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저: 이타이 야나이·마틴 럴처, 역은이: 이유
출판사: 을유문화사, 원서: The Society of Genes

리처드 도킨스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
조직적인 협동과 희생, 반전의 배신과 경쟁이 난무하는
유전자 사회 속 유전자들의 비밀

◆ "투표권, 아무에게나 막 줘도 되겠습니까?"

공저: 이타이 야나이·마틴 럴처, 역은이: 이유, 출판사: 을유문화사, 원서: The Society of Genes.<사진=Yes24 제공>
공저: 이타이 야나이·마틴 럴처, 역은이: 이유, 출판사: 을유문화사, 원서: The Society of Genes.<사진=Yes24 제공>
어떤 사회가 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은 대중이 부도덕하고 무능한 대표자를 뽑아 사회 전반이 흔들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최악의 결과가 나올 위험은 없어질 것이 아닌가. 모두가 좋은 방법이라 손바닥을 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우월한지 아닌지를 무슨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그 판단은 '누가' 내릴 것인가?

모든 사람이 납득할 만한 판단 기준과 판사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어찌어찌 기준을 정했다고 치자. 누군가 조직적으로 자기들이 도덕적인 양 사기를 칠 위험은 없을까?

우리 인간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만나 자식을 낳을 때, 남성과 여성 속의 유전자들이 자식에게 어떤 유전자를 물려줄 것인지를 두고 실제로 부딪힌 문제다.

인간의 몸을 타고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 전해져 끝까지 생존하는 것이 지상목표인 유전자들에게, 부모 유전자의 절반씩밖에 물려줄 수 없는 인간의 번식 시스템은 너무도 가혹하다. 한 세대에서 끝날지, 아니면 자식에게로 내려가서 뒷날을 계속 도모할 수 있을지, 그 확률은 정확히 반반이다.

모두가 원하는 자리를 놓고, 유전자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 절반의 유전자만 선별해서 자식에게 내려 보내는가.

부모는 누구나 자식이 자신의 '좋은 점'만 물려받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사회에서 부모의 좋은 유전자만 엄선해서 자식에게로 가는 티켓을 끊어 주면 좋으련만, 바로 여기에서 유전자 사회는 위의 문제를 맞닥뜨린 것이다.

어떤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인가? 아버지의 유전자 사회에서는 좋은 유전자였던 것이, 어머니의 유전자 사회에서 온 낯선 유전자들과 섞이는 순간 궁합이 맞지 않아 엉뚱하게 바뀔 수도 있다.

부모가 살아 온 환경과 자식이 살아 갈 환경이 달라서 서로 필요한 유전자가 다를 수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좋은 것'의 기준을 정하기도 어려운데 이 판결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유전자 사회는 모든 것을 운(다른 말로 하면 우연)에 맡겨 버렸다. 하자가 있든 능력이 뛰어나든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티켓을 한 장씩 준 것이다. 당첨 확률은 반반, 인간은 유전자 사회의 이 위험한 도박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전자 사회는 번식할 때마다 전체 유전자의 절반을 버려야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그만한 대가에는 그것을 뛰어넘는 이득이 있는 법. 언뜻 어리석어 보이나 실상은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유전자 사회의 운영 방식이 이 책에 있다.

◆ "당신은 우유를 소화할 수 있습니까?"

유전자 중에는 우유에 들어 있는 젖당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유를 소화할 수 있고 이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고 이제 유전자 사회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기본적으로 인간 몸속의 유전자 사회는 아기가 젖을 뗀 것을 확인하고 나면 관리자가 나서서 젖당을 분해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꺼 버리게 되어 있다. 필요 없어진 기능의 활성화를 차단해 몸의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성인이라면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인류의 90퍼센트가 우유를 소화할 수 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유전자 사회가 스위치를 꺼 버렸던 유전자를 젖을 뗀 지 한참 뒤에 다시 켜서 활성화시키게 된 사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그 이유로 인류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전까지는 성인에게 전혀 필요 없었던 기능이 가축을 길러 젖을 짜기 시작한 상황과 맞물리며 쓸모 있어지자 유전자 사회가 그에 대응해 젖당 분해 유전자의 스위치를 껐다가 중간에 다시 켜는 것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10퍼센트의 인류는? 무언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유전자 사회가 유행에 느린 것일 뿐이다.

우리가 유전자에 대해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 유전자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유전자, 가만히 있다가 동료 유전자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유전자, 사고를 치되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치는 유전자, 관리자 밑에서 열심히 일만 하는 유전자,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나 결국 운명 공동체로 동고동락하는 유전자 등, 유전자 사회 속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이다' 혹은 '아니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우리 인간과 너무도 닮은 유전자들이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을 때로 우리 인간 사회보다 더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제어하며 생명체들을 만들고 운영해 나가는 유전자 사회를 볼 때,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와 인간다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핵심을 깊이 파고드는 개념이면서도 사회학, 인류학, 인문학과도 연결되어 있는 '유전자 사회'의 발견.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완전히 낯설거나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혁명적'인 과학서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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