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下]특구 구성원들, '현장파' 인사 선임 주문
'기술사업화 생태계' 위한 연구소-기업 '가교' 돼야

"대덕특구의 미션과 임무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와야 한다. 낙하산 인사는 다음 자리를 위한 정치에만 관심 있다. 특구는 정부와 출연연, 기업을 잇는 '다리'와 같다. 중간자적 역할을 위해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사장된 기술을 끄집어 내 사업화 하도록 도와주려면 발로 뛰어야 한다. 연구 현장을 다니고 과학자를 만나야 한다. 기술사업화를 아는 사람이 오길 바란다."

"대덕특구를 이해하는 경력, 능력,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임기 후에도 지역 내에 거주하며 끝까지 특구 발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하 특구진흥재단) 신임 이사장은 '현장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본지가 최근 실시한 특구진흥재단 5대 이사장의 역할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설문 참여자 100여명 중 상당수가 설립 10년을 넘은 특구진흥재단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재정립을 강조하며 후임 이사장에 대해서는 '현장을 아는 인물'이 선임되길 주문했다.  

특구진흥재단 본연의 업무인 기술사업화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강조됐다. 

특히 초대 박인철 이사장부터 현 김차동 이사장까지 4대 모두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관료 출신이 임명되면서 현장과의 친밀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관료 출신 수장으로 예산 확보 등 이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 대한 소통과 그에 기반한 리더십 발휘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사실 현장과의 소통부재는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소통부재가 대덕특구의 위상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특구진흥재단의 존재 필요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앞으로 제대로 된 행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설문 응답자 다수는 "특구진흥재단은 기술사업화를 통해 산업을 키우는 것이 임무다. 기술사업화를 말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며 "이사장은 기술사업화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현장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수장 뽑아야"···특구진흥재단 역할 재정립 필요성 부각  

"특구진흥재단은 연구소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기술이전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현장 기술을 사업으로 만들어내도록 지원하는 게 특구진흥재단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보면 특구진흥재단이 본래 역할을 헷갈려하는 것 같다." 

설문 참여자들은 차기 수장에 적합한 인물 요건과 핵심 역할로 '기술사업화 생태계 활성화'를 강조했다. '기술사업화'와 관련해 개별성과 위주의 정책이 아닌 생태계 조성 차원의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구진흥재단이 '보여주기식' 성과를 위한 전략과 비전을 탈피해 지속가능한 기술사업화 경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학 소속 한 교수는 "대덕을 놓고 창조경제 전진기지란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창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우수인재들이 몰릴 수 있다. 특구진흥재단이 해줘야 할 일"이라고 피력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특구진흥재단이 생긴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며 "보여주기 위한 성과가 아닌 특구재단이 존재해야 함을 피력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구진흥재단을 통해 대덕의 인프라가 제대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과학과 창업을  연계하는 창업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기업 소속 한 관계자는 "퇴직한 과학기술인 등 우수 인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활용해 스타트업 등에 기술이전이나 멘토역할을 고취시킬 만한 지원책이 없는 실정"이라면서 "창업 강의나 실전 프로그램, 경진대회 같은 창업 인프라뿐만 아니라 과학동네의 기본적인 창업가정신을 확립시키는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연구단지 또 하나의 섬 '특구진흥재단'···"연구현장 알아야" 

특구진흥재단 외관. <사진=대덕넷 DB>
특구진흥재단 외관. <사진=대덕넷 DB>
특구진흥재단 이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9일 신임 이사장 초빙 공고를 내고 오는 24일까지 후보자를 신청 받는다. 현 이사장 임기가 내달 5일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다소 촉박한 일정이다. 차기 이사장 공모가 본격화되면서 대덕특구 안팎에서도 후임에 대한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출연연 A 박사는 "그동안 외부에서 행정 관료 출신이 오다보니 현장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이제는 현장을 이해하는 인사가 선임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시 등이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면서 대덕특구만의 차별화와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면서 "대덕연구단지 초기 설립을 상기하고 국가연구단지로서 지역과의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책학 B 교수는 "대덕연구단지 출범 초기에 비해 연구원들의 연구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며, 연구의 질까지 하락하고 있다"면서 "연구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 연구 자율성 확대 등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고민들을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대 공과대 C 교수는 "특구 뿐만 아니라 대전시와 상생하는 것이 필요하며, 연구소 창업 등은 산업부, TP,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본다"면서 "매년 시행되는 과제 평가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특구와 지역,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장에서는 그동안 관료 출신 이사장 선임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학계 한 인사는 "1~3대 이사장은 예산관련, 4대는 과학기술부처 관련으로 모두 정부 관료가 이사장을 했다. 정부 관료 출신이라 관리, 행정, 업무 협조는 잘 되지만 특구진흥재단 본연의 업무엔 부족함이 있다"며 "특구진흥재단의 역할은 연구단지에서 나온 성과를 사업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단지와 교감을 잘 해야 하며, 기술사업화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 교수도 "특구진흥재단은 산·학·연·관을 전체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인데 현재 특구진흥재단은 자기 사업에만 바쁘다"면서 "소통엔 관심 없고 지원금 나눠주는 재미로 폼만 잡고 있다. 특구진흥재단은 연구단지 내에서 또 하나의 섬"이라고 꼬집었다. 

대덕특구 한 종사자는 "특구진흥재단 관리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됐다. 과학벨트와 대덕특구 업무의 연계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낙하산'이 아닌 특구진흥재단 본연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실무형' 인물이 수장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특구진흥재단의 설립된 의미를 되새기고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이공계 대학 K 교수는 "새로운 이사장은 특구진흥재단 출범의미, 본질부터 제대로 아는 인물이 와야 한다"고 밝혔다. 

한 원로 과학자는 "특구진흥재단은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대덕특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이사장으로 선임돼야 한다"며 "연구도시를 넘어 경제도시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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