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 위한 科技 정책 제언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지역 산업도시 경기침체 문제가 국가 경제 위기로 퍼지는 가운데 지역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이 제시됐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이하 과기한림원)은 31일 '지역혁신을 위한 과학기술 정책 제언'을 주제로 '한림원의 목소리' 제62호를 공표했다.

'한림원의 목소리'에서는 스웨덴의 말뫼, 미국의 디트로이트, 경기도 판교 등 과학기술을 통해 위기 극복에 성공한 혁신 도시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각계 전문가가 분석한 국내 상황과 문제점을 토대로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제시했다.

구체적 제안사항에는 ▲지역자치단체에 과학기술부서와 과학기술혁신 보좌관 도입 ▲지역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 ▲과학기술혁신 역량을 집결할 거점지역 설정 ▲지역인재들의 발굴과 활용 ▲일과 삶이 함께 있는 복합생태계 조성 ▲중앙의 권력을 비수도권 지역으로 이양 등이 포함됐다.

특히 과기한림원은 현재 지역 연구개발 투자의 90% 이상은 기업체 등 민간부문에 의존하고 있어 수도권 집중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학기술 중심 지역혁신에 대한 지방정부 리더십 확대와 대학·공공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 차원 연구개발 투자를 촉구했다.

이명철 원장은 "최근 지역 공동화 현상이나 산업 도시들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며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며 "과학기술계 석학들을 중심으로 지역 과학기술 혁신 방향성과 대안들을 제시해 국가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한다"고 공표 취지를 말했다.

'한림원의 목소리'는 국가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국가사회 현안에 대한 과학 기술적 접근과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관련 분야 석학들의 전문적 분석과 의견을 토대로 정책·법규, 제도 개선방안을 건의하고 있다.
 

아래는 '한림원의 목소리' 제62호 전문.

#1. 한때 세계 최대 조선소가 있던 스웨덴의 말뫼(Malmö)는 유럽이 조선산업의 건조 분야에서 아시아 지역에 일감을 모두 빼앗기자 쇠락하여 2002년 가장 큰 기중기를 1달러에 현대중공업으로 판매했다. 철거 당시 말뫼 시민들의 눈물은 스웨덴 국영방송에 중계됐다. 그러나 당시 말뫼 시장이었던 일마르 레팔루(Ilmar Reepalu) 시장은 눈물을 거두고, 대학과 기업이 협업해 연구와 창업을 할 수 있는 이데온(Ideon)이라는 과학단지를 설립해 말뫼의 조선부지를 사들였다. 현재 말뫼에는 정보기술(IT) 등 신산업 분야 200여개의 기업이 만들어지고 6만3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됐다.

#2. 미국 자동차산업의 상징과 같았던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 일자리가 많은 지역 중 하나였으나 지역 자동차기업들이 유럽·일본산 자동차에 경쟁력을 잃어버리자 쇠락을 거듭, 2013년 파산을 경험하며 한 순간 ‘버려진 도시’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런 디트로이트가 지금은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디트로이트 출신의 사업가 퀴큰 론즈(Quicken Loans)가 16조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고 주정부가 지원하며 ‘이노베이션 디스트릭트(innovation district)’를 지정, 스타트업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 중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격랑에 휩싸여 있다. 저성장, 저출산, 청년실업, 인구노령화,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양극화(polarization) 등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우리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는 수도권 집중의 심화다. 곧 경기도를 합친 수도권이 전 인구의 절반을 넘어갈 추세이다.

권력과 돈, 교육 및 문화가 모두 수도권으로 몰리고, 나머지 지역은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수도권의 교통지옥과 미세먼지 같은 환경오염은 더욱 악화될 것이며, 그로 인한 수도권의 삶의 질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국토의 균형발전은 물론 국민의 행복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하고 답답한 형국에서도 난제들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 할 수 있는 길은 지역의 과학기술 혁신이다.

우리는 "눈물을 흘렸던 스웨덴의 말뫼, 미국의 디트로이트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에서 멈추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도시 재건에 성공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지역혁신은 인구의 분산, 산업의 질적 성장과 특성화, 중소기업의 육성, 제4차 산업혁명의 대응, 국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도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지역의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제안을 촉구하는 바이다.

◆ 지역자치단체에 과학기술부서와 과학기술혁신 보좌관 도입

과학기술 중심의 지역혁신에 관한 지방정부의 리더십 확대를 촉구한다.

지역의 과학기술 역량을 육성하는 데 지방정부 중심의 선도적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앙정부에서 과학기술 부처를 설립하여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유도했던 것처럼, 이제 지방정부도 지역의 과학기술 발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할 단계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에도 과학기술 전담부서를 마련하고, 지역자치단체장 곁에 과학기술혁신 보좌관을 두어 상시 자문을 받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 내에 행정조직으로 과학기술진흥과 또는 과학기술혁신과 등을 두어서 지역의 과학기술혁신 역량을 끌어올리는 지역정책 개발에 착수하는 것은 좋은 출발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지역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지역 중 경기도가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큰 편이나 투자금의 94% 이상을 기업체 등 민간부문에 의존하고 있다. 경기도의 총예산 중 연구개발투자는 1.2%에 불과하며, 동시에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즉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공연구기관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어 지역의 노력보다는 기업이 저절로 수도권에 집중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생적인 민간기업 유치를 넘어 보다 하이테크(High-tech)로 넘어갈 수 있는 지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 과학기술혁신 역량을 집결할 거점지역 설정

지방자치지역에 과학기술혁신 역량을 집결시킬 수 있는 거점지역을 설정하여 중점적으로 육성할 것을 촉구한다.

혁신에 있어서 '공간'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도심이고 고밀도로 집적되어 있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예를 들어, 인재를 육성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의 대학 근처에 보다 많은 산업체들을 유인하고, 각종 인프라뿐만 아니라 제도적 문제들을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지방정부 지원기관을 가까이에 설치한다면,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지역혁신의 중심 지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확충되면서 인재의 수도권 집중도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지방과 중앙의 간극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지역인재들의 발굴과 활용

지역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지역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활용할 것을 촉구한다.

중앙 및 지방 가릴 것 없이 정부는 주로 국민세금을 활용하여 지역 사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국가 재정이 늘어나면서 이제 그런 재정지원 요구는 지방에서도 상당한 정도 충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과제는 어떻게 하면 지역민 스스로 지역혁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의 역량 문제다.

따라서 지역 인근의 과학기술 인재(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및 공학한림원 회원, 대학 교수 등)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혁신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공동자조(自助)노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체제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체제는 지역민의 혁신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어진다.

◆ 일(Work)과 삶(Life)이 함께 있는 복합생태계 조성

문화적인 것, 특히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내지 산업발전 중심의 지역혁신을 추진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일(work) 중심에만 치우치지 말고, 놀이(play) 중심의 여가, 오락, 교양, 교육 등의 생태계도 동시에 조성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역민의 복합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대도시에 못지않은 행복한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런 생태계는 곧 지속가능한 지역혁신으로 자리 잡게 만들 것이다. 

◆ 중앙의 권력을 비수도권 지역으로 이양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촉구한다.

경기도 이남의 비수도권 지역으로 중앙의 많은 권력을 보다 많이 이양하여, 권력과 돈 모두가 경기도 이북의 수도권에 집중하는 현상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에서 가끔 거론되고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만하다. 특히,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때, 수도 이전을 포함한 중앙 권력기구의 지역 분산에 관한 헌법 논의를 권력구조 개편 못지않게 중요하게 검토할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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