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과학의 '끝판왕'···"양자는 지식의 끝 보는 학문" 
표준연 과학자·물리학도·진행자 함께 모여 '양자'로 소통

<사진=윤병철 기자, 디자인=남선 디자이너>
<사진=윤병철 기자, 디자인=남선 디자이너>

"양자역학 왜 연구하나요?“

"양자역학은 원자 단위의 미세한 세계를 보는 학문이에요. 미세한 눈금들로 길이를 재듯, 양자역학은 원자 단위의 정밀 측정을 가능케 하죠."

라디오 진행자가 묻고, 과학자가 답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박상열) 미래측정기술부 양자측정센터에서 과학자와 물리학도, 라디오 MC가 모여 양자역학에 대한 의미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나갔다.

정수용·이상민 표준연 양자측정센터 박사와 김민준 충남대 물리학과 재학생 그리고 정연화 대덕밸리라디오 MC는 양자역학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측정기술에 있어서의 양자역학의 중요성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양자역학을 들여다봤다. 

◆ 양자역학 왜 연구하나?···"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정연화 :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편하다.' 양자역학에 새로운 전재 방향을 제시했던 '양자전기역학(QED)' 이론 정립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리차드 파인만 조차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을 이루는 양대 축으로 물리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양자역학, 왜 연구하는 걸까?

이상민 : 물리학적 입장에서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뉴턴으로 내려오는 고전물리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한 학문이라면,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결국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학문이다. 

정수용 : 현대 물리를 연구하는 대다수 과학자들 중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벗어난 연구는 거의 없다. 우리가 현재 모르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양자역학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원을 그리며) 자연계가 이렇게 있다고 치자. 사람들 모두 원의 가운데만 본다. 그리스·로마 중세시대인들이 딱 그만큼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원의 양끝은 미시세계를 보는 양자이론, 우주 같은 거시세계를 다루는 상대성 이론이 있다. 우린 이 지식의 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김민준 : 동의한다.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양자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양자를 연구하는 이유는 결국 '과학을 왜 공부 하느냐?'는 질문에서 뻗어나간다. 고전역학적인 관측은 기술발전에 한계가 있다. 미래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연구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수용 : 지금도 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양자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민 :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증명할 수 있었던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이 실험적인 검증을 마쳤다. 이 성과는 얼마 전 네이처에 실렸다.  

*양자역학에서 벨 부등식(영어: Bell's inequality) 또는 이를 일반화한 벨 정리(영어: Bell's theorem)은 국소적인 숨은 변수 이론은 양자역학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이는 존 스튜어트 벨이 처음 보였으며[1], 물리학과 과학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정수용 : 벨의 부등식은 1964년에 처음으로 제시된 이론이다. 그동안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게 어려웠던 거다. 하지만 이제 눈으로 보여줄 만큼의 기술적 발전이 구현됐다. 고전적인 시각으로 열 수 없었던 세계를 양자역학적인 시각으로 열게 된 것이다. 

"양자역학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세요~"<사진=조은정 기자>
"양자역학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세요~"<사진=조은정 기자>
◆ 양자역학 발전하면 순간이동도 가능할까?

정연화 : 양자 측정 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하면, 우리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정수용 : 글쎄, 일반인들은 영화 백 투 더 퓨처 같은 미래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양자를 연구하며 궁극적인 목표,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다. 내가 아직 그럴 위치에 오르지도 않았고.(웃음) 다만, 지금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거란 답은 할 수 있다. 

이상민 : 지금까지 양자측정이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반추해보면, 미래를 조금 예측할 수는 있겠다. 초시계, 손목시계만으로도 시간 측정이 충분하다고 여겼지만 원자시계의 등장으로 더 정밀한 측정이 가능했던 것처럼 공학의 사고에 따라 양자역학이 어떤 기술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 같다. 

김민준 : 가장 가까운 미래로는 반도체 공정 과정의 변화가 아닐까. 더 미세화가 이뤄지면서 반도체 성능 향상이 이뤄지지 않을까. 

학부생들 사이에선 순간이동 현상도 이슈다. 몇 년 전 국내 한 연구팀이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광자를 순간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나. 아주 먼 미래에 물체가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 현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이상민 : 민준 학생이 말한 개념이 양자 전송이다. 그런데 물체가 실제로 움직이는게 아니고, 물체의 정보가 이동하는 거다. 

정연화 : 학생들에게 순간이동만큼 흥미를 끄는 기술도 없을 거 같다.

정수용 : 맞다. 꿈의 기술이 되겠다. 

정연화 : 아예 불가능한 기술인가. 

정수용 :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한두 개 원자를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생체의 세포를 나눠 순간 이동을 시킨 후, 다시 세포를 모은다고 생체가 온전해질까? 

정연화 :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는 문화콘텐츠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이상민 : 현실에서 양자역학의 잘못된 예시를 다루는 게 많다. 아무래도 픽션이다 보니, 영화와 같은 콘텐츠로 적당한 건 없는 거 같다. 영화 <앤트맨>의 경우, 히어로가 계속 작아지다가 결국 양자역학 세계에 빠지게 되는데, 사람의 몸이 작아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웃음). 

대신 최근에는 부산대 김상욱 교수님과 같이 일반 대중에 대한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과학자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분들의 글과 이야기를 통해 보다 정확한 개념의 양자 역학적 지식이 보편화되길 기대한다.

정수용 : 양자이론보다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현대물리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지만, 인터스텔라, 그래비티가 다룬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그 중에서도 일반 상대성 이론. 블랙홀, 웜홀, 타임 슬립 등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천체를 직접 볼 수 있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반면에 양자역학은 '어려운 물리'로 여긴다. 아무래도 양자역학이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다루다보니 제대로 된 양자역학을 콘텐츠로 담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거다. 

김민준 : 양자역학이, 더 넓게는 과학서가 보편화되길 바란다. '나 방학 때 교양서로 인문학책 읽었어' 하는 친구들은 있어도, '나 교양서로 과학책 읽었어' 하는 경우는 드물다. 

◆ 양자측정은 극저온이 필요하다고···"열 제거해 물질 고유의 진동 줄이다"

정연화 : 1900년, 당대 최고 물리학자 캘빈이 이런 말을 했다. 물리학에서 이제 새로 발견할 것은 없다. 남은 일이라곤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 뿐 이다. 

정수용 : 1900년대 초반이 딱 그때다. 동그란 원 안만을 보며, '우린 모든 자연현상을 다 이해했다'고 한 시기. 그런데 갑자기 원 바깥쪽을 보게 된 아인슈타인이 나타나게 되었고(상대성 이론), 그 반대 편을 보게 된 플랑크가 양자역학 시대를 열지 않았나. 캘빈이 양자역학을 몰랐기에, 물리학에서 새로 발견할 것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었던 거다.(웃음)

이상민 : 양자역학은 정밀한 측정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미세한 눈금들이 길이를 측정하듯, 양자역학은 아주 미세한 단위, 최소 단위에서의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정연화 : 낮은 온도, 극저온 냉각장치를 여쭤봐야 할 거 같다. 양자측정을 위해선 낮은 온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냉각장치 시설은 어떻게 구축이 되어 가고 있는지? 국내 기술로도 가능한가?

정수용 : 양자측정에서 왜 낮은 온도가 필요하냐에 대해 답해야할 거 같다. 기본적으로 통계물리학에서 모든 물질은 열에 의해 떨고 있다고 배운다. 추위나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온도에 맞춰서 몸에 있는 진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온도가 낮을수록 진동이 줄어들게 된다. 우리와 같이 아주 미세한 영역을 측정하기 위해선 외부의 떨림(잡음)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액체헬륨을 사용하여 온도늘 낮추는 것이 떨림을 줄이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액체 헬륨을 사용하면 -269 °c. -4 K 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참고로 우주온도가 2.7 K(켈빈, 열역학적 온도의 단위) 이다. 우주에 약 24 ~ 25% 정도의 많은 헬륨이 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생산되지 않는다. 미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40% 담당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양자역학 연구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헬륨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표준연에서는 작년에 헬륨을 재 활용할 수 있는 액화기 설치를 완공해 운용중에 있다.

김민준 : 양자역학을 연구하고 있는 곳이 표준연이 유일한가? 

정수용 : 그건 아니다. 양자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꼭 극저온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연구하는 데 극저온 설비가 상당부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극저온 시설이 표준연 만큼 잘 갖춰진 곳이 몇 군데 없다. 서울대, 포항공대도 실험실 단위로 구현되어있지, 우리처럼 대규모로 구축되어 있진 않다.

정연화 : 협업하고 있는 대학도 있나?

정수용 : 현재 KAIST 및 국내 여러 대학들과 함께 협력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자연스럽게 묻고 토의하는 문화가 좋아

정연화 : 일반인의 입장에서 궁금한게, 과연 과학자들은 실험 중에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이다. 

정수용 : 딴 거 없다. 일단 비슷한 연구 분야 내 과학자들에게 물어본다. 연구자는 늘 선구자적 입장이지 않나. 우리가 원하는 답은 교과서에도 없다. 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분석하는 데이터가 이상하다 싶으면, 논문을 찾아보고 주변 연구자들과 풀어간다. 

김민준 :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물리현상을 가지고 토론을 벌인다. 각자 생각하고 있던 물리 이론들이 논의를 통해 발전해 나가고 있는 걸 느낀다.

이상민 : 모든 연구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는 거의 없다. 협업은 연구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정수용 : 트랜지스터 개발자가 컴퓨터에 활용될지 몰랐던 것처럼, 당시 원자시계를 별명한 과학자들도 GPS를 상상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사회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우리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논문과 특허를 통해 외부와 공유하고, 기술 사업화 등을 통해 다른 영역의 사람들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융합, 협업의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참석자들이 정수용 박사와 이상민 박사의 안내로 양자측정센터를 방문했다.<사진=윤병철 기자>
참석자들이 정수용 박사와 이상민 박사의 안내로 양자측정센터를 방문했다.<사진=윤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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