 피해가 될 듯해 참은 것으로 아는데 관료중심주의 폐해를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내년부터 인사혁신처나 다른 정부부처가 참여하면 출연연은 가지 않겠다"면서 "우수한 이공계 해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관료가 물을 다 흐려놓았다. 해외에 있는 학생들은 물론 해외 곳곳에 한국의 국격을 바닥까지 드러낸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출연연의 정책 담당자는 "이번 사태는 관료들의 행태 중 드러난 일부다. 이런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전국민이 평화적 촛불민심으로 국격을 보여줬는데 관료사회는 여전히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서 발생한 문제다. 연구현장에서도 참다보면 과학계 전체로 피해가 가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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