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가을이라 말은 '어떤 물건을 끊다'의 고어인 '갓다'에서 왔다고 한다. 수확을 위해서는 곡식이나 과일을 식물의 본체로부터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갓을'이 '가슬'로 그리고 다시 '가을'로 변했다고 한다. 전라도 사투리 중에는 지금도 '가을걷이 하다'를 '가실하다'라고 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12세기나 13세기까지 가을은 그냥 추수(harvest)라고 불렸다고 한다.
가을은 노벨상을 수확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얼마 전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화재가 되었다. 가수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아마 노벨 문학상이 만들어 진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을 두고 주요 언론과 SNS 상에서는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기도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1960년대와 70년대 그가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노래 중 'Blowing in the wind'라는 곡을 좋아하고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가 직접 부른 노래보다는 '피터 폴 앤 메리'나 그의 전 아내인 존 바에즈가 불렀던 노래를 더 좋아했다. 피터 폴 앤 메리는 이 곡으로 1963년에 미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 그때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하였다. 노래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몇 년 전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 방송의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라는 코너에서 소개한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영원히 포탄 사용이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후렴 부분은 조금 모호하여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대답은 바람처럼 우리 가까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뿐이라는 뜻과, 바람처럼 변화하는 시대에 시대의 흐름을 모르면 뒤쳐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역시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깊이가 있는 가사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밥 딜런의 노벨상 소식에 젊은 날의 추억과 감성에 잠시 젖어 있는 사이 가을은 국화과 꽃들의 향기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은 다양한 국화와 들국화로 통칭되는 산국,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벌개미취, 미역취 등 국화과의 들꽃들이다.
이 가을에는 주변 가까이에서 구절초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우리집 베란다에도 큰 화분 한가득 구절초가 피어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흔한 쑥부쟁이는 가까이에서 눈에 띄지 않아 쑥부쟁이 한 번 못 보고 가을이 저물까 봐 마음이 급하다.
그런데 국화는 왜 다른 꽃들은 다 지고 열매와 씨를 맺는 이 가을에 피는 걸까? 과학자들에 의하면 국화 속에 숨겨져 있는 꽃을 피우는 개화 유전자가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활성화 되어 꽃을 피우도록 하는 단일식물(短日植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을에 피는 꽃들은 충분히 수정을 하여 열매나 씨를 맺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씨가 없거나 있어도 작다고 한다. 그러면 왜 가을 꽃들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피도록 만들어 졌을까? 아마 이 질문은 과학을 넘어선 철학적 혹은 신학적 질문이 될 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를 묻는 것처럼…..
어느새 설악산은 이 즈음이 단풍의 절정기라고 한다. 우리 동네에도 화살나무는 벌써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으며, 복자기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가을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제 꽃이 귀해지는 시기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남아 있는 가을 꽃들을 만나러 가까운 들에 나가 보고 싶다. 그리고 왜 이 가을 늦게 그리 서럽도록 아름답게 피어나는 지 물어 보고 싶다. 어쩌면 그 답은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불어오는 가을 바람 속에서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구절초 시편/ 박기섭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 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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