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20일 이광훈 작가 연사 인문학 특강 개최
"로저스 제독 함대와 초량왜관, 조선이 놓친 기회"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걸 것인가?"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의 저자 이광훈 작가는 이같은 화두를 던지며 선택의 기로에 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선비는 상투를 잡았고, 사무라이는 상투를 잘랐다. 그리고 그로 인해 조선과 일본의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는 20일 본원에서 이광훈 작가를 초청해 '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운명'을 주제로 10월 인문학 특강을 개최했다.

이광훈 작가는 근대화를 맞기 시작한 시기의 양나라간의 연표를 통해 상반된 선택과 결과를 설명했다. 그는 "고종과 메이지천황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지만 상투를 자른 시기는 22년 차이가 난다"며 "개국의 시기 차이 역시 22년이고,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 함대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다른 반응도 강조했다. 페리 제독은 군인만 데리고 일본에, 그의 외손자인 로저스 제독은 외교관까지 동반해 조선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는 각각 개국과 신미양요라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 작가는 "신미양요가 아닌 '수교'였다면 강화도조약은 없었을 것이고, 500년간 이어온 중국과의 사대관계도 더 일찍 끊어졌을 것"이라며 "시작은 나란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 한 서생이 뿌린 '제국의 씨앗'

이광훈 작가는 신분을 초월한 교육관이 가져온 일본의 변화를 소개했다.<사진=이원희 기자>
이광훈 작가는 신분을 초월한 교육관이 가져온 일본의 변화를 소개했다.<사진=이원희 기자>
"똑똑한 인재 1명이 나라를 살리고, 백만명을 먹여살린다"

작가는 일본의 변화를 가져온 핵심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꼽았다. 그가 이끈 쇼카숀주쿠에서 펼쳐진 교육은 훗날 역사에 남을 인물들을 탄생시켰다. 

천민과 상급 사무라이 사이에 차별 없는 교육, 즉 '금수저'와 '흙수저'를 무시한 교육을 통해 인재풀을 확장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교육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제자들 중 '다카스키 신사쿠'를 언급했다. 그는 "다카스키 신사쿠는 요시다 쇼인에 비해 아직 국내에선 미지의 인물"이라며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다카스키 신사쿠의 아래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그리고 그 아래에 가쓰라 다로, 이노우에 가오루 등 일본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며 "조선이라는 한 '나라'가 일본의 조슈 '번'에 당했다"고 말했다.

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모습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작가는 '부산 초량왜관'과 '나가사키 데지마'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일본은 5000평 데지마에서 유럽 상인들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반면, 조선은 10만평의 초량왜관에서 정보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일본의 무단난출을 막지 못했다"며 "어찌보면 당시 '망할나라가 망했다'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 동양 3국의 개화 슬로건에서 이어진 역사

작가는 당시의 한국(조선), 중국(청나라), 일본의 개화 슬로건과 정신을 비교하며 그에 따른 결과들을 소개했다.

먼저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의 강고한 정체성으로 외래 문명 수용에 대해 제한적이었다. 1792년 최초로 영국사신을 접견한 건륭제는 중국은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교역은 필요없다고 문을 걸어잠궜다. 그러나 '중체'도, '서용'도 지키지 못하며 청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추상적인 정체성으로 서양문물을 쉽게 수용했다. 중국과는 반대로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니 기술을 가져와야 한다'는 자세다. 

작가는 영화 'Contact'을 소개하며 "다른 나라들이 다 우주선을 두고 경쟁할 때, 일본은 설계도를 가져갔다"며 왜 일본이 설계도를 가져갔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성을 전했다.

그는 "때문에 ETRI의 TDX(전전자 교환기)의 사례가 중요하다"며 "기계를 갖고 오는 것이 아닌 독자개발의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당시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그로 인해 한국 과학계가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슬로건을 가진 나라라고 정의했다. 개인적 소신과 이념이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보다 우선시 되는 것으로, '우리는 물건만 있으면 된다. 기술은 필요없다'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해 새로운 사상과 사고·기술 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시대에 발 맞추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이 작가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一所懸命(잇쇼켄메이)' 정신을 언급하며 "상투를 자른다는 것이 단순히 머리카락만을 자르는 것이 아닌, 목숨을 건 혁명으로 이어졌다"며 "우리 역시 인생(목숨)을 건 선택에 있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20일 오후 ETRI에서 10월 인문학특강이 진행됐다.<사진=이원희 기자>
20일 오후 ETRI에서 10월 인문학특강이 진행됐다.<사진=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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