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KAIST 학생···1년간 6대륙 20개국 90개 도시 탐방
탄자니아서 강도 만나 위기 처하기도···학우들과 공유 위해 스스로 오는 30일 토크콘서트 개최

필리어스 포그는 그가 속한 클럽의 회원들과 80일 안에 세계일주 가능 여부를 놓고 전 재산을 건 내기를 하게 된다. 그의 여정은 유럽, 아시아, 태평양, 대서양을 넘나든다. 동인도에서공주를 구출하고, 미국 서부에서는 인디언에게 잡히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뒤쫓는 탐정을 따돌리며 세계일주에 성공했지만 예정된 기한보다 하루가 지나 영국에 도착한다. 다행히 지구 반대편의 시차로 인한 착오임이 밝혀지고 그는 내기에서 이긴다.
-쥘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 줄거리 中- 

또래들은 이미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진학하거나, 대기업 등에 취업한지 오래다. 남들보다 대학교 입학도 1년 늦었는데 여행까지 다녀오자 차이가 더 벌어졌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못했던 '세계일주'로 다양한 인생 공부를 하고 왔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졸업해서 바로 취업할 생각도 사라졌다. 다녀온 여행기를 정리하고 주변인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최근 학교를 휴학하고 1년간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 온 박성호 KAIST 산업디자인학과 학생의 얘기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인 그는 주변 학우로부터 '개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1998년 드림웍스가 만든 첫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개미'의 주인공 캐릭터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마련한 토크콘서트 제목도 'KAIST 개미의 세계일주'다.

그는 최근 1년 동안 전세계 6대륙 20개국 90여개 도시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여행 과정과 느낀점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렵게 학내 대강당을 빌려 토크콘서트를 마련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궁금했어요. 많은 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자신의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독하게 여행자금 모아···"물질 여유 없어도 행복했죠"

"공군 제대 후 복학해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학과 1등을 차지했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공부말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성호 학생은 공군 정훈병으로 복무활동을 마쳤다. 계룡대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했던 경험은 행사 기획 등을 배우고,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복학 후 성적이 아무리 올라도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룸메이트와 함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된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친구 등이 말렸지만 그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집에서 비행기 값 80여만원과 여비 50만원을 들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그 후 세계여행까지 집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다. 집에 의존하면 여행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생각에서다.   

박성호 KAIST 학생.<사진=강민구 기자>
박성호 KAIST 학생.<사진=강민구 기자>
일본 등 각 국가 식당에서 설거지 등도 하고, 요거트 판매원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던 중 그는 뉴질랜드로 10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뉴질랜드 남부 섬의 대자연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새로운 탐험을 꿈꾸게 됐다. 도심에서 아르바이트만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남아있기를 원한 룸메이트와 헤어져 그는 호주 시골의 바나나 농장으로 홀연히 떠났다. 앞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영국인 친구가 바나나공장 만큼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오히려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그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주에서도 외지 중 외지였다. 마을에는 몇 백명이 사는 곳인데 숙소는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소문한 끝에 마을에서 기찻길을 따라 20분 걸어 나오는 숲속 캠핑장의 컨테이너 박스를 숙소로 구했다.

하루에 15달러(1만2000원) 수준의 방값 정도면 묵을 수 있었지만 안에는 찜질방 수준으로 더웠고, 바닥에는 벌레가 가득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됐다. 고심끝에 그는 한 번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호주의 물가를 감안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다. 주인에게 요청해 매트리스를 구했다.

집을 구하자 이제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종이에 나이, 신체조건, 하드워커라고 특이사항을 적고 마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아침에 마을을 들려 바나나 농장으로 출발하는 버스운전기사에게 요청해 농장주에게 전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1달러 참치캔을 먹으면서 버텼지만 1주일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다행히도 여유자금이 고갈나기 전 바나나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트럭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 바나나 농장에서 포장부터 상자 쌓기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처음에는 농장일이 얼마나 힘들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40kg가 넘는 바나나 2포대를 어깨에 얹자 바로 무릎을 꿇을 정도로 버거웠다. 

그는 바나나공장 일을 하면서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인부들을 픽업하는 트럭 기사 역할도 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보니 6달러 수준이었다. 물값 1달러, 장갑 1달러를 재외하면 식재료로 하루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4달러에 불과했다.

퇴근하면 집에서 요리를 하고, 세계일주 계획을 짜는 것이 일상이었다. 파스타와 소금, 후추 등을 뿌려 반은 먹고 나머지는 도시락으로 만들어 먹었다. 도시락으로 먹는 파스타는 굳어서 떡과 같을 정도였다. 3개월 동안 동일한 식사만 계속하면서 독하게 돈을 모았다. 캠핑장 사람들에게 구두쇠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같이 놀고 싶었지만 3달러가 넘는 맥주 등을 마시면서 여행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주변인들도 그의 목표를 이해해 줬다. 

물질적인 것이 안 좋더라도 세계일주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채 3개월이 흘렀다. 혼자서 밤에 별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인터넷이 필요할 때는 도서관에 가서 세계지도를 샀다. 매직으로 가고 싶은 국가들을 찍고 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그리고 기다리던 일을 마치고 세계일주를 떠나게 된다.

박 학생은 "3개월 동안 먹는 것과 사는 것이 비참했어도 이내 적응이 되었으며, 오히려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했다"면서 "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기념으로 샌드위치 전문점에 가서 먹는데 눈물이 나왔다"고 소회를 털어 놓았다. 

◆ "세렝게티 초원이 눈 앞에 펼쳐졌죠"···강도 만나 위험 처하기도

"주변에서 세렝게티 초원에 다녀온 사람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막상 가보니 사자, 치타, 코뿔소 등 그동안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죠. 너무 행복한데 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가 여행한 곳은 호주, 싱가포르, 인도, 태국, 카타르, 탄자니아, 페루, 아르헨티나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경험을 한 곳으로는 탄자니아가 꼽힌다.

중동에서 케냐, 우간다 등을 거쳐 탄자니아로 이동했다. 아프리카에 숙소가 별도로 없어 침낭을 가져가 일주일 가량 노숙도 하고, 바닷가에 정박한 배의 선장에게 요청해 잠을 청하기도 했다.

탄자니아 항구마을에 도착한 그는 이동중에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뉴질랜드 친구와 함께 이동하는데 택시가 이상한 길로 가기 시작했다. 점점 인적이 뜸한 곳이었다. 이상징후를 느꼈지만 막상 고민만 하고 행동은 하지 못했다.

소리를 질러도 택시기사가 말없이 운전하자 때마침 길을 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행인들이 택시에 타더니 칼을 꺼내며 위협했다. 결국 모두 털렸다. 불행중 다행으로 여권, 카메라 등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다행이었다. ATM도 일일한도가 정해져 있어 피해가 최소화됐다. 많은 것을 빼앗겨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할 정도가 됐다. 가족들에게 도움은 커녕 걱정할까봐 말할 수도 없었다. 바닥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자리를 털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항구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15시간 달려 세렝게티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 머물면서 구한 가이드, 요리사 등과 함께 4일 동안 1000km를 이동하면서 초원을 여행했다.

"밤에 텐트에서 자고 있으면 동물 울음 소리가 들렸죠. 너무 좋았습니다."

록밴드 '퀸'의 프레디머큐리의 출생지로 유명한 잔지바르섬은 그가 꼽은 최고 명소다. 여행 당시 기상악화로 모든 배가 취소되자 인근의 경비행장을 통해 이동하게 됐다. 경비행기에 손님으로는 유일하게 탑승했다. 섬에서 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국하자 다시 예전 일상으로 돌아왔다. 허무감이 밀려왔고 졸업예정자로서 진로 고민도 밀려왔다. 한동안 두문불출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여행기를 담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경험을 하고 왔는데 이대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쉬웠다. 경험담을 잊어버리기 전에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토크콘서트를 개최하게 됐다.

KAIST 학부생이 대규모 강의실에서 강연해 본 사례가 없다는 이유에 모두 난색을 표했다. 결국 주최, 주관 등 후원없이 이번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 안내 포스터와 팸플릿 제작은 모두 사비로 제작됐다. 모든 준비는 스스로 했으며,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다행히 한 교수의 도움으로 장소를 어렵게 구했다. 개인적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와줄까 하는 걱정도 하고 있다.

박 학생은 "학부생 입장에서 다른 학생들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이러한 경우는 거의 못봤다"면서 "기업 대표, 연구자 등이 와서 강연하면 얻는 것은 많지만 공감은 잘 안되는데 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과학 전하는 커뮤니케이터 꿈꿔"

그가 여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여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가치로 '인간'을 꼽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박 학생은 "아시다시피 제가 입학한 이래 많은 KAIST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례를 봤다"면서 "학생과 학교의 교류와 소통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서로의 고충을 듣고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박 학생과 같은 사례는 KAIST에서 이례적이다. 과학고, KAIST를 거친 대부분 학생들의 목적은 최대한 빨리 학부를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졸업해 취업하거나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교과과정에 쫓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외부활동을 할 기회도 많지 않다. 휴학하는 것 자체도 특이하게 보는 것이 현실이다. 학업 스트레스는 실험실까지 이어져 폐쇄적인 문화가 이어진다.

박 학생은 "학생들이 서로의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면서도 "KAIST 학생들은 공부는 잘하는데 사회성이 없다는 편견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의 중요성과 개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동일한 일상을 계속 반복하면 '병 속에 들어 있는 귀뚜라미'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만큼만 뛸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경험해 보니 물질적인 것은 행복과 연관이 없으며, 생각과 목표가 있다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그의 꿈은 정재승 KAIST 교수와 같이 외부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활동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하는 것.

그는 "KAIST에서 그동안 배운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어 과학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개인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있는데 이를 서로 전파해서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졸업작품 전시회를 마무리한 그는 졸업 이후 여행기를 정리해 책으로도 출판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또한, 생각을 더하면서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할 예정이다.  

"학교 밖을 벗어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여행이 갖는 의미죠. 해외는 또 나가고 싶어요. 아직 못 가본 나라가 너무 많죠. 당장 대학원을 가거나 취직을 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조금 늦는다고 뒤쳐지지는 않는 것이니까요."

박성호 학생은 오는 30일 오후 7시 30분 KAIST 창의관(E11) 1층 터만홀에서 'KAIST 개미의 세계일주'를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행사 관련 문의는 박성호 학생(kwa0103@kaist.ac.kr, 010-3311-9402)에게 하면 된다.

남미 페루의 한 사막.<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남미 페루의 한 사막.<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세렝게티 초원에서의 텐트 생활.<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세렝게티 초원에서의 텐트 생활.<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여행 중에 본 아름다운 별자리 풍경.<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여행 중에 본 아름다운 별자리 풍경.<사진=박성호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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