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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 과학관장 "멍때려라 그리고 질문하라"

[대덕넷 화학연 공동기획-과학계 리더에게 듣는다]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올해 5월 서울시립과학관 문 열어
"과학관 한가하면 어때...'진짜 과학 하는 과학관' 만들 것"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수년째 대중과 과학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수년째 대중과 과학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수염으로 덥수룩한 얼굴, 펭귄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입담과 글쓰기다. 재능을 살린 그는 수년째 대중과 과학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강연, 기고, 책, 박물관 큐레이터 등 그야말로 팔방미남이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는데 TV를 안 본다. TV를 보지 않으니 그 시간에 글쓰기나 공부 등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더라. 나이가 들어 잠이 없어져 가능한 일인 것 같다.(웃음)"
 
다방면에서 활약 중이지만 그의 본업은 과학관장이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서울시립과학관은 올해 5월 오픈을 앞두고 있어 신경 쓸 일이 많다. 몸 여러 개도 모자란 요즘, 바쁜 시간을 쪼개준 그를 과학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다양한 공룡모형과 책장을 가득 메운 책이 인상적인 곳에서 과학커뮤니케이터의 삶, 과학과 대중의 연결, 그리고 미래 우리나라 과학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 미션 1. 어머니께 과학을 이해시켜라
 

유년 시절 이정모 관장은 특별하게 과학에 관심 많은 학생은 아니었다. 과학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입시학원의 화학 강사 수업이 계기였다. 이후 교회에서 만난 대학생 형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한국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 '농학'이라 생각해 자연스럽게 농대입시를 준비했다.
 
할머니의 말씀을 따라 기독교 학교인 연세대에 입학을 하려했으나 연세대에는 농대가 없었다. 농대와 비슷해 보이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생화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생화학과는 연세대가 유일했는데 그는 생화학과가 꽃인 '生花'를 배우는 곳인 줄 알았다. 생화학과가 바이오케미스트리(biochemistry)인 '生化學'을 배우는 곳을 안 것은 입학 후 몇 주가 흐른 뒤였다.
 
그는 "전공과목이 재밌어 그만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제학, 철학과, 신학과 등 다른 과들을 염탐(?)하기도 했지만 과학이 즐거웠다. 과학자를 꿈꿨고 대학원에서 화학을 택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재능을 깨닫게 된 것은 어머니에게 학교에서 배웠던 수업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였다. 그는 "아들이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늘 궁금해하셨다. 하루에 배우는 양이 많았지만 설명해드리니 재밌게 들으시더라"라며 "과학을 전달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시립서울과학관은 올해 5월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진짜 과학을 하는 과학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진=김지영 기자>그가 수장으로 있는 시립서울과학관은 올해 5월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진짜 과학을 하는 과학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진=김지영 기자>
이후 야간학교에서 과학과목을 가르치며 자신감을 굳혀나갔다.
 
"야간학교에 다니는 분들이 먼저 포기하는 게 수학과 과학이다.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안에 과학을 가르칠까 고민도 준비도 많이 했다. 최대한 자연어로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어느 순간 그분들의 과학지식이 점점 늘더라."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에서도 그의 재능은 가감 없이 발휘됐다. 독일에서 경제와 과학 분야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기자에게 과학이슈와 현지 과학성과 등을 설명하면서였다. '과학기자를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일에 재미를 느꼈다.
 
글을 쓰기 시작해 책으로 엮어낸 것도 이즈음이다. 새천년을 맞이해 독일의 과학 잡지 게오(GEO)에서 '지난 1000년은 모두 며칠이었나'를 퀴즈로 냈다. 규칙만 알면 풀 수 있다고 자신감에 차 응모했는데 답이 틀렸다. 달력을 공부하면서 궁금증에 궁금증의 꼬리를 물어 정리한 글을 정리해 발간한 게 '달력과 권력'이란 책이다. 책도 곧잘 판매됐다. 그는 "과학을 대중에게 전하는 길이 내 길인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갈림길에 서는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 유학 중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다른 대학으로 옮겼는데 규정상 교수를 따라가지 않으면 학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박사 수료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작가로 변신했다.
 
◆ 미션 2. 대중의 과학 눈높이를 끌어올려라
 
"과학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런데 대부분 대중과학에서는 과학의 본질은 빼고 일화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래서는 대중의 과학수준을 높이기 어렵다. 무조건 쉬운 대중 강연보다 중간다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가로 변신한 그는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많이 썼다. 그중 2002년 출간한 '해리포터 사이언스'는 40쇄 이상을 찍었다. '꽃을 좋아하는 공룡이 있었을까?',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등 다양한 책을 저술하고 '인간 이력서', '매드 사이언스북', '제이크의 뼈 박물관' 등을 옮겼다. 그의 손을 거친 책만 수십여 권이다.
 
그의 집무실은 다양한 공룡모형과 책들로 둘러싸여 있다. 공룡모형은 틈틈이 모은 것들이라고. <사진=김지영 기자>그의 집무실은 다양한 공룡모형과 책들로 둘러싸여 있다. 공룡모형은 틈틈이 모은 것들이라고. <사진=김지영 기자>

그러나 고민도 많았다고. 과학 초심자를 위한 기본적인 책, 전공자들을 위한 어려운 책은 많아도 그 중간을 이어주는 콘텐츠가 부족해보였다. 딸이 과학 대중강연을 듣고 와서는 '과학이 너무 재밌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과학은 없고 일화 중심이었던 것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는 "좁은 주제로 깊이 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무조건 대중 눈높이에 맞춘 쉬운 책 보다 대중의 눈높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금 어려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직을 맡을 때 갖고 있던 운영철학이기도 했다. 이 관장은 "대중과 책으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밤부터 성인중심 강연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과의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과학교사, 편집자, 과학덕후(?)까지 과학관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강연이 끝나면 과학자와 청중은 함께 인근 호프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과학자들도 수준 높은 대중과 교감할 수 있다는 소식에 강연의뢰를 흔쾌히 수락했다. 수년간 해오며 거절한 사람은 딱 2명이다. 과학자들의 강연도 처음엔 대학강의 느낌으로 강단에 섰지만, 어느 순간 중간을 메워 줄 수 있는 강연이 돼갔다.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는 지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원하는 기관에 포맷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과학관에서 1박, 학교에 과학관 전체 대관 등 정형화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박물관 문 닫는 시간인 6시부터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이 있어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것은 과학관이었다"면서 "상호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잘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서로 윈윈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 미션 3. '실패' 당연한 문화 만들어라
 
5년간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수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3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왔다. 올해 5월 과학관 오픈을 앞둔 그는 '진짜 과학을 하는 과학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관장은 전시장마다 실험 장비를 가져다 놓을 계획이다. 최근 과학관마다 운영 중인 무한상상실과의 차이점은 3D프린터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관람객들이 망치, 톱, 드릴을 가지고 직접 손으로 익히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디지털화로 만들어보고 손으로 익히는 전시물이 적은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 관장의 의지가 담긴 부분이다.
 
서울시립과학관은 예비교사와 대학생 등 과학관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전시물에 들어갈 설명을 붙여놓은 이유도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사진=김지영 기자>서울시립과학관은 예비교사와 대학생 등 과학관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전시물에 들어갈 설명을 붙여놓은 이유도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사진=김지영 기자>

시민과 함께 만드는 과학관이라는 테마도 함께 가져간다. 예비 교사 대학생 등 과학관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오픈 전 부터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전시장마다 실험장비를 가져다놓고 관람객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이 관장은 관람객 100명 중 99명이 실패하는 실험을 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관람객이 만드는데 실패했다면 그의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과학관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들 참 대단하다며 놀란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할 거다. '난 저들처럼 될 수 없어'.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도 백번의 실패 속에 한 번의 성공을 얻었다는 것이다. 과학은 신나고 재밌기보다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지루한 작업을 한다. 우리는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성공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익숙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이 되길 희망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과학기술계다. 그는 처음가는 길에는 늘 실패가 뒤따르는 만큼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길 희망했다.
 
또 하나는 과학·기술·산업의 분리와 기술이 중시되는 삶이다.
 
그는 "과학은 과학이고 산업은 산업, 기술은 기술이다. 과학자들에게 상용화의 그림을 그리라는 것은 거짓말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술은 우리의 삶을 바꿔주지만 여전히 과학자는 우대하면서 기술자는 우대하지 않는다"라며 "과학사는 연구하면서 기술사는 연구하지 않는 게 단적인 예다. 이런 풍토가 바뀌어야한다. 과학관에서 망치질, 톱질 하면서 이런 부분이 조금씩 개선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10년간 유학하며 쉴 틈 없이 살았던 때 이 관장의 지도교수는 귀국을 앞둔 그에게 '너의 문제점은 너무 바쁘다'는 말을 남겼다. 바쁘게만 살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없다. 멍 때리고 비우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휴가만큼은 정글이나 사막 등 조용한 곳으로 떠난다.
 
과학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한가했으면 좋겠다는 이정모 관장. 그는 "과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이 멈추면 과학도 끝이다.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과학관에 관람객과 과학자가 함께 돌아다니면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이 멈추면 과학도 끝이다.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과학관이 됐으면 좋겠다."<사진=김지영 기자>"과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이 멈추면 과학도 끝이다.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과학관이 됐으면 좋겠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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