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수리과학과 교수···"한국에 수리생물학 뿌리 내릴 것"
국내·외 오가며 공동연구, 수리생물학 알리는 강연 적극 나서
수학모델링으로 생체시계 조절···화이자와 신약개발 개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무엇인가를 수학으로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하는 일은 수학으로 생물학 퍼즐을 풀도록 돕는 것이에요. 귀국하면서 '한국에 수리생물학의 뿌리를 내리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김재경 교수. 그는 작년 5월 KAIST에 부임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재경 교수. 그는 작년 5월 KAIST에 부임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KAIST 교수가 된지 갓 1년이 넘은 김재경 수리과학과 교수는 의미있는 포부를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수리생물학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그는 한국에는 생소한 '수리생물학'을 알리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작년 8월 귀국했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수리생물학은 수학과 생물이 합작해 생명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몸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연구에 투자하는 '돈'으로 선진국을 이길 수 없다면 '머리'로 승부를 걸만 하다"며 "정보와 컴퓨터를 가지고 연구하는 수리생물학이 우리나라에 잘 맞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분자생물학의 시대가 열렸고 수리생물학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생명 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생물학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약 테스트, 암, 당뇨, 면역 등 다양한 생물학 영역에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생물학자들에게 수학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들이 못 푼 것을 풀어주기 위한 힌트를 제공해주는 것"이라면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돌입하는 생물학 연구는 실험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은 가설로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상에 놓인 큼직한 컴퓨터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연구실에는 실험도구가 없지만 이 컴퓨터만 있으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인쇄 비용(?)이 그 중 큰 부분을 차지하죠."

대학교 때 수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재밌었다"며 "공부를 할수록 연구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수리생물학은 컴퓨터로 연구한다. 수리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연구실이 생물학 연구실처럼 실험도구가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단다. <사진=한효정 기자>
수리생물학은 컴퓨터로 연구한다. 수리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연구실이 생물학 연구실처럼 실험도구가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단다. <사진=한효정 기자>
◆ 한 편의 칼럼이 인생 전환점···"수리생물학 알리는 것도 내 일"
 
"학부생 때는 누군가 풀어 놓은 수학 문제를 다시 한 번 푸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수학으로 뭔가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수학이 활용될 곳을 생각하던 김 교수는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한 편의 칼럼을 읽고 수리생물학을 처음 만나게 됐다. 그 칼럼은 수리생물학학회가 처음 한국에 만들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휴가를 맞아 서둘러 도서관으로 가서 수리생물학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 학문에 빠져들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제대 후, 합격했던 국내 대학원을 뒤로한 채 수리생물학을 배울 수 있는 미국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대학원에서 수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생물학 학부생 과목도 동시에 공부했다.

그는 "고등학교 이후 배우지 않았던 생물학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생물학자와 수학자가 접근하는 방식은 천지차이로 던지는 질문과 해결방법이 다르다"며 "그렇기 때문에 공동 연구를 했을 때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고 공부 과정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수리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학문과 융합에 대한 생각도 키워갔다.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누군가 제가 소개한 수리생물학 관련 기사를 보고 수리생물학에 관심을 갖는다면 성공이지 않을까요?"
 
연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리생물학을 알리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김재경 교수는 "한 편의 칼럼이 내 인생을 수리생물학의 길로 이끌었듯이 나의 활동이 누군가에게 수리생물학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란 생각에 인터뷰와 강의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목표는 미분 적분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수학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 지 알려주는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수학 석학특강'에서 '생물학 난제를 푸는 수리생물학'이란 주제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생물학과 협력하는 연구를 하다 보니 해외 출장도 잦다. 방학 때는 외국의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회의를 하는데 최근 2달간만도 5군데나 다녔다. 올해 들어 80~90일 정도를 외국에서 지냈다고. 한국에 있을 때는 화상채팅을 이용해 새벽에도 미팅을 한다.
 
◆ 수학모델링으로 신약 연구···"협력기관 모두 나에게 고객"

 
생물학에 여러 분야가 있지만 김 교수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생체리듬'. 그는 생체시계 분야에서 60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난제를 풀어 작년 10월 큰 주목을 받았다.
 
생체시계에는 일정한 리듬으로 생성과 분해를 반복하는 'period2'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에 의해 우리 몸의 생체리듬도 유지된다. 하지만 온도와 계절이 변해도 생체시계가 일정한 이유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수학모델링을 통해, 온도에 따라 period2 생성과 분해를 조절하는 '스위치(인산화 과정)'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이것은 듀크-싱가폴 국립 의과대학 연구팀의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김 교수는 "이만한 성과를 앞으로 다시 이룰지 모르겠다"고 웃음지어 보였다.
 
최근에는 생체 현상을 규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와 함께 고장난 생체시계를 고치는 신약 개발에 도전했다. 생체시계가 고장나면 우울증, 알츠하이머, 유방암 등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커진다. 김 교수는 "방정식에서 약이 '변수'라면 변수에 따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수학적 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약의 실제 효과를 모델링한다는 점에서 그간의 연구와는 다르다. 김 교수는 "그동안은 약을 먹고 나서 몸 속에 남아 있는 약의 양을 알아보는 수동적인 연구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약을 먹으면 생체시계가 얼마나 조절이 되는지, 먹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 다양한 환경에서 약의 결과를 모델링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박사과정 때 화이자에서 임상 2기인 약의 시뮬레이션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뒤로 실험이 잘 끝나 임상 3기에 돌입하게 됐고, 작년 10월경 화이자에서 김 교수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협력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화이자도 공동연구 팀 중 하나인데 글로벌 제약회사이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며 칠판에 적힌 여러 협력기관의 이름들을 가리켰다. 그는 "모두 나에게는 '고객'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재경 교수와 함께 일하는 공동연구팀들과의 사진 <사진=김재경 교수 제공>
김재경 교수와 함께 일하는 공동연구팀들과의 사진 <사진=김재경 교수 제공>
우리나라에 수리생물학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생물학자와 수학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연구를 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학자들이 협력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외국의 큰 제약회사에는 수리모델링 그룹이 따로 있고 모델링은 신약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국내는 신약 개발이 시작된 역사가 길지 않아 수리생물학에 대한 접근이 그동안 쉽지 않았지만, 이 학문이 발전하다보면 적용할 분야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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