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장비 국산화 ③]인프라 구축후 인력·운영비 전혀 없는 정책
연구장비 관리 기술인력 인식과 환경 열악해 악순환 반복

#1 정부출연기관의 A 과학자. 최근 연구성과 상용화와 기업지원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필요한 장비를 원스톱라인으로 구축·완료했다. 하지만 장비 운영에 필요한 인력 등 운용 예산은 전무한 상태. 현재 고가의 장비들이 가동되지 못하고 있어 고민이 큰 상태다.

#2 B정부연구기관은 11억원에 구입한 외산장비를 업무조정에 따라 5년간 사용하고 다른기관으로 이관한다. 하지만 이 기관에서는 6년간 단 한번도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2600만원 헐값에 고철로 팔아넘겼다. 당시 관련 기관에서는 장비를 관리할 직원이 다른 업무로 발령이 나면서 장비관리 인력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연구장비, 필요에 따라 외산 장비를 구입하지만 운영 인력이 확보되지 않아 고가의 장비가 몇년씩 방치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장비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고철로 팔아치워도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런 악순환이 한국과학계에 반복되고 있다.

국가연구시설장비관리서비스(NITS) 자료에 의하면 2005년부터 2015년 3월까지 등록된 장비는 4만9727점(국산 1만5386점, 외산 3만1389점)에 이른다. 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인력은 얼마나 될까.
 
지난 4월 말 '제20회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 발표한 국가연구시설장비 관리·활용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실태조사에 응답한 303개 연구기관의 연구시설과 장비 전담운영 인력은 총 1348명. 전담운영인력의 고용형태는 정규직 61.1%(792명), 무기계약직 7.3%(95명), 계약직 31.6%(409명)이다.

얼핏 계산해도 장비관련 인력 1명이 36점의 장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계약직을 빼고나면 장비 인력 1명이 56점의 장비를 맡아야 한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고가의 장비도 충분히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 연구자들이 직접 장비를 운용하면서 오류가 발생해 수억 원대의 장비가 고장나는 일도 적지않다. 관리가 소홀해지며 고장난 장비는 방치되고 실험실 한켠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길로 빠지기 쉽다.

연구장비 분야를 연구하는 한 과학자는 "그동안 장비 정책이 없다보니 장비 관리 인력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면서 "연구자들이 직접 오퍼레이터 역할을 하거나 대학원생이 오퍼레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 장비 기술자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병원은 X선이나 MRI를 담당하는 방사선사가 있고 의사가 있어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데 과학계는 연구자가 장비를 사고 운영해야 하는 격으로 제대로 환자를 진료할 환경이 안된다"고 연구현장의 현실을 설명했다.

연구자에서 장비개발자로 진로를 바꾼 C과학자는 "우리나라의 연구현장 현실은 리서치와 연구원은 있어도 장비 기술자는 없다"면서 "테크니션으로 장비를 개조하며 테크놀로지스트가 되고 나중에 장비를 설계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 그럼 당연히 고장났을때 서비스도 후배 교육도 잘 이뤄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출연연의 D박사는 연구장비 발전을 위해 기업, 연구자의 협력, 인력양성을 강조했다. 그는 "장비는 연구자와 기업이 같이 개발해야 한다. 또 정비와 인력양성도 같이 이뤄지며 상용화로 넘어가야 한다"면서 "연구자들이 장비 성능을 모니터링 하며 지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책은 전혀 지원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출연연 박사는 "우리 연구소는 과거 기술원의 포지션이 컸었다가 IMF 이후 모두 강제적으로 연구소에서 내보내졌다"며 "지금은 연구자대비 기술원이 5%정도다. 테크니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적다. 연구원들과 테크니션이 함께 움직이면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연구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는데 인력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아쉽다"고 말했다. 

◆ 장비 전문인력 없어 외산 장비기업에 목메는 상황

해외 장비기업들의 횡포는 우리나라 연구 인프라 구축과 인력운영의 엇갈린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연구현장 다수의 연구자들에 의하면 연구현장 인프라 구축은 실험과 연구를 위한 장비 구입까지다. 운영과 가동을 위한 인력 확보와 비용은 책정되지 않는다. 연구장비만 구축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형태다.

A박사는 "1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장비를 연구자들이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초기에는 관련 인력이 확보돼야 연구자들도 배우면서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연구자가 알아서 해야한다"면서 "연구자들도 부담감에 사용을 회피한다. 전국의 사용하지 않는 장비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고장으로 몇달간 세워두는 경우도 있는데 해외 장비 기업의 서비스 인력은 급할 게 없다"면서 "국내 연구장비 기술과 경쟁력이 확보돼 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장비를 활용하는 출연연의 E박사 역시 "고가의 장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리한다고 나서기 어렵다"면서 "해외 장비기업들이 그런 상황을 알고 있어 오히려 제멋대로 하는 경향도 있다"고 토로했다.

고가의 첨단 연구장비는 관련 정보가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연구자는 과제를 위해 장비소개서에 의존하거나 주변 연구자의 조언을 얻어 장비를 구입하기도 한다. 어렵게 장비를 구입한 후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운영 인력이 부족하고 전문지식없이 장비를 가동하다 고장이라도 나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한 과학자는 "연구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 면허가 있어 차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승용차 면허로 버스는 몰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며 "장비 소개서만 읽고 장비를 사다 보니 실패 확률도 크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고가의 장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동했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마음대로 분해해 볼수도 없고 외산 장비기업의 서비스 인력을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입장"이라면서 "그들이 올때까지 기다려야하는데 장비 경쟁력도 관련 전문인력도 없는 우리는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연구 장비 운영인력 확보에 공감하며 정부는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올해 첫 관련 인력을 배출했다. 하지만 1년단위의 운영관리, 유지보수 교육으로 고급인력 확보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직 갈길이 먼 상태다.

<특별 취재팀 = 길애경 기자·박은희 기자·김지영 기자·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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