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권 수석연구원, 한국 과학계에 '자율 주되 책임 분명히'
고희 후에도 연구활동 왕성 "공부해 나누고, 협력 중요"
"역사와 한자 공부하며, 후학들에게 연구자의 올바른 자세 심어줄 것"

뉴욕 맨하튼 그랜드 센트롤 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정도 지나 차파쿠아 역에서 내렸다. 자동차로 다시 30분 정도 숲길을 달려가니 뉴욕주 요크타운에 위치한 IBM 중앙연구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탁트인 시야, 나즈막한 원형의 건물, 높은 하늘 그야말로 최적의 연구 환경이다.

이곳에는 한인 과학자 40여명이 연구자로 활약 중이다. 전체 연구자 3000여명중 1%지만 IBM 주요 연구분야마다 포진돼 있다. 그 중심에는 올해 71세의 현역 과학자 강성권 수석연구원이 있다.

강 박사는 환갑은 물론 고희도 이미 넘겼다. 한국에서라면 벌써 현역에서 은퇴했을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연구현장에서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는 과학자다. 건강이 허락하고 연구열정이 있는 한 이곳에는 정년도 없다. 굴지의 기업 IBM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자로 말이다. 비결이 뭘까.

그를 직접 만나 미국 현지 과학자들도 존경하는 재료공학분야 최고 과학자로 인정받기까지 그의 삶과 후배들을 위한 격려의 말을 취재해 봤다.

◆ 연구자로서 자세…"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의 열(說)은 나누라는 의미"

강성권 박사가 그동안 활동했던 내용들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벽면에는 공부하는 내용들을 프린트해 빼곡히 붙여놨다.<사진=길애경 기자>
강성권 박사가 그동안 활동했던 내용들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벽면에는 공부하는 내용들을 프린트해 빼곡히 붙여놨다.<사진=길애경 기자>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강 박사는 연구자, 과학자의 자세를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로 대신한다. 그리고 '열(說)'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공자의 말 중에는 리서치(연구)가 무엇인지 연구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다 들어 있다"면서 "공부하고 깨우치게 되면 즐거움이 커지는데 그 기쁨이 너무 커 담아두지 못하니 이를 나누라는 의미로 기쁠열(悅)이 아닌 '말씀열(說)'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리서치는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배우는 것이다. 또 배운 것을 나누는게 결국 배움이다. 연구결과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배우고 나누는 덕목은 연구자로 살면서 항상 가슴 속에 새겨둔 연구 철학이었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강 박사는 1969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당시 모교에서 교수로 와줄 것을 제안했지만 학위만 마친 상태라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미국의 기업 연구소 연구자로 남기로 결정한다.

"포닥 후 연구 교수, 조교수를 거쳐 인코(INCO)중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4년쯤 지났는데 회사가 너무 멀리 이사를 가게돼 사표를 냈어요. 실직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빙판에 넘어져 망막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내 연구분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금속재료를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큰 수술이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IBM으로 오게 됐지요."

그는 그때 상황이 떠오르는지 잠시 숨을 돌렸다. 강 박사는 1984년 IBM중앙연구소에서 새롭게 연구자의 길을 시작한다. 연구분야는 금속 재료에서 전자 재료 분야로 바꿨다. 

30년이 넘는 그간 그의 연구활동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IBM은 매년 연구자별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결정한다.  선배연구자라고 가산점은 없다. 맨 밑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평가받는다. 철저한 경쟁구조인 셈이다. 그는 치열한 공부와 함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연구에 집중하고 공유하며 선후배들로부터 인정 받게 된다.

강 박사는 "연구 스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수술 후 연구 분야를 금속재료에서 전자재료로 바꿨다"면서 "육체적으로 큰 곤란이 오면서 삶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때부터는 경쟁 속에서도 협력하고 나누며 긴 호흡으로 연구를 했다. 그런 연구 자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재료공학 분야에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연구자다. 그의 연구성과 중 납 없이 패키징이 가능한 합금 기술은 지금도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강 박사는 IBM에서 연구자로 활동하며 전자재료 패키징 기술과 관련해 144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중 미국 특허는 53개, 국제특허도 60여개에 이른다. 또 미국 다수의 재료분야 학술잡지의 편집위원과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전문 참고 서적 집필에도 기여했다.

◆ 생활 과학자, 한인 자녀들 교육 위해 수학 커뮤니티만들고 강연 활동도

강 박사의 협력과 나눔 활동은 연구 뿐만 아니라 일상으로도 이어진다. 그가 가장 많은 관심을 둔 부분은 '한인 학생 교육'이다.

강 박사는 "한국 학생들 정말 공부 열심히 한다. 공부하는 시간도 많다"면서 "하지만 학생들 설문조사를 해보면 자신이 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미국 대학생들은 그중 이공계 학생은 정말 그 분야 공부를 정말 즐기며 한다. 미국의 저력이 거기서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한국 학생들이 억지로 공부하는 데는 부모의 영향도 크다. 그래서 수학과학 경시대회를 만들었는데 주 목적이 한인 교포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올바르게 전달하고 한인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바른 교육에 대해 논의하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짚었다. 강 박사는 "현재 교육은 대학을 진학했는가, 못했는가로 인생의 1차 성공과 실패로 나누게 된다"면서 "너도나도 다 대학에 가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졸업을 한다. 당연히 실업율이 높아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는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대학은 정말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가게해야 한다"면서 "자유롭게 들어가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학을 안나오면 인생 낙오자로 취업도, 결혼도 못한다는 성공지향주의는 잘못된 교육에서 시작된다.  정부 정책, 부모의 인식 등이 같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박사는 학생들과 학부모를 위한 교육 강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KAIST 학생들에게 '배움과 나눔의 즐거움'을 주제로 과학도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조언하기도 했다.

◆ "과학자들 질문 폭 넓혀야, 리서치는 한자어 온고지신과 같은 의미"

강성권 박사는 IBM 종신 연구자다. 건강과 연구열정이 있는한 정년이 없다. 강 박사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멘토이기도 하다. 사진은 후배, 동료들과 함께 한 모습이다.<사진=길애경 기자>
강성권 박사는 IBM 종신 연구자다. 건강과 연구열정이 있는한 정년이 없다. 강 박사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멘토이기도 하다. 사진은 후배, 동료들과 함께 한 모습이다.<사진=길애경 기자>
'여성이 왜 남성보다 오래살까' '한국이 어떻게 세계 최고 IT 강국이 됐을까' '한국인은 왜 흰옷을 좋아할까' '인디안은 우리 민족일까.'

강 박사는 여전히 궁금한게 많고 질문도 많다. 그는 "과학자들 대부분 자신의 연구분야에만 집중하면서 질문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비사이언스 분야도 공부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생긴다"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것을 조언했다. 

질문의 폭을 넓히고 답을 얻기 위해 그는 역사와 한자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시간관리도 철저하다. 아침일찍 출근해 하루 일정을 체크하고 메일 확인하고 외부일정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남는 시간은 공부에 매진한다.

강 박사는 "아마 과학자가 되지 않았으면 소설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때는 글도 제법 쓴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중학교에 가니 글 잘 쓰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 포기했다"고 웃으며 "선친이 토목공학을 전공하셔서 몸속에 공학도의 DNA가 있었다. 하지만 연구하면서 시간을 쪼개 인문학 서적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리서치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역사 공부는 꼭 해야한다. 리서치의 re는 다시 찾는다는 의미로 옛것을 알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의미의 온고지신( 溫故知新)과  맥을 같이한다"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은 또 다른 연구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과학자들도 질문의 폭을 넓여야 크리에이티브 해진다"고 역설했다.

그의 학습 열정은 IBM 연구자와 한인 과학자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한인 과학자 후배들은 "강 박사님 덕분에 한인 과학자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항상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하며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입을 모았다.

◆ 과학자로서의 애국심, 말보다 역사 바로 알리기로

한국을 떠난지 올해로 47년이 된 그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 그의 국가관은 역사 바로 알리기에서 시작된다.

한국 관련 온라인 강의도 자주 챙겨보는 그는 "일본 학자들이 한·중·일 세나라의 노벨상에 근접하는 과거 과학성과에 대해 정리한 것을 본적이 있는데 세종대왕 시기에 중국은 4개, 일본은 0개, 한국은 21개로 당시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계적이었다. 하지만 계승이 안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재료공학자로서 한국의 주조기술과 철관련 소재 기술도 높이 평가했다.  강 박사는 "신라시기의 범종 기술은 유기 구리 아연 주석 등으로 소재기술과 금속 기술이 일본과 중국을 앞서있었다"면서 "이런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다. 애국심을 가지라는 말보다 자긍심을 키워주고 역사를 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배 과학자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현재보다 어떠한 사람으로 살았는지 미래의 자신을 생각하라"면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부지런히 하고, 잘못된 일을 반복하지 말며, 연구에 집중하고 기본적인 자세에 충실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강 박사는 "한국 과학자 생활을 해보지 않았지만 언론보도 등을 보면 우려된다"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연구자들을 자유롭게 둘 필요가 있다. IBM도 자율권은 주지만 결과는 철저하게 체크한다. 그리고 매년 연구자 전체의 순위를 정할만큼 느슨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BM 연구자는 정년이 없다. 하지만 CEO는 60세가 정년이다. 연구자는 건강이 허락하고  재미있게 연구하고 싶으면 가능하다"면서 "오픈 시스템인가 아닌가에 따라 연구자의 사기는 많이 달라진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본틀을 마련해주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 정부가 같이 연구현장의 문제를 파악해야 개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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