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공부모임 '빅히스토리 프로젝트 대전'…대중의 과학화 실천
참석자들 "일상 속 과학 궁금증에서 시작했죠"

고등학교 과학교재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빅히스토리 프로젝트 대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TBC 1층에서 진행된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고등학교 과학교재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빅히스토리 프로젝트 대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TBC 1층에서 진행된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지구의 나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우라늄 반감기로 어떻게 운석 나이를 알지?'
'클레어 패터슨이 검출된 납 수치를 눈 감았다면?'
'20년간 한 주제로 연구한 그는 정상일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3시간이 눈 깜짝할사이 지나간다.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반장님 질문있어요"로 연결되는 질문과 답변이 쉼없이 오간다. 시간은 예정됐던 오후 10시를 훌쩍 넘긴다. 참석자들은 공간 책임자의 퇴근을 알리는 '협박'이 있고서야 겨우 자리를 뜬다.

고등학교 과학교재로 공부하는 사람들 '빅히스토리 프로젝트 대전(이하 빅히스토리)'의 11교시 풍경이다.

빅히스토리는 직장인, 대학생, 주부 등 평소 과학과 별로 상관없던(?) 사람부터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과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고등학교 과학교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수업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대부분 주말의 여유로움에 빠져드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과학공부로 불금을 만끽하는 셈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업무를 마친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이 하나둘 대덕연구단지 사거리에 위치한 TBC 1층의 공간으로 찾아들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 수업 시작을 알리는 학교종이 '땡~땡~' 울린다.

학생들은 초록, 파랑, 빨강 이름표와 준비된 저녁(김밥)을 들고 색깔별 모둠 자리에 앉는다. 수업은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시작된다. '방송부 오빠(운영진 중 영상 담당자 호칭)'가 교재에 맞춰 준비된 영상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오락부장(운영진 중 진행자 호칭)'이 수업 시작을 알리는 안내를 하면서 본격 수업에 들어간다.

◆ 고등학교 과학교재로 과학공부를 한다고? 

왜 하필 학습대상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일까. 현재 사용되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는 이공계 기피 문제가 대두되면서 2011년부터 융합형 교재로 바뀌었다.

기존 과학 교과서는 물리, 생물, 화학 등으로 구분해 편식수업이 이뤄졌던게 사실. 이에 비해 바뀐 과학교과서는 우주와 생명, 태양계와 지구, 생명의 진화, 정보통신과 신소재, 인류의 건강과 과학기술, 에너지와 환경 등 과학 분야 전반을 다루고 있다.

특히 우주의 기원과 진화, 빅뱅과 기본입자 등 큰 흐름을 스토리 형태로 풀어내 일반인도 알아두면 좋을 교양 과학도서로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과학이라는 큰 숲을 일반인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다. 구체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빅히스토리가 고교 과학교재를 공부하는 이유다.

빅히스토리 수업은 주제에 따라 SNS에 올려진 학습 자료 사전필독, 수업당일 영상시청 후 감상 나누기, 개인별 모둠별 포스트 잇 질문, 의견 나누기,  모둠별 발표, 전문가(반장) 설명 등으로 진행된다.

강의 후 질문하는 기존 수업 방식을 뒤집어 온라인으로 선행학습을 한뒤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거나 심화학습을 하는 플립러닝 방식이다. 플립러닝은 거꾸로 공부하는 수업 방식으로 미국의 대학에서 시작돼 국내 대학과 중고등 교육에도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다.

빅히스토리 수업에서 반장을 맡고 있는 고원용 박사는 "일반적인 공부모임은 발표하고 질문하는 식으로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게 되는데 빅히스토리 수업은 같이 토론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듣게 돼 또 다른 배움이 된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과학 지식만 알고 이해해도 매일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과학뉴스와 정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인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최보근 참석자는 "고등학교에 다닐때는 물리, 화학 등으로 나뉘어 한가지만 듣게 돼 단편적인 지식이었다. 또 수능 준비용으로 공부하다보니 남는게 없었다"면서 "지금 교재는 우주부터 생명의 진화까지 과학의 흐름을 다룬다. 이를 전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데 빅히스토리 수업을 통해 가능하게 돼 매주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문 분야를 전공한 직장인 조수윤 씨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 과학을 공부한 기억이 없다. 독서 모임을 통해 책을 읽지만 인문학 중심으로 편식독서를 하고 있었다"면서 "세계를 이해하는데 과학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어 과학책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갈증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빅히스토리 모임을 알게 돼 공부하고 있다. 여전히 모르는 분야가 많아 수업을 통해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 수업 운영도 교실처럼 교사 없이 참석자들 학급 임원으로 자발적 참여

모둠별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정리하고 있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모둠별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정리하고 있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반장, 부반장, 학습부장, 오락부장, 선도부장, 체육부장, 방송부 오빠 등.

빅히스토리 운영진의 호칭이다. 고등학교 교재로 공부해 운영도 교실과 닮아있다. 다른점이라면 교사가 없다는 것. 때문에 참여자 대부분이 운영진에  참여하며 각자 역할을 한다. 자발적으로 하는만큼 운영에 차질이 일어나는 불상사는 없다.

6월부터 시작된 수업은 매주 15명 내외로 참석한다. 회비는 수업별 1만원으로 김밥, 때때로 과학현장을 찾는 소풍 비용으로 사용된다. 빅히스토리는 1차 수업(1~10교시)을 마무리하며 최근 대전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젝트 대전 2016 코스모스' 관람을 다녀왔다.

빅히스토리 수업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을까. 거창한 계획같은 건 없다. 2년전 독서모임을 하던 몇몇 사람이 '과학 공부'을 해보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아이디어는 나왔지만 장소 등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반장, 부반장, 선도부장이 의기투합하고 오락부장, 방송반 오빠 등이 지원을 자청하면서 구체화된다. 무엇보다 선도부장이 장소, 홍보 등에 적극 나서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

선도부장은 맡고 있는 박순필 씨는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해보기 위해 거꾸로 학습 방식을 선택했는데 1회 때 참석자들에게 설명하니 호응이 좋았다"면서 "이후 수업이 진행되면서 참석자들의 의견이 더해지고 업그레이드 되며 빅히스토리 수업이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 수준높은 수업 후기, 다양한 정보 나눔으로 또 다른 배움 재미

수업을 마치고 SNS 페이지에 발표 내용과 후기를 정리해 올린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수업을 마치고 SNS 페이지에 발표 내용과 후기를 정리해 올린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빅히스토리 11교시는 '지구의 나이를 어떻게 알았을까'를 주제로 납 함량을 정확히 측정하게 된 과학자 클레어 패터슨(Clair Cameron Patterson)의 연구 과정과 납 성분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알리는 영상으로 시작됐다.

패터슨이 굽히지 않고 20년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납의 폐해가 세상에 알려지고 자동차 연료 등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이후 패터슨은 납 측정법을 응용해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로 한다. 패터슨은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가 측정한 우라늄의 방사성 동위원소 반감기와 부산물로 납이 생성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해저의 암석과 운석의 납 함량을 통해 지구의 나이가 45억6000만년이라는 결과를 얻는다(자세한 내용은 빅히스토리 페이스북 페이지 참고).

빅히스토리 11교시 수업 참석자들은 영상 시청 후 모둠별로 소감과 질문 내용으로 토론하고 미리 공지된 자료와 정보를 이용해 답을 찾아가게 된다. 때문에 사전 공부는 필수다.

지식의 차이는 있지만 활발한 토론으로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진지함이 반복되며 재미를 더한다. 각 모둠별로 학습한 내용의 발표가 이어지며 새로운 지식을 알게되는 것도 빅히스토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덤이다. 당일 수업 내용은 학습부장을 맡은 운영진이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다.  

빅히스토리의 또 다른 재미는 수업 후기다.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좀더 깊이있게 알 수 있다. 다음은 빅히스토리 SNS페이지에 올라온 후기와 정보들이다.

'지구의 나이와 운석의 상관관계를 다시 정리하면 운석은 형성과정에 따라 미분화운석과 분화운석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데 미분화운석은 콘드라이트라 불리는 것으로 태양계 성운에서 형성된 다양한 광물들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태양계 최초의 퇴적암이다. 분화운석은 화성활동에 의해 암석으로 이루어진 맨틀과 금속철로 이루어진 핵에서 분화된 소행성 에서 기원된 운석이다. 이 중에서 콘드라이트 운석은 지구를 만든 기원물질에 해당된다.'

'클레어 패터슨이 납 오염과 싸운 이야기를 네이버 지식백과 '역사로 보는 환경' '휘발유와 납' 항목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85933&cid=58343.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과학적 진실을 감추는 활동은 이제 수지맞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담배회사와 석유회사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얼굴을 내세워서 돈을 대는 회사가 원하는 말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가 쓴 책 '의혹을 팝니다'나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혹을 파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각 모둠별 발표 후 질문을 모아 반장을 맡고 있는 고원용 박사가 설명하고 있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각 모둠별 발표 후 질문을 모아 반장을 맡고 있는 고원용 박사가 설명하고 있다.<사진=빅히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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