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검열기관 검증 결과는 숙련도·분석장비 상태에 따라 다르다?
표준연 개발 식품 인증표준물질, 식품 검열기관에 정확한 답안지 역할 가능

"식품 포장지에 표기된 영양성분 수치들, 온전히 믿을 수 있나요? 식품 안전성을 검증하는 분석기관들은 표준연이 개발하는 인증표준물질로 분석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안성희 표준연 유기분석표준센터 박사)

"식품 영양성분표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냥 '좋은 거구나'하고 믿을 수밖에 없죠. 의심스럽긴 해도 어쩌겠어요. 구매해야죠."(심정미 가정주부)

"더 많은 인증표준물질 개발로 식품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잣대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제도적으로 연구자와 소비자, 생산자 간 신뢰가 쌓여갈 수 있겠죠. 분석은 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주영직 한살림 포도 생산자)

우리나라는 식품의 구체적 정보를 공개하는 영양성분표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식품 원재료명, 내용량, 영양성분 등에 대한 정보를 제품 포장이나 용기에 표시하는 제도다. 소비자는 영양성분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자신의 건강에 이로운 식품을 선택한다.

식품 영양소들은 우리 건강에, 우리 삶의 질에 직결된다. 그만큼 영양성분표시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영양성분표에 표기된 숫자들, 우리는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연구자와 생산자(농민·식품관련 기업들), 소비자(가정) 3人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권동일)에 모였다. 12년째 인증표준물질(CRM)*을 개발 중인 안성희 표준연 유기분석표준센터 박사, 포도 생산을 하고 있는 귀농 5년 차 주영직 생산자와 심정미 가정주부가 안전한 먹거리를 주제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인증표준물질(CRM, Certified Reference Material) :특정 성분의 함량과 불확도가 정확하게 측정된 표준물질로, 측정기기의 교정이나 분석방법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왼쪽부터) 안성희 박사, 심정미 주부, 주영직 한살림 생산자. 이들은 다양한 인증표준물질 개발이 측정 정확도와 신뢰도를 향상하고,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왼쪽부터) 안성희 박사, 심정미 주부, 주영직 한살림 생산자. 이들은 다양한 인증표준물질 개발이 측정 정확도와 신뢰도를 향상하고,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사진=김요셉 기자>
◆ "식품 검열기관 검증 결과, 숙련도·분석장비 상태 따라 오락가락"

안성희 박사(이하 안) : 예를 들면 분유 포장에는 탄수화물, 칼슘, 단백질, 비타민 등 수십 가지 영양 성분이 숫자로 표기돼있다. 식약처가 지정한 40여 개의 분석기관들이 분석한 수치다. 하지만 그 숫자를 다 믿을 수 있느냐는 거다. 분석 결과값은 분석하는 연구자의 숙련도와 활용하는 장비 종류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미 주부(이하 심) : 우리 입장에서는 의심스러우면서도 구입할 수밖에 없다.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영양성분 표시에 대해 다뤘던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믿을 것 못 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신은 해도, 표기된 대로 믿고 구매하는 수밖에 없더라.

주영직 생산자(이하 주) : 우리는 출하 전,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이 지정한 민간 기관에 농약잔류분석을 의뢰한다. 이때 농산물의 안전성 여부가 결정된다. '한살림'이라고 별도 기준은 없고,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똑같이 따른다. 인증은 1년 기준으로 갱신해야 한다.

안 : '잔류 농약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른 분석기관에 또 의뢰하는가? 아니면 폐기하나?

주 : 이게 참 억울한 부분이다. 한번은 정황상 절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음이 확실한데 잔류농약 허용 커트라인에 걸렸었다. 물론 제3의 기관에 의뢰할 수 있긴 하지만, 이미 그 시료에서 나왔다고 분석이 된 이상 별 의미가 없어보였다. 행정소송으로 갈 수 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힘들지 않겠는가. 시간도 비용도 너무 오래 걸리고. 생산자들만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한다.

심 : 충분히 억울하겠다. 그렇다면 생산자만 피해를 보는 구조인가?

주 : 정부에 의해 인증된, 공신력 있는 기관이기에 그 값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나도 귀농 전 잔류농약 분석 기관에서 일했었다. 숙련도, 장비 검·교정 상태가 제대로 되어있느냐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잔류기간이 긴 '엔도설판'이라는 농약을 사용한 밭이 범람해 하천으로 떠내려 왔다. 억울한 검증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역추적해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음' 정도를 증명했다.

안 : . 국가 관련 부처에서(식약처, 품관원 등) 매년 시험교정기관을 대상으로 유해물질 분석 또는 영양소 등 에 관련한  숙련도 시험을 진행한다. 균질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시료를 제조·배포한 후 각 기관에서 제출한 측정 결과를 기준값과 비교해  분석기관들을 인정기관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분석기관들의 '벼락치기'다. 모든 기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험만 통과하고, 국가에 의해 인정기관으로 지정되면 그뿐' 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았다.

센터 연구실에 들른 세 사람. 안성희 박사가 간략하게 센터의 연구현황에 대해 소개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센터 연구실에 들른 세 사람. 안성희 박사가 간략하게 센터의 연구현황에 대해 소개했다.<사진=김요셉 기자>
◆ 재래식 된장 속 곰팡이, 건강에 이롭다? 해롭다?

안 : 주부 입장에서는 어떤 인증표준물질이 개발되길 원하나?

심 : 평범하다. 쌀과 잡곡,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정도다. 일반 밥상에 올라가는 평범한 식재료들이다. 누룩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곰팡이가 엄청났다. 이게 몸에 좋은 건가? 궁금하긴 했다. 곰팡이 하면, 된장 아닌가? 작년 표준연에서 된장 분말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한 기사를 접했다.

안 : 곰팡이 독소 분석용 된장 분말 인증표준물질을 제조하면서 재래적 방법으로 만든 된장이 공장에서 만든 된장보다 곰팡이 독소가 검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조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맛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가 수거한 재래된장은 대부분 규제치 아래로 검출되는 등 건강에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시료를 분석하진 않아서 더 이상 내가 된장과 곰팡이 독소에 관련된 할 말은 없다. 다만 곰팡이 독소가 검출된 된장으로 인증표준물질을 제조할 수 있었다.

주 : 식품공학관련 기사에서 비슷한 내용을 접했다. 오히려 재래식 된장 제조법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였다. 연구적 의의는 있을 수 있겠다. 겉에 묻은 곰팡이 독소가 씻기지 않고 메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우리가 '약으로 알고' 먹었던 것들에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심 : 된장도 발효 곰팡이 균에 의해 만들진다. 그렇다면 막걸리도 비슷한 원리 아닌가? 막걸리 곰팡이 측정용 인증표준물질은 개발 안 하나?(웃음)

안 : 유럽에서 만든 인증표준물질 중에서, 커피 속 곰팡이 독소 분석용 인증표준물질이 있다. 그들과 차별된 곰팡이 독소가 무엇이 있을까 논의 끝에, 국민들이 애용하는 된장 곰팡이 독소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아직 막걸리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그래도 좋은 시료가 될 것 같다.

심 : 인증표준물질은 언제 처음 개발했나? 개발 정도는 어느 수준인가?

안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최초 인증표준물질이 언제 개발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에 제조한 인증표준물질은 배추 중에 있는 잔류 농약 몇 개 항목 분석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먹는 것'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식품 쪽 항목이 점점 늘어난 것이다. 가령 곰팡이 독소만 해도 된장 분말 외에 최근 사과주스에 들어있는 페튤린이라는 곰팡이 독소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했다. 또 옥수수 곰팡이 독소 측정용 인증표준물질도 개발 중이다. 육류 중 항생제, 음료 중 첨가물, 영양소 관련 식품에 관한 인증표준물질이 제조되고 있지만 여러 분석기관들이 원하는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밥상 안전 위해, 과학자-생산자-소비자 간 선순환이 필요!"<사진=김요셉 기자>
"밥상 안전 위해, 과학자-생산자-소비자 간 선순환이 필요!"<사진=김요셉 기자>
◆ "식재료 안전망, 정부·연구기관·생산현장·소비자 간 이해 중요"

주 : 앞서 말했듯, 우린 유기로 농산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토양에 잔류된 농약 성분 때문에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연구원에서 만든 식재료 안전망이 농가 현장까지 이어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안 : 우린 주로 공무원들과 교류가 이뤄지는데, 현장까지 접촉하기 위한 단계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심 : 국민 입장에서는 연구기관·생산자·소비자 간 선순환이 이뤄지길 바란다. 지금은 서로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안 : 노력은 한다. 숙련도 검사를 통해 분석기관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같은 맥락으로 봐달라. 정확한 분석이 결국 농가를 위하고,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염된 시료로 인증표준물질을 제조해야 하는데 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검출되면 그 자리에서 전량 폐기된다고 알고 있다.

주 : 잔류농약분석 기관의 경우, 분석 시료의 절반은 분석 후 한 달 정도 유예기간을 갖고 폐기한다. 따라서 표준물질 제조를 목적으로 한다면 오염된 시료를 잔류분석기관을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안 : 품질관리원과 연계해, 오염 농도가 짙은 식재료들을 수거하는 것도 좋겠다.

심 :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하고, 다루는 기관은 우리나에서 표준과학연구원이 유일한가?

안 : 인증표준물질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식품관련 인증표준물질은 그렇다. 현재 우리 센터에는 8명이 근무하고 있다.

심 : 소비자 입장에서 인증표준물질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제껏 홍보가 왜 이렇게 부족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안 : 인증표준물질 대국민 홍보는 10여 년 전부터 이뤄졌다. 국민들의 인식에 변화를 줄 만큼 크게 이슈화는 안 되더라. 지역과 메이저 언론에 내보내도 대부분 '과학'이라는 카테고리에만 한정되다보니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내용이니까. 그래도 연구 성과를 내놓으면 분석기관들에게 연락은 곧장 오는 편이긴 하다.

주 : 표준물질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 아닌가. 제도적으로 '신뢰'하게끔 만드는 것. 하지만 그 어떤 분석도 '신뢰'를 앞서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충분히 쌓은 상황에서,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때 '분석'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 : 구체적으로 다 알수는 없어도, 앞으로 표준연 인증표준물질과 비교해 분석한 결과라면 신뢰할 수 있을 거 같다. 인증표준물질을 개발하는 연구자가 8명이라고 들었는데, 많은 연구자가 참여했으면 좋겠다.

주 : 안 박사 말대로, 지금껏 숙련도에 의존했다면, 인증표준물질 개발이 활발히 이뤄져 '정확한 잣대'가 세워지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인증표준물질 활용의 무궁무진함을 깨달았다.

안 : 맞다. 다만 우리 내부적으로도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항목의 인증표준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는 더 다양한 인증표준물질을 만들고, 식품 검역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많이 활용하길 바란다. '숙련도 시험만 통과하자'는 생각은 버리고, 정확한 유해 및 영양성분 측정을 위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어느 기관이 내놓는 결과라도 모두가 그 숫자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