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창조성의 문화, 개인인가? 공동체인가?

출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11월 호'
글: 조숙경 국립광주과학관 전시연구본부장
글: 조숙경 국립광주과학관 전시연구본부장.<사진=과총 제공>글: 조숙경 국립광주과학관 전시연구본부장.<사진=과총 제공>
광주를 포함한 전라도 지방에 내려와 살면서 우리나라가 정말로 지방자치단체의 나라임을 실감케 하는 것이 바로 축제다.

봄도 그렇지만 겨울로 건너가는 가을의 남도는 햇빛과 풍광의 아름다움은 물론 이름만 들어도 사람을 설레게 하는 각종 축제로 즐겁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명랑 축제뿐만 아니라 불갑산의 상사화 축제, 백양사의 단풍 축제, 장흥의 억새풀 축제, 정읍의 구절초 축제 그리고 강진의 황금들 메뚜기 축제까지.

자연의 변화와 역사적 전통 그리고 풍부한 먹거리를 주제로한 축제에서 전국의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웃음을 나누며 인생을 노래한다.

◆ 한국,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

해마다 10월이 되면 지구 반대편 북구의 한 도시인 스톡홀름에서도 전 세계인들이 서로 모여 칭송하고 즐기며 격려하는 대규모 축제가 열린다. 인류 최고의 창의성으로 상징되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을 축하하는 노벨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순차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됐으며, 일본은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수상하면서 다시금 세계 과학강국임을 보여주었다.

모두 25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22명이 과학 분야인 일본은 2000년 이후만 놓고 보면 명실 공히 미국에 이어 세계 과학 2위다. 때마침 개최되었던 제 20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 위원회의 첫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시대적 고민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각종 언론에서는 일본의 힘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가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준비해야 할지를 두고 다양한 분석과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이 지난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의 코멘트다. 여기서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임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명도 배출되지 않은 원인을 "한국에서는 과학 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닫기보다 돈으로 승부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국내 주요 일간지는 우리에게는 과학 기술의 거시적 흐름에 대한 통찰력, 젊은 인재를 가려내는 안목, 연구비를 공정하게 관리할 신망을 갖춘 과학 리더십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이 기초과학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지원과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자기만의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오늘날의 일본을 기초과학 강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도 분석했다.

◆ 노벨상과 공동체 역량의 중요성

노벨과학상을 바라는 마음이 큰 만큼 그에 대한 분석과 제언도 다양하고 또 다채로운 정책들도 제시되지만,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세계 전시회만큼 직접적이고도 장기적인 답을 제시해주는 것도 없을 듯하다.

2001년 노벨재단은 지난 100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들이 보여준 창의성을 분석한 결과 "창조성의 문화, 개인인가? 공동체인가?"를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기획했고, 우리나라에도 2003년 이 전시회가 소공동 삼성건물에서 개최되었다.

과학적 창의성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타고난 청재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성장시킨 공동체의 역량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과학자들이 속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던 이 전시회는 우리나라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 사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데이터들이 많다. 특히 수상자들 중에는 스승과 제자 관계가 많으며, 부모와 자식이 수상한 경우도 종종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아무래도 4명의 수상자가 모두 혈연이자 결혼으로 엮여서 모두 5차례나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일 것이다.

1903년 폴란드 태생의 마리 퀴리(Marie Curie)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는 방사능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남편 피에르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도 연구에 매진했던 퀴리는 그로부터 8년 후에 앞서서 발견한 라듐(radium)과 폴로늄(polonium)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35년에는 그들의 딸과 사위인 이렌느 졸리오 퀴리(Irene Joliot Curie)와 프레데릭 졸리오(Frederic Joliot)가 새로운 방사능 원소의 합성에 관한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함으로써 이들은 모두 5개의 노벨과학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나아가 퀴리의 둘째 딸인 이브 퀴리는 남편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와 함께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 해서 퀴리 가문은 사실 모두 다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개인으로 태어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가장 작게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하고 태어난 마을이라는 공동체에 속하다가 일정 나이가 되면 학교라는 공동체 그리고 대부분의 일터가 모여 있는 도시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평생을 지내게 된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는 가장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며, 각 급 학교가 그러하고 또 크고 작은 도시가 그러하다. 20세기 현대 물리학을 창시했던 닐스보어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집으로 독일의 인문학자, 철학자들을 초청하여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성장했던 경험이 자신으로 하여금 아인슈타인과 반대되게 양자물리학의 코펜하겐 해석의 길을 열었다고 술회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적 아톰이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소년이 성장하여 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대구 근처에는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아예 이름이 박사마을인 곳이 있다.

◆ 공동체의 창조적 역량 키워야

우리들 각자는 개인이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각각의 단위에서 그러한 영향들이 모인 총체는 곧 공동체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공동체의 창조적 역량은 창조적 역량을 가진 소수에 의해서만 키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부터 먼저 공동체의 역량 키우기에 나서야 하고, 공유된 방향성을 향해 하나 둘 참여하고 실천하다보면 공동체의 역량은 놀라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71세)의 말은 의미가 매우 깊다.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야에 집중해 50년 가까이 연구한 결과로 수상 쾌거를 이룬 그가 노벨상 상금 800만 크로나(약 11억원)를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일본 사회에 프라이드를 가져다주었을 그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얼마나 신선하고 멋진 일인가! 공동체를 위해 내가 먼저 나서는 그의 용기가 노벨과학상 수상보다 더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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