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장비 국산화④]장비업계 죽음의 계곡 국가적 지원 필요
장비개발 과제선정 어렵고 관심도 없는 '사각지대'
"장비개발 연구환경 인프라 및 인식 개선돼야"

"장비를 사용해 연구를 하다보면 장비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연구시간의 70%를 장비개발에 집중했더니 논문이 안나오게 됐다. 그해 기관내 평가에서 'D' 를 받았다. 강심장이 아니고는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 연속해서 나쁜 평가를 받으면 기관에서 나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1년도 안돼 장비개발 투입시간을 10%로 줄였다."(장비 연구하는 과학자)

"장비개발 기업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인력, 자금 모두 열악하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해 해외 수요자에게 판매를 해도 클레임(claim)이 들어오면 대응 인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주요 개발자들이 문제해결에 매달리다보면 기술 습득은 할 수 있지만 회사는 매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문제로 국내 장비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장비개발 CEO)  

국내 장비기업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이들이 장비 국산화를 위한 중심축이지만 인력, 자본금 등 열악하기 그지없다. 소규모로 영세한 기업이 75% 수준이다.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연구 장비기업은 327개, 이중 245개(74.9%) 기업이 소기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기업은 55개(16.8%), 대기업은 18개(5.5%) 수준이다. 소기업 중 매출액 25억원 미만 영세소기업은 112개(45.7%)에 달한다.
 
또 2013년 국내 전체 제조업 시장이 1539조 원인데 비해 연구 장비산업 시장은 15조3000억 원으로 1%에 불과하다. 그나마 형성된 시장의 대부분은 민간시장 수요다. 15조3000억 원 중 민간시장 수요가 93.8%(14조3190억원), 공공시장 수요는 6.2%(9473억 원)로 미미하다.

2014년 기준 국산 연구장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05년 25.6%에서 2010년 35.8%, 2014년 39.4%로 지속 증가하는 수치다.

하지만 중점연구분야로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부에서 집중투자하고 있는 기초과학·융합기술 연구개발과 신산업창출 핵심기술개발 분야는 국산연구장비 비중이 26.2%와 26.6%, 외산장비 투자 비중 73.8%와 73.6%로 여전히 외산장비 의존도가 높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되며 국내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는 바이오기술분야는 외산장비 비중이 82.6%에 이른다. 50억원 이상의 연구장비는 국산 비중이 2.5%로 외산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진다.

기술분야별 국산과 외산 장비 사용 현황. BT 분야는 외산장비 사용 비중이 82%이상이다.<자료=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제공>
기술분야별 국산과 외산 장비 사용 현황. BT 분야는 외산장비 사용 비중이 82%이상이다.<자료=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제공>
국내 연구장비 시장이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장비기업 대부분 연구장비 개발 전문인력과 자체 연구개발 역량 부족을 꼽는다. 그동안 장비 관련 인력이 전혀 육성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또 정부의 연구개발지원이 과학쪽에만 치우치면서 장비개발과 사업화 지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특히 전략적인 로드맵없이 사업이 진행돼 어려움이 크다는 게 연구장비 기업들의 지적이다.
 
이준희 코셈 대표는 "연구개발은 과학과 공학이 함께 가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과학에만 치중돼 왔다"면서 "정부지원도 연구에 집중되고 평가도 논문 중심으로 이뤄지며 연구자들 대부분 장비 개발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고 꼬집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국내 연구장비 기업들도 세계시장 선도형 첨단 연구장비와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은 보급형 연구장비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국가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장비개발 연구자들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어야"

지난해 2월 정부차원의 연구장비개발사업단이 처음으로 발족했다. 연구장비 핵심 원천기술 개발과 국산 연구장비 성능평가 및 국산화 지원, 연구장비 개발 기반 구축이 목적이다. 과학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과학기술 정책 변화도 필요함을 주문한다.
  
반도체 공정기술을 기술 이전했다는 H 박사는 연구장비를 직접 개조하거나 개발해 사용한다. 장비를 설계·개선·개발하는 일이 즐거워 연구와 병행하지만 장비개발 자체가 연구과제가 되고, 기술이전 사례가 연구 성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에 연구 장비개발 과제를 꾸준히 제안하고 있지만 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면서 "우리나라는 장비를 만드는 것 자체가 과제가 안 된다. 외산장비를 활용해 낸 성과들이 평가가 좋다보니 연구자들도 장비를 개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들과 똑같은 장비를 사서 연구하면 그 분야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에서 장비를 사면 내가 가질 수 있는 연구 자유도가 적다. 반면 장비를 만들면 자유도 입장에서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날개 달린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장비를 개조해서 쓰는 E 박사도 "최근 주요장비 고장으로 연구가 모두 올 스톱 될 위기가 있었다. 그동안 연구 장비를 개조해서 쓴 덕에 우리 손으로 직접 수리도 가능했다"라며 "장비를 개조하고 개발하는 것은 당장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아이디어를 현실시키는 연구 등 장기적으로 연구자에게도 굉장히 큰 기회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장비를 직접 만든 M 과학자는 장비개발이 수월한 환경이 마련되길 희망했다.

그는 "장비 개발비 구하는 일이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주변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제작 비용을 구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비용을 줄이려 부품을 직접 사고,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였지만 결과가 좋아 뿌듯했다"며 "장비 개발을 위한 환경이 좀 더 나아진다면 장비를 개발하려는 연구자들도 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 우리나라는 국산장비 기술 확보를 할수 있을까. 현장의 연구자들은 "늦었지만 따라갈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NFEC자료에 의하면 기계가공·시험장비는 국산 비중이 53.2%로 확인된다. 원자로와 핵융합 관련 빔라인 장치, 철도차량 관련 주행시험 등 평가용 연구시설과 장비에 투자가 높았기 때문이다.

장비개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외산위주의 장비에 의존하면 퍼스트 무버형의 연구는 어렵다"며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과 국가 미래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연구장비 국산화는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계 한 인사는 "우리는 거대과학을 통해 장비개발을 위한 요소기술을 많이 확보한 상태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라면서 "노하우가 쌓이는게 중요하다. 지금은 실습비용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면 우리기술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개발시간도 줄어들 것이다"고 역설했다.

중점연구분야별 국산과 외산 장비 사용현황. 기초연구와 신산업창출 분야는 외산장비 비중이 높다.<자료=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제공>
중점연구분야별 국산과 외산 장비 사용현황. 기초연구와 신산업창출 분야는 외산장비 비중이 높다.<자료=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제공>
<특별 취재팀 = 길애경 기자·박은희 기자·김지영 기자·강민구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