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창립 후 12년간 산업현장과 연구소 연결 네트워크 활약
총괄 남현수 박사 "기술 노하우, 논문에도 없어···클럽 통해 확산"
"연구원 지식 하나(一), 산업체 열(十)고민 해결"

"오래전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 한 부품을 직접 제작할 때 그 부품의 특성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다. 그런데 산업현장에 와보니 이 특성을 몰라서 공정에서 골머리를 썩는 기업들이 태반이더라. 이 간단한 특성 하나만 들으면 금방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것이 산업체와 연구원이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다."(남현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측정클럽 총괄책임 연구원)

제품 생산을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현장. 기술의 문제점에 봉착했을 때 답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옆에 있다면 어떨까. 전문가 조언 한마디로 오래된 문제 해결에 돌파구가 생기거나 제품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4년 창립돼 올해로 12년차에 접어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권동일)의 측정클럽은 산업체 측정분야 실무자들과 표준연 연구원들이 모인 측정 관련 전문인들의 동호회 성격의 커뮤니티다. 측정분야 별 총 25개의 세부 클럽으로 나뉘고 산업체·공공기관·학교에 소속된 클럽 회원들이 6000여명에 달한다.

표준연은 경비·장소 제공, 전문가 매칭의 역할을 하고 표준연 전문가들과 활동이 적극적인 산업체 참여자들이 운영위원회를 꾸려 산업체 중심으로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측정클럽 총괄을 맡아온 남현수 박사는 "측정클럽은 엄청난 성과나 사건이 생기는 곳은 아니지만, 기업이 필요할 때 언제나 갈 수 있는 약국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2015년 x-선회절 측정클럽 튜토리얼 모습 <사진=대덕넷>
2015년 x-선회절 측정클럽 튜토리얼 모습 <사진=대덕넷>
◆ 측정클럽은 '결과' 아닌 '과정·노하우' 공유하는 곳
 
측정클럽은 표준연에서 산업측정 신뢰도 사업을 수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때 산업체의 측정 신뢰도를 확산하기 위해 현장과 연구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는 단순히 연구결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장비·사람·시설·경험 등의 '과정'을 공유해야 했다.
 
남 박사는 "학회와 연구개발 성과는 결과만을 이야기하지만 측정클럽에서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측정순서 등 학회나 논문에서 보고되지 않은 세세한 부분을 다룰 수 있고 이는 매우 중요하다"며 "산업체는 정보가 중요한데 자신만의 경험이나 논문, 지인을 통해 얻는 정보는 연구자와 상의해서 얻은 정보와 확실히 다르다. 측정클럽이 아니면 이런 정보와 노하우를 얻기는 힘들다"고 자신했다.

측정클럽을 총괄 지원하는 표준연 중소기업지원센터에는 측정클럽 프로그램 이외에도 창업공작소, 기술홈닥터, 글로벌강소기업 육성 등 기업을 육성하는 여러 사업이 있다. 그 중 측정클럽은 가장 기초 단계 사업에 해당한다.
 
여러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측정클럽은 많은 기업들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국의 측정클럽을 벤치마킹해 구성된 표준연 측정클럽은 이후 여러 나라의 모델이 됐다. 일본 표준기관은 우리나라 측정클럽을 모델로 삼아 독자적인 측정클럽을 만들었고 멕시코도 이에 관심을 갖고 본보기로 삼았다. 최근 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측정클럽을 주목하고 있다.
 
측정클럽의 해외 교류가 큰 성과 중 하나지만, 측정클럽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국내 산‧학‧연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클럽 구성원들은 서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오래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측정클럽을 통해 산업체에서는 측정정보와 더불어 장비와 전문 인력을 소개받는다. 이들은 종합워크숍 등에서 장비를 선보일 기회도 있어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고 알짜 고객을 밀도 있게 만나기도 한다.
 
연구자 역시 클럽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 연구자는 산업체가 필요한 것을 찾아 연구 과제로 추진하거나 지속적 연구가 필요한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측정클럽을 통해 연구개발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다른 정부출연연구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도 여러 분야를 접하기 위해 클럽을 찾고 학생들은 산업체에 나가기 전 현장의 최신 측정기기와 측정기법 등을 경험하기 위해 클럽활동에 참여한다. 대기업에서도 내부의 공정 이슈나 문제점을 들고 매년 종합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한다.

매년 종합워크숍에서는 장비전시가 진행된다. 장비전시를 통해 고객을 직접 만나고 새로운 장비를 접할 수 있어 기업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사진=대덕넷>
매년 종합워크숍에서는 장비전시가 진행된다. 장비전시를 통해 고객을 직접 만나고 새로운 장비를 접할 수 있어 기업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사진=대덕넷>
◆ 기업 성장 뒷받침부터 현장 목소리 대변 역할까지
  
압력측정클럽의 초창기 멤버인 피디케이(대표 한무필)는 압력교정기 전문 회사로, 10년 넘는 꾸준한 클럽 활동으로 사업도 전체적으로 성장한 대표 사례다.

피디케이는 압력측정클럽 회장 우삼용 박사로부터 '신개념 날개형 피스톤·실린더 장치'기술을 이전 받아 기준기급 분동식압력계를 개발·판매하고 있다. 분동식압력계가 시장에 출시된 후 국내 시장점유율은 약 50%에 달했으며 매출은 연 12억' 정도 상승했다. 최근에는 제품의 수출이 시작됐다. 이 밖에도 측정클럽을 통해 압력조절장치, 초정밀 디지털 압력계 기술 등을 자체 개발해 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압력측정장비를 국산화했다. 2009년에는 압력 분야 국제 교정기관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올렸다.
  
측정클럽을 통해 성과를 얻은 또 다른 회사는 정밀 온도 유지가 필요한 항온수조·항온조 등을 만드는 씨피티(대표 노진천)다. 씨피티는 측정클럽에서 기술 조언을 받고 2011년 ±0.01℃까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온도발생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선진국만이 가능했던 초정밀 온도발생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표준연에 납품을 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 온도발생기는 원하는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가 가능할 뿐 아니라 동작 시간이 짧고 에너지가 절감되도록 개선된 제품이다. 당시 관련 자료가 전혀 없어 전 세계 특허 정보를 뒤졌던 씨피티에게 측정클럽은 큰 도움이 됐다.
 
측정클럽 활동은 국가 표준 교정절차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올해 온·습도 측정클럽은 국가교정기관(온도분야) 관계자와 클럽 회원들이 모인 워크숍 패널토의에서 산업체의 현실과 이상적인 교정방법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논의했고, 산업체들의 요청사항을 반영해 절차서를 개정하기로 했다.
 
측정클럽은 이처럼 산업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모아서 공식적으로 국가 기관에 전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 온습도측정클럽은 온도챔버의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산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측정클럽 제공>
2011년 온습도측정클럽은 온도챔버의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산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측정클럽 제공>
 
◆ 산업 다변화 발맞춰 새로운 클럽 활성화 목표
 
남 박사는 표준연에서 연구를 하다가 2006년 연구원 내 중소기업지원센터로 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연구를 할 때는 한 분야만 보게 되는데 여기 와보니 세상 모든 분야가 다 내 분야이고, 산업체의 고민이 내 활동 무대가 되더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은 당장의 성과를 얻기는 힘든 분야다. 멀리 보는 사업이기 때문에 2~3년 안에 성과를 내길 원하는 경영진들에게는 주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측정클럽 설립 당시에는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기관 전체의 지지는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측정클럽을 포함한 산업체 지원의 중요성을 찾고 홍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러다 최근에는 상황이 역전돼 정부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이에 따라 측정클럽의 역할도 늘었다.

남 박사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많은 보람을 느낀다. 그는 "사장님과 직원 두 명이 있던 기업이 20명 규모로 성장할 때, 국제 시장에 진출하고 대기업에 납품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다. 그리고 작년에 만났던 회원을 올 해 또 만날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산업이 다변화되고 확장되면서 생기는 새로운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발맞춰 수요지향적인 클럽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남 박사와의 대화 내용 중 일부.

Q. 측정클럽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A. '한 우물을 깊게 파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의 장인정신과 기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측정 전문가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기술 종결자'다. 일본은 내가 생각하는 기술의 끝까지 간 상태다. 하나의 기술에 대한 관심을 평생 유지하고 대를 이어 그 비결을 전수하는 시스템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 측정클럽이 갈 길은 멀지만, 구성원들이 여러 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을 넓게 보고 지식을 쌓아 측정클럽에서 확대 재생산이 되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
 
Q. 측정클럽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A. 우리가 부족한 것은 후배에게 '전수'하는 문화다. 측정기술에는 중요한 요소들이 아주 많은데 이제는 이런 것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후배에게 체계적으로 물려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측정클럽에서 전수 문화가 자리 잡아 이 분야에 진입하는 새로운 사람에게 클럽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이어져야 한다.

Q. 클럽 회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클럽에 올 때는 큰 보따리를 가져오면 좋겠다. 질문을 많이 가져와서 많은 것을 챙겨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업들이 체면을 차리기보다 연구자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서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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