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2시 '함께하는 과학행진' 열려···6개 대륙 600개 도시서 과학행진
초등학생부터 중견과학자까지 남녀노소 500여명 집결
"과학자, 목소리 내야할 때" 햇볕보다 따뜻한 공감대

22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함께하는 과학행진' 행사가 개최됐다.<사진=박성민 기자>
22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함께하는 과학행진' 행사가 개최됐다.<사진=박성민 기자>
"과학과 대중은 하나다. 하나! 하나! 하나!"
"과학은 꿈이다. 꿈! 꿈! 꿈!"
"연구는 자율적이다. 자율! 자율! 자율!"

서울 광화문 인근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이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현장의 열기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보다 따뜻했다. 각자 높게 치켜든 피켓에는 과학을 위한 메시지가 다양하고 분명하다.

지구의 날 4월 22일 과학기술인의 과학행진 현장에 초등학생부터 중견과학자까지 500여 남녀노소가 모였다. 이들의 옷과 피켓에는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이라고 적혀있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상임대표 노석균)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대표 윤태웅)는 22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함께하는 과학행진'을 개최했다.

행사에서 '과학을 말하다' 주제로 버스킹이 진행됐다.<사진=박성민 기자>
행사에서 '과학을 말하다' 주제로 버스킹이 진행됐다.<사진=박성민 기자>
이날 행진에 앞서 과학기술인들인 '과학을 말하다' 주제로 버스킹(거리 공연)을 나섰다. 이들의 발언 주제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이공계 학생을 비롯해 일선 과학자, 여성 과학자, 장애를 가진 과학자 등 각계각층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연구현장 메시지를 피력했다.

'과학을 말하다' 버스킹 현장발언에서 이선희 인헌중학교 교사가 용기 있게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저소득층 중심으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최근 센터에서는 '과학 내가 제일 잘나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 아이들이 후배들에게 직접 과학을 교육하는 수업이다.

그는 "아이들이 후배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려는 의지가 보인다. 과학 수업을 직접 진행하면서 과학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고 있다"라며 "저소득층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의료 전문가도 버스킹 무대에 올랐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내 예방접종 거부 인식'에 대해 언급했다. 황 교수는 "대형서점 건강 관련 코너에 가면 예방접종을 피하자는 내용의 서적이 많다"라며 "하지만 이미 예방접종 필요성은 과학적 논의가 끝났다"고 역설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먼저 예방접종에 대해 신뢰하고 주변인들에게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라며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공동체 사회를 무너트리는 테러와 같다. 과학기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당부했다.

서점 '갈다'의 대표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인 이은희씨도 '과학'을 알리기 위해 버스킹에 나섰다. 그는 "과학은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알아가는 학문"이라며 "누구나 과학을 좋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과학을 아는 삶을 살자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누구나 과학자가 되고 과학적 삶을 살 수 있다"라며 "우리가 지금까지 과학을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심도있게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이현숙 서울대 교수는 과학기술인들에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그는 "한 학부생이 나의 연구가 틀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라며 "이를 인정하는 순간,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닌 합리적 연구결과로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료나 후배들의 데이터를 믿고 합리성을 믿어야 하고 과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목소리도 강력했다. 지은경 포스텍 화학과 대학원생은 여성 과학도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수업시간을 비롯해 술자리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심적 피해를 봤던 기억이 난다"라며 "과학은 100%가 없다. 0.1%의 오차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여성과학자의 삶에도 항상 다양성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현희 숭실대 초빙교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휠체어에 앉아 무대로 향했다. 그는 과거 연구 생활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그동안 장애 때문에 연구실에서 연구를 혼자 해왔다"라며 "하지만 과실연, ECS 등 과학단체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과학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치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이날 '과학을 말하다' 버스킹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각자 마련해온 피켓을 들고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과학의 가치와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시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과학을 보여주기 위해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대한변리사회, 한국기술사회, 한국과학기자협회, 한국과학언론인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동아사이언스, 대덕넷, BRIC 등이 후원·참여했다.

◆ 전세계 6개 대륙 600개 도시에서 '과학 행진'

워싱턴에서 진행된 과학 행진 모습.<사진=워싱턴포스트 캡쳐>
워싱턴에서 진행된 과학 행진 모습.<사진=워싱턴포스트 캡쳐>
'지구의 날' 워싱턴·LA·시카고·보스턴·시드니·호주 등 전 세계 곳곳에서도 수만명의 과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연구원을 비롯해 교사와 엔지니어 등 과학계 종사자들이 '과학을 위한 행진' 피켓을 들고 나섰다.

이날 과학 행진은 명목상 47번째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지만, 과학 예산을 대대적으로 감축시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항의하기 위한 과학 정책 반대 시위 성격이 짙게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워싱턴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천명의 시위대가 모였고 LA에서는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기후변화 정책에 항의했다. 시카고에는 최소 4만명이 과학 행진에 참여했다.

전세계 6개 대륙 600개 도시에서 진행된 과학 행진에서는 '과학을 위대하게', '과학, 침묵이 아니다', '과학자는 내성적이지만 지금은 큰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과학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

이날 피트 아길라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과학은 현실이고 기후변화도 현실이다"이라며 "트럼프 정부가 우리의 환경과 지구의 미래에 끼치는 위험 역시 현실이다. 과학이 지구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워싱턴 과학 행진 주최 측의 캐롤라인 웨인버그는 "사실 과학은 정파적인 것이 아니지만, 과학을 마치 정치처럼 조작하려는 시도가 우리를 이런 행동에 나서게 했다"라며 "과학은 더이상 침묵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장을 360도 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마우스로 화면을 드래그하면서 생동감 있는 '과학 행진'을 확인하세요.]<영상=박승주>

행사에서 500여명의 참가자가 광화문 일대를 누비벼 과학행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행사에서 500여명의 참가자가 광화문 일대를 누비벼 과학행진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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