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식주의자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채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채식을 하면 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아직도 내 몸이 고기를 잊지 못하고 있고, 내 생각대로 살기가 어려울 뿐이다. 어디 세상 일이 자기 생각대로 되는가!

하지만 내 주변에는 진짜 채식주의자들이 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존경한다. (하지만 성격은 채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물의 권리와 동물의 복지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채식의 수준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풀과 과일 그리고 곡물만 먹는데 어떤 사람들은 우유와 달걀 그리고 생선 정도는 먹는다.

달걀과 생선을 먹는 이유는 뭘까? 실천적 채식주의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걔네들은 고통을 모르잖아!" 그렇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그리고 독일에 유학할 때도 선생님들은 말씀하셨다. "물고기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이다.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통증을 느끼려면 의식적인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는지 확인하려면 일정한 고통을 가하고 그때 물고기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살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떤 부정적인 반응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단순한 반사반응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통증을 경험하려면 통각수용체에 입력된 정보가 두뇌 중추로 전달되어 아픔을 느껴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신피질(neocortex)이 있는 동물만 인간과 같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신피질이 있는 포유류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는 어떨까? 새는 포유류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결국 신피질이 있어야만 통증을 느낀다는 주장은 폐기되었다.

사실 이 주장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신경해부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물고기의 통증 인식 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지느러미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수영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궁금하면 해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은 물고기를 해부해 부상 초기의 예리한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A-델타 섬유와 부상 이후의 둔한 박동성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C-섬유를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물고기에서 C-섬유의 비율은 다른 척추동물보다 훨씬 낮았다. 이것은 부상 이후의 지속적인 통증을 덜 느낀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물고기의 얼굴을 찌르고 열을 가하고 식초를 뿌렸다. (쉽게 말하면 일부러 고통을 주었다.) 그러자 신경수용체들은 모든 자극에 반응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물고기가 통증을 인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순한 반사반응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송어들에게 전등불을 비추면 먹이가 달린 고리로 와서 먹이를 먹도록 훈련시켰다. 송어들이 훈련에 익숙해지자 진짜 실험이 시작되었다. 먹이를 먹으려고 다가오는 송어들에게 벌독이나 식초를 투여하거나 바늘로 찔렀다. 그러자 송어들은 전등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벌독과 식초에 당한 송어들은 고통을 해소하려는지 수조의 벽과 자갈에 주둥이를 문지르곤 했다. 그런데 벌독과 식초에 당한 송어들에게 진통제 모르핀을 투여하자 부정적인 반응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실험 결과는 물고기가 부정적인 자극에 단순히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인식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베스를 잡았다 놔줘도, 같은 날 또는 다음날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베스가 다시 잡힌다." 좋다. 물고기가 통증을 인식한다고 하자. 그러면 인자한 낚시꾼들의 이런 경험은 무엇인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손맛을 느끼려고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은 물고기를 다시 놔준다. 많은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미끼를 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물고기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신화는 끝났다.

물고기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에게 같은 미끼에 걸려서 고통을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물고기 기억력이 딱히 '3초'라는 게 아니라 극도로 약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오히려 매우 드문 사건이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갈고리에 한 번 걸린 후 6개월에서 3년 정도 미끼를 회피한다는 연구가 있다.

여기에 대해 물고기 학자들은 미끼를 금새 다시 무는 물고기는 극도로 굶주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몹시 굶주린 물고기는 설사 통증을 느끼더라도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이 불확실하면 먹는 게 최고다. 먹이를 보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다시 잡히는 물고기가 있다면 낚시를 그만두고 준비한 미끼를 뿌려줘야 한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인 내가 아직도 고기를 즐겨 먹는 것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조너선 밸컴, 에이도스)는 물고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책이다. 책을 읽고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 이정모 관장은

이정모 관장.
이정모 관장.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소개합니다. 전문적인 과학자와 과학에 흥미가 있는 시민 사이에 서 있는 거간꾼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시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과학은 쉽고 재미나요" 같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정말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과학은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쓸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글을 연재할 무렵에 일어나는 세상 일과 관련된 과학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이정모 관장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독일에 유학 했으나 박사는 아닙니다. 귀국후 과학저술가로 활동하면서 안양대학교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5월 13일 개관 예정인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같은 과학책을 썼으며 독일어와 영어로 된 과학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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