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표준연 질량힘센터 박사,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 개발 뒷이야기
"스마트폰 新 시대 이끈다··과학자, 산업계에 24시간 귀 기울여야"

김종호 표준연 박사가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 개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김종호 표준연 박사가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 개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2001년부터 로봇용 촉각센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2006년부터 휴대폰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죠. 이듬해 휴대폰에 촉각센서를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이므로 매우 모험적이었죠. 하지만 장기간 한 우물만 판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플도 못한 기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5년 동안 촉각센서 연구에 한 우물만 파온 과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김종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질량힘센터 박사. 지난 2001년 표준연에 입사한 이래로 현재까지 촉각센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김 박사 연구팀은 여러 손가락의 힘을 동시에 인식하는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를 개발하는 쾌거를 맛봤다. 애플에서도 개발하지 못한 촉각센서를 연구팀이 개발해 낸 것이다.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를 개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한 우물 파는 연구'라고 김 박사는 단언한다. 촉각센서와 같은 응용연구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산업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타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박사는 "촉각센서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는 맨땅에 헤딩 수준이었다.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한 분야 연구를 하다 보니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더 정확한 미래 로드맵을 그릴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 "열 손가락 힘 동시 인식···피아노 앱으로 다채로운 화음 연주"

"피아노를 연주하려면 손가락마다 서로 다른 힘이 들어가죠. 건반을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경우도 있고, 손가락의 힘을 조절하며 건반을 눌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투명 멀티 3D 촉각 센서'는 두 손가락 이상의 터치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각각 터치되는 힘까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애플은 '3D 터치' 기술을 세계 시장에 공개했다. 기존 2차원적인 터치를 넘어 세로로 누르는 힘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애플의 3D 터치는 두 곳 이상의 지점에서 누르는 힘은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지난 7월 김 박사 연구팀은 투명 멀티 3D 촉각센서를 개발해 냈다. 김 박사는 상·하판 투명 전극 패턴 제작과 두 전극 사이에 강성이 작은 투명한 유전체를 사용해 촉각센서를 제작했다. 센서를 누름에 따라 전극 사이에 발생하는 정전용량변화를 통해 터치 세기를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멀티터치와 멀티힘 인식용 플렉시블 3D 터치센서 모습(왼쪽), 플렉시블 3D 터치센서 시연 모습(오른쪽)<사진=표준연 제공>
멀티터치와 멀티힘 인식용 플렉시블 3D 터치센서 모습(왼쪽), 플렉시블 3D 터치센서 시연 모습(오른쪽)<사진=표준연 제공>
김 박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버튼을 누르는 힘은 대략 100 g 수준이다. 이번 촉각센서 힘 인식 범위는 50 g~1000 g으로 제작됐다. 손과 전용 터치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체의 터치도 인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촉각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이다. 두께 0.5 mm 이내로 잘 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87 % 투과도를 가지는 투명한 촉각센서를 기반으로 디스플레이 위에 직접 부착이 가능하다.

현재 시판 중인 다양한 모양의 모바일 기기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차세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장치에도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김 박사는 이번 촉각센서의 또 다른 장점으로 '생산성'을 꼽았다. 촉각센서 제작공정이 기존 터치패널 제조방법과 유사해 산업체에서 추가 장비구축을 하지 않고 생산이 가능할 수 있다.

기존 터치패널 구조와 융합할 경우 위치 분해능 1.5 mm 이내인 터치인식과 멀티 힘을 동시에 인식하는 멀티 3D 터치센서 구현이 가능하다. 김 박사는 이번 기술과 관련해 국내 6개와 국외 2개 특허를 등록했고, 현재 국내 2개 특허를 추가 출원했다. 

김 박사는 "투명 멀티 3D 터치 기술은 스마트폰 게임을 비롯해 앱, 잠금장치 등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할 수 있다"며 "사용자에게 편의성, 현실감,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입력장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산업체 현장에 귀 쫑긋 세우니 '연구 포인트' 잡혔다"

"연구실에 있는 연구자는 산업체 현장에 24시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 가지 작은 기술이더라도 연구자와 산업체 수요자가 생각하는 조건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술적 필수조건을 간파했을 때 비로소 '연구 포인트'가 정립됐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약 2년 동안 김 박사는 촉각센서 개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이후 2006년부터 촉각센서 관련 연구 포인트를 잡아내기 위해 산업체 현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체 정보를 밤낮없이 접해왔다"며 "산업계 워크숍은 물론이고 산업체 전문가들과 소통 창구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산업체 전문가들은 기술이 실용화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들을 이야기한다"며 "연구자가 생각하는 기술 조건이 아닌, 그들이 생각하는 기술 조건으로 고민하다 보니 연구 포인트를 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지난 2008년 촉각센서를 활용한 입력장치인 '마우스 터치스크린' 기술을 미성포리테크 기업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술이전으로 인한 기업 매출액은 100억 원 수준이다.

김 박사는 "출연연 연구자들과 산업계 전문가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괴리감을 좁혀야 한다"며 "특히 공학자들은 논문적 가치가 아닌 현실적 가치에 의미를 둬야 한다. 연구의 핵심은 산업계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완벽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연구자와 전문가가 합을 맞춰나갈 때 완벽에 가까운 기술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제를 위한 과제'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김 박사는 "연구자 자신이 자신을 바라봤을 때 열정이 있는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연구 토픽이 마음에 안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과제를 위한 과제는 열정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열정을 갖아야 한우물을 팔 수 있다"며 "과제는 돈이 많이 투입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장기 연구하겠다는 연구자의 마인드 세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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