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먹거리 3개월만에 급조···관련 부처 관료 인식·업무 패턴 변화 없어
연구자들 "국가의 연구개발 미션 정확히 하고 10, 20년 후 내다봐야"

"대통령이 과기전략회의를 주재하고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열리면 무엇합니까.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부서에서는 변한게 없습니다. 여전히 성과중심 과제, 책임을 면할 방법론 찾기에 급급합니다." 

"미래 9대 핵심기술 도출 시에도 각 정부출연기관에 공문을  보내 아이디어를 보내라 하더니 담당자들이 보기좋은 과제들로 포장하는데 정말 답답했습니다."

기대가 됐던게 사실이다. 한 국가의 수장이 직접 연구개발 정책의 틀을 혁신하고 연구자는 연구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선포하며 연구현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는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연구환경 개선이 역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여전히 단기성과 중심, 관료의 입맛에 맞는 연구정책에 현장 연구자들이 휘둘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과학기술 분야를 직접 챙기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달 10일 열린 2차 과기전략회의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9대(성장동력 5개, 삶의 질 향상 4개 분야)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하기도 했다. 

성장동력 기술로는 선진국 수준의 인공지능, 가상 증강현실, 자율주행차, 경량 소재, 스마트시티를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기술로 정밀의료, 탄소 자원화, 미세먼지, 바이오신약 기술을 확정했다.

그런 가운데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상당수는 이미 선진국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거나 현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한 원천기술 개발보다 패스트 팔로워적 연구정책 행태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대한민국의 미래 책임질 기술을 3개월만에 급조?

과기전략회의의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 과학기술 분야는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또 정부출연연구기관은 10년 뒤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한 원천연구와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연구에 집중토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 체감하는 전략회의 결과는 여전히 '정책따로 현실따로'라는 반응이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기술이라면 분명한 목표와 방향 설정이 먼저다'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며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연구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연구전략과 방향부터 명확해야 하는데 방향성 없이 기술만 나열돼 있다' 등의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출연연의 한 정책관계자는 "행정부처에서 아이디어 제출하라고 기관에 공문이 내려와 나름 고민해서 보냈는데 그중 단기간에 성공가능한 기술 중심으로 금방 결정한 것 같다"라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9개의 기술 선정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를 외부 지적에 대응하는 답변으로 내놓아 좀 당황스러웠다"면서 "관료들의 마인드가 변화하지 않고는 미래 기술 선점은 요원하다"고 꼬집었다.

연구정책을 담당하는 한 연구자는 단기적 과제와 장기적 과제의 담당 관료 분리를 강조했다. 그는 "단기과제를 담당하던 행정관료의 경우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가야할 장기 과제를 그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고 일갈했다.

이 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기업과 정부가 철저한 협력체계다. 기업의 기술개발과 산업화 의지에 정부가 절반정도 지원하는 방식인데 이는 곧 연구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지며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일단 연구비부터 뿌리고 있다. 당장 보여주기식 성과중심으로 말이다"라고 질책했다.

B 연구자는 장기 정책과 방향성 부재에 대해 부처 이기주의를 들었다. 그는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를 한다면 신약이 나오기까지 긴 안목의 지속성이 필요한데 연구할 당시는 미래부 산하 과제지만 약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의 과제로 넘어가게 된다"면서 "부처가 바뀌면서 중복연구라며 다된 연구를 탈락시키기도 한다. 롱텀 연구가 필요한데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방향성 없는 과기전략 '인사도 회전문'

"과학기술전략본부가 출범한지 1년도 안됐는데 벌써 본부장만 세번째가 됩니다. 과기전략본부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의 간사로서 과학기술 미래전략, 정책, 계획을 아우르며 과기분야 전체적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몇개월을 마다하고 인사가 바뀌고 있습니다."

방향성 없는 과기정책은 인사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지난달 29일자로 과학기술전략본부(이하 과기전략본부)의 김주한 본부장을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 비서관에 임명했다.

과기전략본부는 지난해 9월 25일 정부 연구개발 혁신 추진기구로 미래부 내에 설치됐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지원, 과학기술계와의 개방적 의견수렴을 통한 현장소통과 과학기술정책 분야 협업을 강화할 목적으로 출범했다.

첫 본부장으로 최종배 당시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이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본부장 임명 9개월만에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임명된 김주한 본부장은 국립중앙과학관 관장직을 겸하며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

그러나 임명 3개월도 안된 김 본부장이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 비서관으로 결정되며, 과기전략본부 본부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현재까지 후임은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기구로 발족한 과기전략본부가 수장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양새다. 출범 1년도 안된 상태에서 본부장이 두번 바뀌고 세번째를 맞게 된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할 부서 책임자가 1년도 안돼 3번씩이나 바뀌는 현상에 대해 현장 과학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공공연구기관 한 연구자는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소통과 고민이 많아야 할 자리인데 출범 일년도 안돼 3번째 이동이라는게 어이없다"며 "정부의 임기응변식 과기정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계 한 인사는 "퍼스트 무버 시대는 더이상 정부 주도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국가 역량이 민간으로 내려와야 한다"며 "관료에 의한 시대를 접고 하루 빨리 현장의 리더십과 자율성이 확보되도록 풀뿌리 R&D문화와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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