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유난히도 무더위가 심한 여름이다. 연일 선풍기를 켜놓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새벽녘에는 바람이 조금 서늘하게 느껴져 잠에서 깨어 선풍기를 껐다. 이제 지독하던 더위의 뒷모습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곧 떠나갈 올 여름 무더위의 뒷모습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행운의 여신처럼 돌아서면 붙잡을 수 없는 뒷대머리의 모습으로 사라질까? 아니면 더위의 긴 머리칼을 날리며 머뭇거리다 느린 발걸음으로 떠나갈까? 하지만 그 지독하던 무더위의 뒷모습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처럼 왠지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초 나는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에 다녀왔다. 원래 봄에 갈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몸이 안좋아 계획을 취소 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봄에는 외손녀도 함께 대리고 갈 계획이었으나 이번에는 외손녀가 엄마 아빠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되어 아내와 둘이서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대전에서 곰배령까지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막히지 않고 차로 계속 달려도 4 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휴가철의 피크 때여서 영동고속도로는 정체가 좀 있었다. 그래도 실시간 교통정보에 따라 최단 시간의 코스를 안내해 준다는 휴대폰의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고속도로를 여러 번 갈아 타고 홍천에서 국도로 빠져 강원도의 시골길과 산길을 구불거리며 달리니 길은 막히지 않았다. 모처럼 떠나는 아내와의 홀가분한 여행인 데다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지루한 줄 모르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인제군 진동계곡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기린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계곡 물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울창한 숲을 품은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시원하였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는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풀고 주변을 산책하기로 하였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 길가에는 이질풀, 동자꽃, 둥근이질풀, 물봉선, 영아자, 갈뀌덩굴, 사상자, 만삼 등 야생화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어 꽃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정갈한 산채 정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소에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조차 없었지만 창으로는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한 자연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히려 초저녁에 잠시 난방을 할 정도였다. 겨울에는 눈이 많아 눈 신인 설피가 없으면 다닐 수 없는 마을이어서 동네 길 이름도 설피밭길이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 부근의 야생화들은 이슬을 머금은 채 마치 하늘의 별들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주인집에서 산채가 가득한 반찬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후 주인이 싸준 주먹밥을 들고 천상의 화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점봉산 생태관리센터에서 입산허가증을 받는 일이었다. 숲과 생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산 인원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을 한 사람에 한해 입산허가증을 주고 있었다. 

해발 1164 m인 곰배령은 인제군 귀둔리 곰배골 마을에서 진동리 설피 마을로 넘어가는 점봉산 남쪽 능선에 있는 고개다. 우리가 출발한 진동리 생태관리센터로부터 5 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왕복 10 km의 거리였다. 평소 산행을 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산길 10 km는 부담스러웠으나 비교적 평탄한 트래킹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울창한 숲길이어서 그늘이 이어지고 계곡 물 소리가 시원함을 더해주어 한 여름 찜통 더위에도 걸을 만 했다. 군데 군데 야생화들이 피어 우리를 반기고 있어 나의 발걸음을 느리게 하였다. 동자꽃, 단풍취, 영아자, 도라지모시대, 금강초롱, 그리고 이름을 정확히 구별하기가 어려운 흰색의 산형과 풀꽃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은 입구로부터 2.2 km 지점인데 그곳에 곰배령 끝집이라는 매점과 화장실이 있어 쉬어 가기로 하였다. 시원한 냉커피와 감자전 하나로 강원도의 맛을 느끼고 산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만일 어린 외손녀와 함께 왔다면 이 쯤에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부근에 입산 통제소가 있어 다시 한 번 노란 입산 허가증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평탄한 숲 속 산책길과는 달리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본격적인 산길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과 군데 군데 피어있는 야생화가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계속 올라갈 지 뒤돌아 내려갈 지를 고민하였다. 지나가는 비라고 판단하고 천상의 화원을 보기 위해 계속 올라 가기로 하였다. 길가에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듯 눈부시게 피어있는 눈빛승마꽃을 카메라에 담을 때에는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며 미끄러운 산길을 조금 더 가다 보니 다행히 비가 그치기 시작하였으며 드디어 탁 트인 곰배령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내와 나의 입에서는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마침 비가 개인 곰배령 너머 점봉산에서는 안개 구름이 피어올라 야생화가 만발한 곰배령 풀밭 위로 흐르면서 신비로운 천상의 화원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산봉우리들과 어울린 비 개인 천상의 화원에 앉아 맑고 시원한 공기를 반찬 삼아 주먹밥 점심을 먹고도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처음 “이 더위에 무슨 산행이냐?”고 산행에 반대하던 아내도 오길 너무 잘했다고 하면서 좀처럼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9시에 출발한 우리 보다 무려 2 시간 늦게 출발한 팀도 벌써 정상에 도착한 것 같아 우리는 이제 발걸음을 제촉하여야만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내려오는 길이 오히려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내려오는 내내 “왜 이리 멀지? 우리가 어떻게 여기를 올라 갔었지?” 하면서 걷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도 간간히 길가에 보이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지체하다 보니 9시에 1차로 출발한 우리가 거의 꼴찌로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적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독차지한 것 같아 유쾌하기만 하였다. 

밤이 되면 계곡물 소리 들리는 어두운 시골길을 걸으며 환하게 불을 켜고 다가오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곳. 올려 보면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 빼꼭히 별이 보이는 풀꽃 가득한 마을. 하늘 닿는 너른 언덕 위에 오르면 가득히 피어 있던 야생화. 이번 여름 무더위를 피해 잠시 다녀온 곰배령으로의 여행은 내 카메라뿐만 아니라 아내의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늦여름/유봉길

집에서 아주 멀리
마음먹고 산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시골집
마치 방안에서 금방이라도 인기척을 들으면
방문이 열릴 것 같아
가만히 서 있었는데
마지막 여름 햇살이 방문으로 기어오른다.
누군가 햇빛 따라 나올 것 같아
살며시 발길을 옮겼다.

시원한 계곡 물_드디어 인제군 진동계곡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기린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계곡 물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울창한 숲을 품은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시원하였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는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Pentax K-1, 43 mm with HD Pentax D FA 24-70mm F2.8 ED SDM WR, f/7.1, 25 s, ISO100
시원한 계곡 물_드디어 인제군 진동계곡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기린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니 계곡 물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울창한 숲을 품은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시원하였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는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Pentax K-1, 43 mm with HD Pentax D FA 24-70mm F2.8 ED SDM WR, f/7.1, 25 s, ISO100

둥근이질풀_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 길가에는 이질풀, 동자꽃, 둥근이질풀, 물봉선, 영아자, 갈뀌덩굴, 사상자, 만삼 등 야생화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어 꽃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00 s, ISO100
둥근이질풀_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 길가에는 이질풀, 동자꽃, 둥근이질풀, 물봉선, 영아자, 갈뀌덩굴, 사상자, 만삼 등 야생화들이 풍성하게 피어 있어 꽃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00 s, ISO100

별로 피어나는 꽃-이질풀_다음날 아침, 숙소 부근의 야생화들은 이슬을 머금은 채 마치 하늘의 별들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60 s, ISO200
별로 피어나는 꽃-이질풀_다음날 아침, 숙소 부근의 야생화들은 이슬을 머금은 채 마치 하늘의 별들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160 s, ISO200

도라지모시대_울창한 숲길이어서 그늘이 이어지고 계곡 물 소리가 시원함을 더해주어 한 여름 찜통 더위에도 걸을 만 했다. 군데 군데 야생화들이 피어 우리를 반기고 있어 나의 발걸음을 느리게 하였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 s, ISO200
도라지모시대_울창한 숲길이어서 그늘이 이어지고 계곡 물 소리가 시원함을 더해주어 한 여름 찜통 더위에도 걸을 만 했다. 군데 군데 야생화들이 피어 우리를 반기고 있어 나의 발걸음을 느리게 하였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 s, ISO200

눈빛승마_길가에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듯 눈부시게 피어있는 눈빛승마꽃을 카메라에 담을 때에는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30 s, ISO200
눈빛승마_길가에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듯 눈부시게 피어있는 눈빛승마꽃을 카메라에 담을 때에는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30 s, ISO200

천상의 화원_정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내와 나의 입에서는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마침 비가 개인 곰배령 너머 점봉산에서는 안개 구름이 피어올라 야생화가 만발한 곰배령 풀밭 위로 흐르면서 신비로운 천상의 화원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ony ILCE-6000, 1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9.0, 1/100 s, ISO100
천상의 화원_정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내와 나의 입에서는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마침 비가 개인 곰배령 너머 점봉산에서는 안개 구름이 피어올라 야생화가 만발한 곰배령 풀밭 위로 흐르면서 신비로운 천상의 화원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ony ILCE-6000, 1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9.0, 1/100 s, ISO100

천상의 화원 2_먼 산봉우리들과 어울린 비 개인 천상의 화원에 앉아 맑고 시원한 공기를 반찬 삼아 주먹밥 점심을 먹고도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처음 산행에 반대하던 아내도 오길 너무 잘했다고 하면서 좀처럼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Sony ILCE-6000, 2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10.0, 1/100 s, ISO100
천상의 화원 2_먼 산봉우리들과 어울린 비 개인 천상의 화원에 앉아 맑고 시원한 공기를 반찬 삼아 주먹밥 점심을 먹고도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처음 산행에 반대하던 아내도 오길 너무 잘했다고 하면서 좀처럼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Sony ILCE-6000, 26 mm with E 16-70mm F4 ZA OSS, f/10.0, 1/100 s, ISO100

동자꽃이 가득한 곰배령_밤이 되면 계곡물 소리 들리는 어두운 시골길을 걸으며 환하게 불을 켜고 다가오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곳. 올려 보면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 빼꼭히 별이 보이는 풀꽃 가득한 마을. 하늘 닿는 너른 언덕 위에 오르면 가득히 피어 있던 야생화. 이번 여름 무더위를 피해 잠시 다녀온 곰배령으로의 여행은 내 카메라뿐만 아니라 아내의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0 s, ISO100
동자꽃이 가득한 곰배령_밤이 되면 계곡물 소리 들리는 어두운 시골길을 걸으며 환하게 불을 켜고 다가오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곳. 올려 보면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 빼꼭히 별이 보이는 풀꽃 가득한 마을. 하늘 닿는 너른 언덕 위에 오르면 가득히 피어 있던 야생화. 이번 여름 무더위를 피해 잠시 다녀온 곰배령으로의 여행은 내 카메라뿐만 아니라 아내의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Pentax K-1, smc PENTAX-D FA MACRO 100mm F2.8 WR, f/3.5, 1/400 s, IS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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