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광화문에서 열린 과학행진 모습.<사진=대덕넷 자료>
22일 광화문에서 열린 과학행진 모습.<사진=대덕넷 자료>
지난 4월 21일은 제50회 과학의 날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고, 세계 곳곳에서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이 줄을 이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에 눈을 감는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의 과학자들이 시민과 함께 도심을 행진하는 평화 집회를 기획했다. 여기에 다른 나라의 과학자와 시민들이 뜻을 같이 하며 총 54개국 514개 도시에서 벌어지는 세계적 행사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800여 명의 과학자와 시민이 모였다. 과학기술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유발언과 행진이 있었고, '과학을 나누다'라는 대중화 행사도 함께 열렸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조금씩 색깔이 다른 행사들을 보며 새삼 궁금해졌다. 이들은 한 무리로 묶을 수 있는 행사들인가? 과학의 날에 열리는 수많은 행사들은 누가, 무엇을, 왜, 기념하는 것일까? 이 많은 행사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지는데, 사실 거기서 말하는 '과학'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걸까?

한국의 과학의 날인 4월 21일은 사실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날이다. 1967년 과학기술처의 설립은 이후 1970년대 내내 지속된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정부 안에 독립된 과학기술 정책 전담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광복 직후부터 과학기술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 마침내 결실을 거두었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과학의 날을 기념할 때의 '과학'이라는 말 안에는 제도로서의 과학, 국가 정책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과학의 날이 제정되기 전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공학자 김용관이 주도하여, 찰스 다윈의 50주기가 되는 1934년 4월 19일 '제1회 과학데이' 행사가 열렸다. 김용관과 그가 설립한 '발명학회'가 기렸던 과학은 패러데이와 에디슨이 상징하는 과학,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드는 과학이었다. 여기에서 과학이라는 말 안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 기술, 발명, 혁신 등이 모두 뭉뚱그려 담겨 있다. 말하자면 '힘'으로서의 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힘으로서의 과학, 제도로서의 과학에 더해 문화로서의 과학도 4월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창 대중동원이 활발했을 70~80년대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과학의 달인 4월에 발명 경진대회, 과학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과학이 지식으로서의 과학이었다면, 이러한 행사에서 부르짖던 과학은 문화 또는 이념으로서의 과학에 가깝다. 낱낱의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과학적 영농' '과학적 가정생활' 등 과학적이라는 형용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화를 향해 돌진하던 개발주의의 시대에, 그 과학적이라는 말은 대체로 '전통과 다른'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1973년 야심차게 시작된 '전국민의 과학화 운동'은 이와 같은 문화 또는 이념으로서의 과학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개발주의의 시대를 벗어났다고들 말하지만, 과학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과학은 우리를 잘 살게 해 주는 지식, 우리를 힘세게 해 주는 지식으로 이해된다. 그 수단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라디오의 시대, 자동차의 시대, 반도체의 시대, 줄기세포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선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다만 시대를 풍미하는 주제어를 정해놓고 관련 정부 부처나 단체들이 그쪽으로 논의를 몰고 가며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2010년대에도 여전히 가장 유효한 방법인지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학이라는 낱말이 뜻과 쓰임새가 이렇게 여러 가지라면, 과학의 날을 즐기는 방법도 더욱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동네 학교나 도서관에 늘 얼굴을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차 한 잔씩 손에 들고 모여서, 식순이나 자리 배치도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과학 덕분에 우리 삶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워지는지 이야기 나누고, 평소 궁금하던 과학적 문제도 함께 토론하거나 실험해 보는 작은 모임들이 더 많아진다면 어떨까?

이렇게 과학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사실 따로 과학의 날이나 과학의 달을 정할 필요도, 과학을 위해 행진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모든 기념일의 궁극적 꿈이기도 할 것이다.

◆김태호 교수는

김태호 교수
김태호 교수
연표가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듯, 과학기술사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쌓아올리는 과학기술자는 시대와 지역이라는 좌표계 안에서 실존하는 인간들입니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김태호 교수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진리를 추구하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긴장 관계에 주목하고, 과거의 과학기술을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 지면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균형을 잃지 않으며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김태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과학학(STS)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주로 연구합니다. 1970년대 농촌의 변화를 선도한 '통일벼'의 역사, 한글 타자기의 역사, 한국 기능인력의 양성과 '기능올림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 왔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한양대학교를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발간을 비롯한 다양한 학술 활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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