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부터 이쑤시개까지 준비하던 피감기관 본연업무 집중
피감기관 관계자들 "김영란 청탁방지 문화 지속되며 자리잡기를 기대"

국감장 곳곳에서도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이 화젯거리로 등장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국감장 곳곳에서도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이 화젯거리로 등장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감사가 시작되면 국감에 참여하는 국회의원 이동 차량의 음료, 다과, 숙소 슬리퍼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올해는 전혀 없네요."(출연연 A 실장)

"감사 때마다 기차역까지 미래부 관계자를 마중가는 게 일과였다. 상위부처에서 오라가라 하지 않아도 눈치보여서 미리 마중을 갔다. 또 점심, 저녁을 제공하며 의전을 했었는데 이번 국감에서는 다 빠졌다."(출연연 지원기관 B 팀장)

김영란법이 과학기술계 국정감사의 풍경도 확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국정감사 때마다 피감기관들은 국감에 나서는 국회의원과 보좌관, 상위 부처의 요구에 대응하느라 적지않은 부담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국감 전에는 의원마다 요구하는 방대한 자료준비로, 국감이 시작되면 시시콜콜한 대응까지 일부 출연연 행정관계자들은 국감 후 몸져 누울 정도로 국감이 공포스럽다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 이후 국감이 열리면서 현장의 모습도 180도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 오찬·만찬 식사 대접 대신 국감장에서 인사만…편의 물품·식사도 스스로 해결

이날 국감 참석자들은 식권을 개별 구매해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이날 국감 참석자들은 식권을 개별 구매해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김영란법 이후 가장 달라진 국감 풍경은 식사 문화다.

이전에는 피감기관에서 국회의원과 상위부처 관계자의 점심은 물론 저녁 식사까지 고급식당에 예약하고 대접하는 게 당연했었다. 일종의 관례였다. 일부 의원과 보좌관의 경우 식사 후 유흥주점까지 찾으며 피감기관의 비용부담이 상당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과학기술계 국감장소인 KAIST 구내 식당에서 3가지 반찬이 차려진 갈비탕이 마련됐다. 물론 식권도 개별 구매로 해결했다. 저녁은 도시락이다. 감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차량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피감기관의 C 관계자는 "하루종일 국감 대응 후 저녁에 식사까지 대접하고 나면 밤 12시가 되는게 다반사였다"면서 "국감이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던 문제가 있었다. 올해는 의원들의 질의를 직접 들으며 업무에 참고하고 있다"고 달라진 풍경을 실감했다.

D 관계자 역시 "상위 기관의 인사 중 누가 국감 증인으로 참석하는지부터 이동 시간 등 의전으로 시간을 많이 빼앗겼는데 이번에는 모든 의전이 전혀 없다. 국감 후 공식적으로 마련됐던 식사자리도 예정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감 때마다 있었던 의원 보좌관의 편의 요구도 자취를 감춘 모양새다. 국감에 나서는 의원들의 이동차량(이동차량은 국회에서 준비)에 필요한 간식부터 숙소마다 여분의 치약, 면봉, 슬리퍼 등 편의 물품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물론 부족한 구입 비용을 피감기관마다 분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모든 준비를 국회에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연 E 실장은 "김영란법 이전에는 피감기관에서 준비하는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컸다. 자존감이 상했지만 울며겨자먹기로 대응 했던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김영란법 이후 그런 요구들이 전혀없다. 이런 문화가 지속적으로 실시되며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영란법 이후 피감기관의 언론 대응도 크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소속 기관에 불리한 기사가 나오지 않도록 담당 기자에게 청탁을 하거나 보도 후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영란법 이후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본연의 업무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출연연의 행정 팀장은 "국감 때마다 국회의원과 보좌관, 비서관, 언론기관, 정부부처 관계자를 정책 고객으로 분류해 대응 매뉴얼까지 만들어 후배에게 숙지시켜 왔다"면서 "올해부터는 그런 작업이 모두 빠져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덜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과학계 관계자는 "사실 기존과 같은 대응을 하지 않았을 때 닥칠 일을 염려하는 피감기관도 많았다"면서 "다행히 국회 보좌관, 상위부처에서도 적극 협력하는 분위기다. 올해는 피감기관 관계자 모두 국감 부담을 크게 덜고 본질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김영란법 시행 후 국감에 참석한 의원들의 연구 현장 방문과 연구자들과의 만남도 사라졌다. 아직 정확한 법 해석이 나오지 않으면서 모두들 몸을 사리며 현장과의 소통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미방위 소속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감사 중 출연연 연구현장을 방문해 연구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 국감은 그런 자리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김영란법으로 인해 소통 자리까지 줄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응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과학계 한 인사는 "김영란법이 시행된지 얼마되지 않아 혼선은 당연할 것이다. 김영란법 실시로 네트워크와 소통 부재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법 해석과 대응책을 마련하며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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