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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을 각오로 악역···과제 성공률 5% 도전"

[창원發 혁신 - 下]박경엽 원장 "연구소가 인생마당···스스로 가치 키워나가야"
대담 = 이석봉, 취재=김요셉·박성민 기자 sungmin8497@hellodd.com 입력 : 2016.07.14|수정 : 2016.07.14
박경엽 원장과 인터뷰 모습. 박 원장이 "과제 성공률 5%에 도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사진=김요셉 기자>박경엽 원장과 인터뷰 모습. 박 원장이 "과제 성공률 5%에 도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사진=김요셉 기자>

"우리 연구원의 현재 과제 성공률은 0.1%라고 봅니다. 기술개발 성공 후 연매출이 1조 원 이상인 기준으로 볼때 듀퐁이 1%, 3M이 2%, 삼성전자가 3% 라고 합니다. 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술에 의해 국내 기업들이 혜택을 보거나 국가 사회에 파급 효과가 있는 과제를 성공한 과제라고 판단하죠. '성공 과제'에 포함되는 과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총력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5% 과제 성공률에 도전하려 합니다."

지난 1981년 입사해 35년째 한국전기연구원에 몸담고 있는 박경엽 원장.
35년간 국가의 전기연구에 인생을 건 박 원장은 어떤 연구 철학과 생각으로 연구소가 연구활동을 펼쳐나가야할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박 원장의 연구 철학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인류를 위한 연구'.
어떠한 연구도 인류를 위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 정말 인류를 위한 연구 아이템을 찾았다면 한가지 목표를 위해 평생을 바쳐서라도 연구소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념이 확실하다.

그는 취임 이후 내부 연구과제심의위원회를 견고히 하고 톱다운 과제를 진행하는 등 기존 관례를 깨며 연구기관의 제대로 된 역할과 본질을 찾아가고 있다.

박 원장은 "연구개발 우선순위는 인류와 국가 사회에 둬야 한다"며 "국익에 보탬이 되는 아이템을 우선으로 선택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관 평가 잘받는 것도 중요하지만···인류 판도 뒤집을 0.1% 과제 도전"

박 원장이 "과제 우선순위를 인류, 국가사회, 기관, 개인 순으로 둬야 한다"고 연구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박 원장이 "과제 우선순위를 인류, 국가사회, 기관, 개인 순으로 둬야 한다"고 연구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인류에 의미 있는 대형 연구과제에 평생 매진해 성과를 낸다면 그것이 세상에 이익이 됩니다. 개인과 기관의 이익보다는 인류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우선입니다."

현재 전기연의 과제 도전 성공률은 0.1%. 1개 성공 과제만이라도 실제 국가 사회에 파급 효과를 불러온다. 과제 성공률을 5%까지 끌어올린다면 세계 인류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예상이다.

박 원장은 인류에 불필요한 과제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PBS 제도에 따라 연구자들이 정부 등 외부에서 과제를 받아왔다. 연구자들이 기관 운영비 확보와 개인 성과 제고 측면에서 과제의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양'을 따지는 풍토가 됐다는 것이 박 원장의 진단이다.

박 원장은 "일부 그렇지 않은 연구자들도 있겠지만, 쉽고 편한 작은 과제만을 진행하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며 "오히려 개인, 기관, 국가사회, 인류 순서로 우선순위를 거꾸로 두는 연구자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부터 전기연은 개인 연구자가 외부로부터 과제를 받아 연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개인의 이익이 아닌 인류와 국가 사회를 위한 과제라면 직할 본부장을 비롯해 내부 연구과제심의위원회 과정에서 승낙을 받아야 한다.

그는 "과제만 받아오고 연구에 신경 쓰지 않는 풍토를 타파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과제라면 심의를 거쳐 국가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인지 검증해야 한다"며 "심지어 국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 과제들도 있다. 국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면 국익을 선택하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톱다운 과제 23개 선정도 연구소 경영의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 대형과제 중심으로 장기지원을 추진하며 주요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톱다운 과제는 국가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 원천 분야, 민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기술 분야, 국가 공익적 기술 분야, 인류의 판도를 바꿀만한 큰 파급효과를 가진 과제를 말한다.

박 원장은 "미래 국가전력망 최적 운영을 위한 운영기술 개발을 비롯해 의료용 형광 전자내시경 시스템 개발, 의료용 펨토초 레이저 응용 기술 개발 등 세계 선도 기술 확보를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톱다운 과제를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대형 성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피력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 연구를 비롯해 의료기기, 복지 등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우선순위로 꼽는다"며 "후배 연구자들과 미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연구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민간에서 이미 진행 중인 연구? "파격 성과 자신 없으면 도전 안 한다"

"타 출연연 혹은 기업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연구소 차원에서 제재하고 있습니다. 중복된 연구는 이미 기술이 보편화 돼 있어 수월하죠. 하지만 기존의 제품·기술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면 도전하지 않습니다. 기존을 넘어 최고가 될 자신이 있을 때 도전합니다."

박 원장이 전기연의 톱다운 과제 중 하나인 내시경 의료기기 개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박 원장이 전기연의 톱다운 과제 중 하나인 내시경 의료기기 개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박 원장에 따르면 올림푸스 의료기기가 우리나라 의료시장 95%를 장악하고 있고, 1년 수입이 5000억 원 이상이다. 연구소를 비롯해 일반 기업에서도 경쟁할만한 제품·기술을 만들지 않고 있다. 강력한 경쟁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박 원장은 의료기기 연구가 국가 인류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해 올림푸스 의료기기를 뛰어넘는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후 내시경 의료기기 개발을 톱다운 과제로 선정해 강욱 박사의 주도로 연구가 진행됐다. 현재는 인더스마트사로 연구소 창업으로 이어졌고 의료기기 인증절차를 받고 있다.

그는 "올림푸스 의료기기와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성과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국가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과제라면 과제 책임자에게 과제비·연구비·연구기간 등을 알아서 책정하도록 권한을 준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연구의 장기적 지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국가 인류에 필요한 과제는 장기적 요소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지원할 것"이라며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2~3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지만, 전기연은 10년~20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으로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평생 제대로 된 연구 한 건만 진행하는 것도 적지 않다"며 "연구자 한 명당 한 건의 과제가 아니라 팀당 한 건만 제대로 진행해도 성과는 충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최대 일주일 평가 연구과제심의위원회···관례 깨면서 내부 중심 잡겠다"

"최근 전기연의 성공 과제와 실패 과제 각 4개씩 자체 평가를 했습니다. 과제 실패 요인을 조사하기 위함이죠. 그 결과 '제대로 된 과제', '제대로 된 책임자' 등 둘 중 하나를 만족하지 못했을 때 과제가 실패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박 원장은 성공할 수 있는 과제의 요인으로 '제대로 된 과제'와 '제대로 된 책임자'을 꼽았다. <사진=김요셉 기자>박 원장은 성공할 수 있는 과제의 요인으로 '제대로 된 과제'와 '제대로 된 책임자'을 꼽았다. <사진=김요셉 기자>
전기연의 실패 과제의 요인이 부적절한 '과제 선정'과 '책임자 선정'이라고 박 원장은 분석했다.

과제와 책임자 선정 과정에서 절차와 형식은 잘 갖춰져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가치 있는 과제가 아니거나 올바른 책임자가 아니었다는 것.

박 원장은 "제대로 된 과제와 책임자로 팀을 구성할 때 과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며 "그동안 과제 선정에 앞서 절차를 위한 절차가 만연했기 때문에 올바른 과제·책임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고 진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박 원장은 내부 연구과제심의위원회(이하 연심)의 체계 강화 전략을 내놨다.

그동안 하루면 끝났던 연심을 최소 5일에서 일주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과제 설계 과정을 비롯해 계획서 평가, 책임자 소신 평가 등 기존보다 더욱 공정하고 정확한 절차로 과제·책임자의 가치판단 과정이 마련된 것이다.

박 원장은 "그동안 주요사업, 외부사업 등 구체적인 가치판단 없이 연구자들이 나눠먹기식 연구심의를 진행해 왔다"면서 "제대로 된 책임자일지라도 가치판단 과정이 없으면 성과창출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제 책임자 선정을 외부보다 혹독하게 한다. 진정으로 과제에 책임지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자가 책임져야 한다"며 "선배 혹은 후배라고 과제를 얼렁뚱땅 넘기면 안된다. 연구자 스스로가 공부하며 소신을 가질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 원장은 "제대로 된 과제에 제대로 된 책임자가 선정되면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다. 평가·성과독촉 등 외부로부터의 연구방해 요인을 모두 없애준다"며 "그동안 과학계의 고질적 관례를 깨나가면서 연구소 경영의 중심을 잡아가겠다"고 역설했다.

◆ 원장직은 '악역'···"욕먹을 각오로 연구자 마음 불타는 R&D 문화 조성"

"임기 초반 전기연의 내부 변화를 일으키면서 많은 연구자로부터 반대 의견을 받아왔습니다. 연구소 차원에서 바람직한 연구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원장을 비롯해 보직자는 '악역'을 감안해야 합니다."

전기연의 혹독한 내부 연구심의를 비롯해 외부 소규모 연구과제 금지 등 혁신을 위한 정책을 펼칠 때 내부에서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박 원장의 소회다. 

'연구자 마음에 열정이 불타는 R&D 문화 조성'이 박 원장의 임기 초반 세웠던 목표다. 박 원장은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내부 연구심의 전략을 세우고 톱다운 과제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최종 단계는 'R&D문화'를 주목했다.

박 원장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R&D 문화를 조성해 연구 철학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겠지만, 전기연이 공감 문화를 형성하면 기대 성과를 충분히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밥 먹고 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위해 연구하길 바란다"며 "당장 눈앞의 이익을 참아내고 먼 미래를 보고 연구해야 한다. 전기연을 인생마당이라고 생각하고 인생의 보람을 키워가는 연구문화로 만들겠다"고 피력했다.

전기연의 대표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8000MVA 대전력시험설비 중 단락변압기 1200MVA 설비의 모습. <사진=김요셉 기자>전기연의 대표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8000MVA 대전력시험설비 중 단락변압기 1200MVA 설비의 모습. <사진=김요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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