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밖' 연구로 생각했던 극한···지진, 신약 개발 등 인류지속에 매우 밀접
이근우·이수형 표준연 박사와 이효철 KAIST 교수 '극한'으로 소통

2057년 지구는 서서히 식어가는 태양으로 인해 빙하기가 찾아온다. 불길이 꺼져가는 태양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 8명의 우주선원은 핵폭탄을 실은 이카루스 2호와 함께 태양으로 날아간다. 태양의 표면 온도는 6000도, 초고압 플라즈마 온도는 1억 5000도. 과연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 이 온도를 버티고 태양 표면에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할까? -영화 선샤인 中

우주라는 공간 '극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래서 인간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극한'의 상태. 지구에서는 극한 환경을 경험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일까. 일반인들은 극한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종종 묻는다고 한다.

"극한을 왜 연구하는 거죠?"

해답을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창의융합 연구센터에 '극한'을 연구하는 과학자 3인이 모였다. 이근우·이수형 표준연 창의융합연구센터 박사와 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 는 '극한연구'를 주제로 소통했다.

◆ 극한연구는 우주에만? "NO! 지진, 에너지 자원, 신약개발 등 우리 삶과 상호작용"

(왼쪽부터) 이근우 박사, 이효철 교수, 이수형 박사.<사진=조은정 기자>
(왼쪽부터) 이근우 박사, 이효철 교수, 이수형 박사.<사진=조은정 기자>
이근우 박사는 극한연구에 대한 일반인들의 동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영화 선샤인을 항상 예로 든다. 이 박사는 "극단적이지만, 극한 환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선샤인"이라고 꼽았다.

이근우 박사는 "새로운 자원 확보를 위해 인간은 지구 밖 우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지구 밖 극한환경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어, 늘 대비해야 한다"며, "만약, 영화에서처럼 태양 표면에 도달해 핵폭탄을 태양에 떨어뜨리기 위해선, 6000 K 이상 되는 초고온을 버틸 수 있는 물질테스트가 사전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인간이 태양 가까이 가게 된다면, 어느 정도 고온까지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물성 테스트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실제 태양 표면에서 실험할 수도 없다. 최대한 우주와 비슷한 극한환경을 구현해 물질 변화를 측정하는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게 이 박사의 설명이다.

극한연구가 지구 밖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아직도 그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는, 지진 역시 극한연구에 해당한다.

이수형 박사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지진이 발생 한 것과 같은 고압 환경을 구현해 지진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떤 형태로 지진이 발생하는지 등 그 과정을 분석할 수 있다"며 "극한연구는 사실 우리 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소 역시 미래 에너지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소는 기체로 존재하므로 부피가 커서, 압축하여 액화시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 해도 보관이 녹록치 않다.

이근우 박사는 "지구보다 중력이 큰 우주 행성들에는 고체와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 에너지원들이 있다"며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에너지원들이 주먹만 한 고체 상태로 보관해 휴대할 수 있다면 그 활용도가 얼마나 크겠느냐"며 반문했다.

이어 "실제로 목성, 토성 등 행성 내부에는 초고압환경이어서 수소가 고체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며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서, 극한환경 연구는 해볼 만 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초고압·초고온 연구가 극한환경을 연구하는 방법이라면, 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초미세·초고속 연구는 극한환경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연구다.

이효철 교수는 시간분해회절법과 시간분해분광법을 이용해, 물질 현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이효철 교수가 부연구단장으로 있는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은 세계 최초로 원자들이 만나 분자를 이루는 화학결합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해 '네이처' 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효철 교수는 "극한환경에서 물질 형성 메커니즘은 분자나 원자 크기의 수준인 0.1 nm(나노미터) 크기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현미경으로도 절대 볼 수 없다"며 "마치 눈금 1 cm인 자로 0.001 mm의 진드기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극한환경에서의 물질 형성 과정은 어떻게 관찰할 수 있을까? 이효철 교수는 "원자와 원자 사이의 거리를 가시광선으로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라며, "미세한 원자 단위를 보기 위해 파장이 0.1 nm 정도로 짧은 엑스선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엑스선은 물질에 입사시킬 때 각각의 원자로부터 산란되고 이 산란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특정한 패턴이 나오는데, 이를 엑스선 회절이라고 한다. 엑스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알 수 있는 것. 이 교수는 "분자의 움직임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찍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고 덧붙였다.

◆ "당장 돈 버는 연구 아닌, 인류 지속 위해 계속 도전해야 하는 연구"

극한환경 연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과학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사진=조은정 기자>
극한환경 연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과학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사진=조은정 기자>

과학자 3인은 "극한환경, 극한과학, 극한기술 등 극한환경 연구는 우리 인류에 직면한 연구"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극한환경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어려움도 전했다.

이효철 교수는 "언제부턴가 주제지향적 연구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연구자들에게 원하는 것도 연구 자체보다는 그 연구에서 파생될 파급효과"라며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당장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마치 대학입시준비생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교수는 "극한연구가 몰라도 되는 분야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과학 특성 상 인간의 기본적인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이수형 박사 역시 "당장 자원, 신약 등 인류에 직면한 문제들이 많다. 우리는 극한환경 기술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 물질 현상을 이해하고 원리를 규명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이윤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근우 박사는 "NASA가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고, 엘론 머스크가 우주 여행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NASA에서 공중부양 연구를 진행했던 2000년도에 접했다. 외국은 과거부터 극한환경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극한환경 연구도 수준급이다. 이근우 박사는 "지속적인 지원으로 '지진연구' 하면 '일본'을 떠올리게 됐다. 외국에 비하면 아직 극한환경 연구가 우리나라에선 활성화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극한환경 연구는 시작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과학자 3人의 표정은 밝았다. 이근우 박사의 "극한환경 연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과학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말처럼, 극한환경은 그만큼 그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창의적인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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