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유럽 20주년]최귀원 소장 "한국과 독일 잇는 브릿지역할, 우리가 할 일"
겉모습만 따오는 선진전략 그만 "독일 인더스트리 4.0 현장에서 제대로 배워 전파"

자브리켄은 작은 소도지만 잘란트 주립대를 중심으로 막스플랑크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 라이프니치연구소 등 이 입주해있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 해외연구소 KIST 유럽이 자리잡은지도 20년이 됐다. <사진=구글 맵>
자브리켄은 작은 소도지만 잘란트 주립대를 중심으로 막스플랑크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 라이프니치연구소 등 이 입주해있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 해외연구소 KIST 유럽이 자리잡은지도 20년이 됐다. <사진=구글 맵>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약 2시간 떨어진 잘란트주 자브리켄. 작은 소도시지만 과학과 음악의 도시로 유명하다. 잘란트 주립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막스플랑크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 라이프니치 연구소, 인공지능연구소(DFKI) 등 세계적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 해외연구소 KIST 유럽(소장 최귀원)이 자리잡은 지 20년이 됐다.
 
연구소들 사이에는 벽이 없다. 마치 하나의 연구소인 듯 하다. 길 건너 혹은 바로 옆 걸어서 1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모두 이웃해 있다. KIST 유럽은 이곳에서 활발한 연구소간 협력네트워킹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헬름홀츠신약개발연구소(HIPS)의 제안으로 공동연구소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외부수탁연구과제도 올해 처음으로 25개를 넘어섰다. 한 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느리지만 천천히 제대로, 꾸준한 모습이 유럽 과학기술계에 통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연구소가 유럽에 자리를 잡는다고 했을 때 현지 연구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머나먼 독일까지 왔을까. 우리 기술을 빼가려고 여기에 와있는건가' 등 따가운 시선도 있었죠.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씩 인정해주는 것 같습니다."
(최귀원 KIST 유럽 소장)
 

KIST 유럽은 2개의 연구동으로 지어졌다. 약 7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한다. 직원 비율은 한국인, 외국인 비율 5:5다.<사진=김지영 기자>
KIST 유럽은 2개의 연구동으로 지어졌다. 약 7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한다. 직원 비율은 한국인, 외국인 비율 5:5다.<사진=김지영 기자>
지난 2014년 KIST 유럽 소장으로 최귀원 박사가 부임하면서 '출연연 및 산업계의 유럽진출을 지원하는 개방형 연구거점기관'으로 비전을 설정하고 개방형 연구와 더불어 산업계 지원이라는 전략방향을 세웠다.
 
'우리가 독일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세운 결정이다.
최귀원 소장은 "우리가 독일에 있는 이유는 독일과 한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라며 "유럽이 잘하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독일 현지 연구의 활성화, 산업계 EU진출 지원 등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에 그 어느 때보다 KIST 유럽이 활기차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독일 현지의 KIST 유럽연구소를 찾았다. 최귀원 소장과 연구진 등을 만나 KIST 유럽 20주년, 향후 계획 등을 취재했다.
 
◆ 20년간 한 자리, 천천히·제대로 통했다
 
최귀원 소장이 KIST 유럽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4년 6월이다. KIST 의공학연구소장이던 그는 KIST 유럽이 운영 중이던 자브리지 프로그램의 평가를 위해 처음 KIST 유럽을 방문하게 됐다.

자브리지 프로그램은 한국과 유럽간 가교역할을 한다는 뜻의 브리지를 합친 것으로 안드레아스 만츠교수를 영입해 연구개발담당 소장으로 임명하고, 바이오메디컬 연구에 집중 투자한 프로젝트다. 사실 최 소장은 유럽 KIST가 만츠 교수를 영입하고 바이오에 투자를 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KIST 유럽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 소장이 유럽 KIST에서 느낀 점은 '이대로 괜찮을까'였다. 연구비도, 인력도 넉넉지 않은데 바이오메디컬분야에서 최고분야가 되겠다는 비전은 사실상 어려워보였다. 이미 본원에서 관련 분야를 잘하고 있는데 KIST 유럽에서 별도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실패로 끝난 자브리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KIST 유럽은 존폐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애써 구축해 놓은 KIST 유럽을 그대로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KIST 유럽의 생존을 위해 일조하겠다고 결심했다. KIST 본원의 의공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터라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에게는 믿고 의지했던 동료 권익찬 박사가 있었다.
 
KIST 유럽에 와서도 기관의 정체성에 고민이 많았다. 그는 "뚜렷한 건 없었지만 KIST 유럽이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정부와 연구자, KIST가 KIST 유럽에게 뭘 잘하길 바랄지 고민했다"며 "그래서 찾은 것이 환경규제와 화학규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최귀원 소장은 2014년 12월 KIST 유럽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출연연 및 산업계의 유럽진출을 지원하는 개방형 연구거점기관'으로 비전을 설정하고 개방형연구와 더불어 산업계 지원이라는 전략방향을 세웠다.<사진=김지영 기자>
최귀원 소장은 2014년 12월 KIST 유럽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출연연 및 산업계의 유럽진출을 지원하는 개방형 연구거점기관'으로 비전을 설정하고 개방형연구와 더불어 산업계 지원이라는 전략방향을 세웠다.<사진=김지영 기자>
환경규제는 KIST 유럽이 가장 오랫동안 추진해온 프로젝트이자 차근차근 역량을 쌓아온 분야다. 독일과 유럽의 앞선 환경규제에 따른 연구에서 노하우가 쌓여있으니 한국의 어느 기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해로운 화학품 등이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건강을 해치듯 환경과 사람의 인체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KIST 유럽이 큰 투자를 했던 바이오메디컬과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환경·화학규제의 기본 기술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서로 집약해 보기로 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EU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화학관련 기업체 지원에 집중했다. EU의 화학물질수입 규제벽이 높아 국내업체가 진출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KIST 유럽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KIST에 따르면 2008년부터 EU REACH에 따라 EU로 수입되는 연간 1톤 이상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물리화학적 특성, 인체 및 생태 독성 등의 시험 자료와 위해성 평가결과 등을 유럽화학물질청(ECHA)에 등록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규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하다.
 
이에 KIST 유럽은 그간 연구해온 노하우 등을 통해 국내 업체가 EU시장 진출시 극복해야 할 무역장벽과 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복안이다.
 
그 일환으로 KIST 유럽은 지난해 한국우수기술연구센터(ATC, 신기술 보유 400여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협회)와 글로벌 허브랩을 개소하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ATC의 MOU체결을 지원해 출연연과 기업체가 협력을 통해 EU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6개 기업이 유럽진출을 위해 협조를 진행 중에 있다.
 
최 소장은 KIST 유럽과 서울 본원의 협력도 강조했다. 현지 연구소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본원, 그리고 한국의 출연연과의 협력 없이 현지 연구소와 협력이 불가능 할 것이라 여긴 그는 전체 연구비 중 30%를 공동연구를 제안한 연구자들이 활용 가능토록 별도 배분했다.

이를 통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과 EU 나노안전기술센터를 개소하고, ETRI와 스마트팩토리 공동랩, 한국화학연구원과 공동연구실을 구축하는 등 국내 출연연과의 협력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 겉모습 따오는 선진 연구문화 "韓 사정 맞게, 현지 핵심전략 파악"

"한국에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에 관심이 많은것으로 안다. 인더스트리 4.0 현장 중심에서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핵심전략을 파악해 나가겠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에 주목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독일정부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운 핵심전략이다. 전통 제조업이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지능형 공장으로 진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기술경쟁력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미래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0년부터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KIST 유럽의 바로 인근에 위치한 인공지능연구소는 독일이 2013년부터 완전 자동 생산체계 구축을 위해 운영 중인 연구소로 인더스트리 4.0의 중심축이다. KIST 유럽은 인더스트리 4.0 현장을 제대로 배우고 우리나라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새롭게 연구단을 만들었다. 선진국의 좋은 사례를 겉모습만 따오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KIST 유럽 이영호 부장은 "한국에서도 인더스트리 4.0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이곳에 인더스트리 4.0 기관 40여개가 콘소시움 활동 중으로 우리 연구소도 가입을 했다. 독일 현지에서 인더스트리 4.0 핵심전략을 파악할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HIPS는 KIST 유럽에 공동연구소 구축을 제안했다. 공동연구소 설립을 통해 EU과제 신청시 한국기관으로서 불이익이 해소 등이 기대된다.<사진=김지영 기자>
HIPS는 KIST 유럽에 공동연구소 구축을 제안했다. 공동연구소 설립을 통해 EU과제 신청시 한국기관으로서 불이익이 해소 등이 기대된다.<사진=김지영 기자>
HIPS와의 공동연구소(듀얼아이덴티티) 구축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HIPS는 KIST 유럽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연구소로 최근 공동연구소 설립을 먼저 제안했다.
 
KIST는 HIPS와의 공동연구소 설립이 한시적 계약문제 해결과 독일과 EU과제 신청시 현지연구소로서 정체성 강화, 한국기관으로서 불이익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호 부장은 "KIST 유럽은 독일에 있는 4대 연구소와는 달리 공익유한책임회사로 일반 노동법 적용을 받고 있다. 독일 현지에서 인력운용이나 과제 등을 수주해올때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크다"면서 "아무리 좋은 연구과제가 있더라도 KIST라는 한국 연구소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먼저 배제되는 것이 사실이다. HIPS와의 공동연구소 설립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전히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많다. 연구소장 임기가 짧은 탓에 공동연구에 제약이 많기때문이다. HIPS가 공동연구소를 제안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3년마다 바뀌는 소장이었다. KIST 유럽 정관에 소장의 임기는 5년으로 되어있지만 평균 5년을 지나지 못하고 바뀌어왔다. 자주 변경되는 소장을 보며 인근 연구소에서는 '문제가 있는 기관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주변 연구소 수장들은 대부분 연임을 하는 형태로 길게는 18년 동안 한 소장이 연구소를 이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KIST 유럽연구소 연구원들은 한 수장이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소를 이끌어주길 희망하고 있다.
 
유럽연구소에 근무 중인 한 박사는 "인더스트리 4.0을 기획하고 주정부와 대학이 공간을 얻어 시작한 연구소가 지금은 세계최대 연구소로 성장했다. 그야말로 한 우물을 판 것"이라며 "소장의 경우 한국에서 독일로 와 근무를 하다보니 다른 점이 많지만 KIST 유럽 발전에 소장임기가 걸림돌이 된다는 소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금씩 변화가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최 소장은 KIST 유럽이 모든 구성원들의 행복한 연구생활 공간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KIST 유럽이 올해 20년을 맞았습니다. 첫 5년은 만드는 단계, 이후 성장 시기를 거쳐 연구 인원이 늘었고 이후 도전기를 거쳐 지금에 와 있습니다. KIST 유럽에서 본 직원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연구소 성과를 다 떠나 우리가 활동하는 곳에서 즐거움,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이 자부심,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고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당장 논문이 나오지 않더라도 과제를 만들어내고, 기업도 지원하고, 성과도 만들면서 '유럽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뭔가 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것이 자부심아닐까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정진할 수 있도록 연구자들에게 믿고 맡기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성과는 나올꺼라 믿습니다."

최 소장은 "KIST 유럽 구성원들이 연구생활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최 소장은 "KIST 유럽 구성원들이 연구생활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KIST 20주년을 기념해 많은 인사들이 메시지를 남겼다.<사진=김지영 기자>
KIST 20주년을 기념해 많은 인사들이 메시지를 남겼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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