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간다 ②]권오석 생명연 연구원, 말라리아 진단키트 개발···민감도 100배 'up' 목표
'엑세스바이오' 주관 연구에 참여 "실패해도 경험 남는다···체외진단 시장에서 우리 경쟁력 키울 것"

과학기술의 미래는 젊음이다. 젊은 연구자와 벤처기업인들이 미래를 향해 힘차게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 과학공동체의 미래이자 국가의 미래다. 미래를 이끌 주역이자 열정 가득한 이들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대덕넷은 연구현장,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을 조명하며 이들의 꿈과 미래를 응원한다. 정유년 연중기획으로 '2030이 간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의 편지>

권 박사와 연구단에 주어진 미션은 보균자까지도 가려낼 수 있는 초정밀 말라리아 진단키트 개발이다. 현재 진단키트 보다 100배 민감한 진단키트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지만 권 박사는 "젊으니까 실패해도 괜찮지 않냐"며 웃어보였다. <사진=박은희 기자>
권 박사와 연구단에 주어진 미션은 보균자까지도 가려낼 수 있는 초정밀 말라리아 진단키트 개발이다. 현재 진단키트 보다 100배 민감한 진단키트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지만 권 박사는 "젊으니까 실패해도 괜찮지 않냐"며 웃어보였다. <사진=박은희 기자>
인류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불리는 '말라리아'. 전 세계적으로 약 33억명이 말라리아 위험에 노출돼 있고, 매년 100만명 이상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치사율도 높고 약에 내성을 가진 경우도 많다. 치료하려면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현재 진단키트는 기술적 한계로 말라리아 보균자까지 가려낼 수 없다. 말라리아 퇴치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다. 

말라리아 퇴치의 '핵심 키'가 될 초정밀 진단키트를 개발할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 겁없이 'YES'를 외친 37세의 젊은 과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권오석 한국생명과학연구원 위해요소감지BNT연구단 전임연구원. 

머리카락 크기의 1/1000의 나노물질을 연구하는 권 박사가 느닷없이 말라리아 퇴치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젊으니까 뭐든 못 하겠냐"는 '젊은 똘끼(?)'가 한 몫했다. 

미국 빌&멀린다 게이츠재단(일명 빌게이츠 재단)의 연구지원 기업인 '엑세스바이오(ACCESS)'와 바이오센서 개발을 위한 연구미팅을 하던 권 박사는 지난해 예상치 않게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연구미션은 말라리아 환자 뿐만 아니라 보균자까지도 가려낼 수 있는 초정밀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것. 현재 시판 중인 진단키트 보다 100배는 민감한 진단키트를 만들어 내야 하지만 젊기 때문에 도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권 박사는 어려운 과제임에도 고민없이 연구팀을 꾸렸다.  

"도전을 하겠다고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빌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게 된 국내 과학자라는 소식이 먼저 전해지며 적지 않은 오해가 생겼어요. 엑세스바이오가 추천했기에 빌 게이츠재단의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이번 연구는 생명연 위해요소감지BNT연구단이 중심입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슈가 돼 부담감은 크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 "해법은? 진단 키트에 사용된 금나노물질을 다른 물질로 대체" 

권 박사는 인터뷰 동안 '도전'이라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평소 연구하는 모습. <사진=박은희 기자>
권 박사는 인터뷰 동안 '도전'이라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평소 연구하는 모습. <사진=박은희 기자>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옮겨진다. 감염은 됐으나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보균자의 피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 말라리아에 감염되게 된다. 

말라리아 환자는 혈액에 항원 같은 표지 물질(병원군 존재 여부를 할 수 있는 물질)이 포함돼 있어 혈액 한 방울만 있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보균자의 표지 물질은 일반 환자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말라리아는 지금도 한 해 수 백 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말라리아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옮겨진 기생충에 의해서 생겨나는 특정 바이오 물질인 항원 검출을 통해 진단하게 되는데요. 기존 진단키트로는 보균자를 갈려낼 수 없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이번 연구의 핵심입니다."

빌 게이츠 재단은 오는 2020년까지 말라리아 완전 박멸을 목표로 수백명의 연구자들에게 2억 달러(약 2380억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빌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연구지원을 위탁받은 엑세스바이오는 향후 2년간 총 370만 달러(약 44억3000만원)을 지원한다. 

그 중 권 박사 연구단은 첫 해에 70만 달러(약 8억3300만원)를 다음해엔 80만 달러(약 9억5200만원)를 받는다. 총 150만 달러(약 17억8500원)를 지원 받는다. 다만 첫 해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야 다음해로 연구가 이어질 수 있다. 

권 박사가 구상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지금 사용 중인 진단 키트 내 금나노입자를 새로운 나노물질로 대체할 계획이다. 정확히 어떤 나노물질인지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해온 연구를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지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지난해 사람 코보다 정확하게 냄새를 맡는 '전자코' 개발에 중심 연구자로 활동했다. 후각은 수많은 신경세포에 의해 발생한 신경신호의 조합으로 이뤄져 그 메커니즘이 매우 복잡하다. 때문에 냄새 분자를 인지하는 기존의 바이오전자코는 균일한 크기와 모양을 갖는 나노어레이 트랜지스터 형성이 힘들어 여러 가지 냄새를 한 번에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권 박사는 단일 냄새 분자만을 인지하는 기존 시스템에 활용된 나노물질을 마이크로 패턴 단층 그래핀으로 대체했다. 이에 실제 사람 코와 흡사한 고(高) 감응성 다중 냄새 분자 인지용 바이오나노전자코를 개발하게 됐다. 

앞서 또 권 박사는 미국 공동연구진과 주사 한 방으로 체내 암세포를 종류에 따라 다른 색깔의 형광으로 24시간 내 진단할 수 있는 나노캡슐도 개발했다. 

당시 연구팀은 일반 형광과는 반대로 에너지가 낮은 긴 파장의 빛(빨간색 계열)을 받으면 에너지가 높은 짧은 파장의 빛(파란색 계열)을 내는 '상향변환' 유기형광 염료를 이용했다. 

상향변환 특성이 있는 두 개의 다른 유기형광 염료를 나노캡슐 안에 가두고 캡슐 표면에 질병 표지나 표적에 선별적으로 결합하는 두 종류 이상의 바이오탐침(항체, 펩티드 등)을 붙였다. 

권 박사는 "상향변환 나노캡슐은 다양한 에너지 상향변환용 유기형광 염료를 액상으로 실리카캡슐에 가둘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며 "선택적 암 다중진단 연구에 응용됐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전자코 개발에서는 그래핀을 이용했고, 암 진단에서는 나노 형광물질을 활용했다. 그동안 다양한 나노 물질을 개발했고 이번 연구 또한 기존 연구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며 "말라리아 진단키트는 처음이지만 이미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다"고 자부했다.  

◆ "피말리는 경쟁···특별한 이유 없다. 젊으니까 도전한다" 

 젊음을 무기로 무장한 권 박사의 포부는 크다. 진단기술은 말라리아는 물론 다른 질병에도 응용이 가능한 만큼 우리의 진단기술 개발로 체외 진단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사진=박은희 기자>
젊음을 무기로 무장한 권 박사의 포부는 크다. 진단기술은 말라리아는 물론 다른 질병에도 응용이 가능한 만큼 우리의 진단기술 개발로 체외 진단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사진=박은희 기자>
"말라리아 진단키트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 엑세스바이오입니다. 현재까진 값도 싸고 성능도 최고죠. 이번 연구는 최고를 넘어서는 결과를 내야 하는 도전입니다. 진짜 어려운 도전이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권 박사는 인터뷰 과정에서 '도전'라는 말을 수십 번 내뱉었다. 어려운 과제지만 풀어내야 하는 의무감을 지닌 것만 같다. 그가 우선해야 할 과제는 1년 내에 현재 진단키트보다 민감도가 10배 상승한 진단키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2년 안에 보균자를 찾아 낼 수 있는 진단키트를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연구비가 1년 단위로 지원되는 만큼 첫 해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연구비는 '제로(ZERO)'다. 

여기에 2주일 단위로 연구 진행 상황을 작성하고, 한 달에 한 번 보다 자세한 연구결과를 리포트로 작성해야 한다. 그는 "연구 미션도 어렵지만, 리포트를 이렇게 자주 쓰게 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존 연구와 병행하며 연구를 해야 하기에 정말 잘 시간도 부족하다.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 보낸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정해진 바 없다. 자정을 넘겨 2~3시에 연구실을 나서는 경우도 다반사다. 

권 박사가 이번 연구에서 정말로 얻고 싶은 성과는 진단키트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다. 전 세계 진단키트 글로벌 시장은 64조원에 이른다. 현재보다 100배 민감한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개발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권 박사는 "어마어마한 진단키트 시장을 두고도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없어서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힘들었다. 진단기술은 말라리아는 물론 다른 질병에도 응용이 가능하기에 우리 기술이 체외 진단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가 성공하면 엑세스바이로 기술이전 돼 진단키트가 세상에 나오게 되고 WTO 등 전 세계 국가에 납품돼 저소득 국가의 의료 혜택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은 무거운 짐이지만 꼭 성공하고 싶다. 실패해도 젊으니까 또 도전하면 된다"며 "그래도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으니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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