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대선' 과학기술 정책 진단과 대안

[홍성주의 과학기술정책]"거버넌스 구조와 기능상 결함 해소해야"
◆ 독임 부처냐 합의제 기구냐? 무엇을 풀 것인가에 집중하자!

2017년 장미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에서는 과학기술 행정체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주제로 하루에 행사가 세 번이나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대선의 뜨거운 이슈로 만드는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존치할 것인가 아닌가? 합의제 기구의 신설이냐 독임 부처의 설립이냐? 새로운 부처의 명칭을 과학기술부로 할 것인가 과학기술혁신부로 할 것인가? 위상은 장관급인가 부총리급인가? 논란은 뜨거운 듯 보이지만 과학계와 유권자의 호응은 시큰둥하다.

대선 정국마다 과학기술 행정체계는 마치 블랙홀처럼 다른 과학기술 이슈들을 집어삼켰다. 과학기술 체계의 오래되고 적체된 문제들은 수면 아래에 놓인 채, 행정체계의 변동이 과학기술 발전의 절대적 해결책인 듯 인식되었다. 그 이외의 문제들은 대개 과학기술에 대한 시혜성 공약으로 처리되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 과학기술인을 우대하겠다 등이 그것이다. 과학계 문제의 해결책은 소위 '500만 과학기술인'으로 과대평가된 표심과 연결되어 모색되었다.

역사의 반복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과학기술 이슈의 프레임이 행정체계에 집중되는 현상은, 이 프레임을 과학계 스스로 허물지 않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제껏 겪어왔듯 정치 변동은 과학기술 행정체계의 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행정체계 변동 후에 돌아오는 실상은 뒤늦게 시작되는 어설픈 개혁의 바람과 정부 개입 방식의 고도화, 그리고 그로 인한 과학기술계의 당혹과 혼란뿐이다.

우리의 시대적 숙제는 이러한 예측을 틀린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미래의 과학자 세대에게 동일한 모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현재의 과학자 세대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새로운 행정체계의 모양과 명칭, 위상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 문제의 핵심은 정책 거버넌스 구조와 기능상의 결함이다!

과학기술 행정체계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 온 까닭은 과학기술 정책 거버넌스의 구조와 기능상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바꾸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거버넌스의 결함을 해소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현 거버넌스의 결함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칸막이 심화, 다른 하나는 수직 계열화다. 칸막이 심화는 관료제 조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칸막이 현상의 완화를 위한 처방은 1) 수평적인 합의제 조직을 두거나, 2) 수평적 합의를 이끌어낼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수평적인 합의제 조직으로는 과학자회의, 연구회/연구협회, 연구자 평의회, 공동회의체 등을 들 수 있다. 굳이 수평적 조직을 두지 않더라도 포사이트나 전략 수립 과정에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킴으로써 기능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처방 모두에서 칸막이 완화 장치에 문제가 있다. 하나만 예로 들면, 과학기술기본계획은 과학기술 의제의 집대성이어야 함에도 실제로는 각 부처의 기존사업과 예산을 종합한 것에 불과하다. 기본계획의 방향 설정 및 전략 도출 과정 또한 합의를 도출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두 번째 결함인 부처별 수직 계열화는 다소 한국적인 현상이다. 정부 부처별로 연구개발 사업을 나누고, 그 사업을 관리할 기관 또한 부처별로 두다 보니 정부 부처에서 관리조직, 연구개발 주체까지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일견, 수직계열화는 하나의 미션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상부 조직이 단순할 때에 한정되는 얘기다. 상부조직이 수십 개로 분산된 상태에서 가지가 많은 지시전달체계는 비효율을 높인다. 부처별 수직계열화의 더 큰 문제는 역할과 책임이 수직계열을 통해 분산된다는 점에 있다. 해당 부처 공무원의 업무와 산하기관 관리자의 업무, 그리고 연구자의 업무가 동일 선상에서 해석되고 실행된다.

수직계열 구조에서 연구개발 과제가 어떻게 기획되는지 살펴보자. 정부부처에서는 제안요청서(RFP)를 내고 공모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공무원이 해당 분야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이 업무가 산하기관 담당자로 전가된다. 산하기관 담당자 또한 연구개발 수행의 아이디어가 없으니, 결국 RFP의 초안을 현장의 연구자로부터 제공받는다. 연구자에 의해 작성된 RFP의 초안은 산하기관 담당자에 의해 공무원이 납득할만한 형태로 가공되고, 정부는 이를 적절히 수정하여 공모 절차를 시작한다.

이러한 기획 과정은 많은 문제를 내포한다. 무엇보다 RFP의 제작 과정에 좋은 아이디어가 유입되기 어렵다. 탑에서 해야 할 일을 바텀에서 제공하다보니 바텀의 연구자로서는 굳이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생긴다. RFP의 제작 과정에서 은밀한 카르텔이 형성될 수 있다. RFP를 제공하는 연구자와 산하기관 담당자는 특정 연구자 또는 집단의 선정을 위해 RFP의 내용과 범위를 조정할 여지를 갖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역할과 책임이 '수직계열을 통해 공유'됨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시와 불신을 조장한다는 데 있다. 조직과 기관의 경계를 넘나들며 업무가 수행되면서 비효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감시가 심화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문화가 파생하는 것이다. 

◆ 과학기술 정책 거버넌스에서 분권구조와 주체별 역할&책임의 재정립

칸막이와 수직계열화의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손쉬운 해법은 유사한 기능을 가지는 조직들의 통폐합이다. 하지만 물리적 방법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이명박 정부 당시 산업기술 관련 산하기관 6곳의 통폐합을 단행 했으나, 수직계열화의 문제들을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과학기술 출연연구기관들의 경우 수직계열로부터 풀고자하는 움직임과 다시 묶고자 하는 움직임 사이에서 혼란을 겪어왔다.

본질적 해결책은 새로운 과학기술 분권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그것은 정부, 관리기구, 연구조직의 역할과 책임을 새롭게 정의하고 적용하는 일이다. 정부는 관료제의 강점인 수준 높은 방향설정 능력과 일사분란한 추진력, 문제해결사로서의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산하기관에 대해 지시와 관리를 잘하는 데서는 회복되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정부의 역할이 산하기관에 대한 지시자로 이해되며 정부=무능의 공식이 성립되었음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예산의 운영자로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산의 정당화, 전략적 방향 설정과 예산 배분, 의제의 형성과 제도화, 제도와 규제의 개선, 시스템 개혁의 업무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구개발 사업과 과제의 기획과 관리 기능을 산하기관 이하로 과감하게 분권해야 한다.

현재 부처별로 계열화된 산하기관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책임기관이자 중간기구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지시를 잘 이행하는 정도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많은 산하기관에 또 그 많은 석박사급 인력과 자원이 활용되는 것은 분명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이들 산하기관들은, 선진국의 유사한 기관들처럼 그랜트 또는 경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책임기관이 되어야 한다. 또한 산하기관들은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실력있는 연구자나 그룹을 참여시키는 헤드헌팅 역할, 때로는 산학연 협력을 이끌어낼 중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산하기관들은 연구개발 행위자들의 연구 이력을 추적하고 관리하며, 연구개발 분야의 지도(map)와 로드맵을 설계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듯 상부구조 상에서 정부와 중간기구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질 때, 연구개발 행위자의 역할과 책임 또한 분명해진다. 연구개발 행위자들의 핵심 관심사는 과제를 따기 위한 연구나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풀고자 하는 연구 의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가 전체 연구 지도 또는 밸류 체인 중 어디쯤에 위치하는지에 있어야 한다. 한때 유학했던 해외 지도교수의 연구를 보조하는 연구가 아닌, 한국에 연구의 전통을 뿌리내리게 하는 포부를 가진 그런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세금으로 연구하는 자의 역할과 책임의 본질이다.

과연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역사적 전환이 일어날 것인가? 일단은 희망을 가져보자. 2017년 5월에 출범할 새로운 정권이 과학기술 행정체계의 개편을 단순히 논공행상의 자리 나누기로 끝내지 않기를 기대한다.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시도조차 되지 않았던 모순의 실마리를 풀고,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의 궤적이 그려진 2017년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희망해 본다.

◆ 홍성주 박사는

홍성주 박사는 우리나라가 분명 경제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으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은 선진국만큼 자원을 투입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선진국처럼 합리화가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홍 박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개발 시스템과 과학기술 정책을 이해합니다.

이제까지 과학기술정책은 선진국에 있으나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그것의 한국적 적용을 추구해 왔습니다. 경제추격 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책 논리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 덕분에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개발 제도와 시스템은 선진국과 유사한 형태로 형성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적으로 독특한 복잡성과 비정합성의 문제들도 안고 있습니다. 홍 박사는  지면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제도와 시스템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홍성주 박사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의 이학박사(과학기술학)를 받았습니다. 2011년부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근무했으며, 국가혁신시스템, 혁신전망, 미래전략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 속에서 과학기술 제도와 시스템이 구축된 경로 의존성을 탐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 개척을 위한 시스템 전환 문제를 핵심 연구 아젠다로 삼는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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